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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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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귀걸이를 달았다

등록 2006-03-08 00:00 수정 2020-05-02 04:24

중년에 이르러 남자의 정체성 고민하기 시작한 한 남자의 고군분투기
잘 열받고 뚜껑 열리기도 하지만 ‘꼴통’은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 이명수/ 심리경영 컨설팅업체 대표 mslee@mindprism.co.kr

48살. 서울 출신으로 농사꾼 집안의 4남3녀 중 여섯째. 10년차 재혼남. 아이들 셋. 술·담배를 안 한 지 오래다. 커피도 안 마신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김칫국. 왜 골프가 ‘운동’이라는 일반명사로 통칭되는지 알지 못하니 당연히 골프장에 가본 적 없다. 건강검진을 했더니 적당하게 운동을 안 했다는 이유로 과체중 판정을 받는다. 여기까지 정리해놓고 보니 영락없이 40대 후반의 아저씨다. 물론 내 얘기다. 스스로 보기에도 아무 끌림이 없으니 남들은 오죽이나 심드렁하랴. 그런데 한쪽 귀에 귀걸이를 하고 다닌다는, 아주 사소한 사실 하나를 슬쩍 끼워넣으면 심드렁하던 눈빛이 약간 바뀐다. 경험에서 나온 얘기다.

노회찬이 나의 벤치마킹 대상

사무실 주변에 사진 스튜디오가 몇 개 있어서인지 밥집 아줌마나 1인 미용실 원장님은 내게 포토그래퍼(그들의 육성대로 하면 “사진 찍으세요?”)냐고 묻는다. 반찬도 하나 더 주려 하고 가위질도 한 번 더 해준다. 젊은 여자들 중 몇몇은 주책 맞다는 눈빛으로 혹은 진짜로 그렇게 믿고 있는 표정으로 “신경통이 있으신가 보다”라고 기를 죽이기도 한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올 확률이 70% 이상 높아진다고 들었다. 몇 년 전부터 아내의 권유로 귀걸이를 한 이후 나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 미팅에서 또래 남자들은 별로 탐탁지 않아하는 눈치지만 많은 여자들은 확실히 귀걸이 한 내 모습을 보면서 긴장의 밀도를 낮춘다. 나는 처음에 귀걸이를 한 내 모습이 근사해서 그러는 줄 착각했다. 더 젊은 날 진작에 할걸 그랬다고 살짝 후회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것이 ‘멋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문제’였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경험에 의하면 중년 남자의 귀걸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다. 주책 맞은 겉멋이라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지만 여자들이나 아이들은 저 사람이 적어도 꼴통은 아닐 것이라는, 말이 통할 수도 있다는 하나의 단서로 인정한다.

나는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을 좋아한다. 정치적 성향과는 전혀 관계없다. 상징적 의미에서 나는 그가 귀걸이를 한 중년 남자처럼 느껴진다. 공사 영역 모두에서 열려 있고 앞서 있어서다. 그는 중년 남자의 한 영역에서 나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또래 남자들에 비해 조금 더 열리고 있는 중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진단하고 있다. 얼마 전 타지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들놈(18살)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다는 것이다. 명동의 한 라면집에서 계란을 건져먹고 있던 나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물었고, 한동안 ‘심각모드’로 이런저런 스토리를 엮어가던 아들놈은 결국 김이 샜다는 투로 “무슨 아빠가 이래?” 하면서 장난 전화임을 실토했다. “니가 했지, 내가 했냐?” 내 대답에 아들놈은 아빠가 그렇게 반응할 줄 알았다며 한참을 낄낄거렸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아이가 그런 농담을 할 만큼 장성한 사실에 대한 대견함이나 나를 믿을 만한 ‘남자 선배’로 대해준다는 데 대한 뿌듯함보다, 아이에 대한 또 다른 기억으로 가슴이 싸해졌다.

나이 먹으면서 꾀가 나더라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나는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또 주위가 너무 산만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모질게 손찌검을 했다. 그 생각만 하면 괴롭고 부끄럽다. 가능하다면 아이와 내 머릿속에서 그 기억만 도려내고 싶다. 그때 나는 30대의 팔팔하고 자신만만한 나이였고 아빠라면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는 줄 알았다. 나는 몇 년 전에야 아이에게 그 사실을 실토하면서, 무릎을 꿇지는 않았지만 그런 심정으로 아이의 용서를 구했다. 마흔이 넘으면서부터 나는 남자로서의 정체성이나 사회적 역할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중년 남성의 호르몬 변화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그때를 기점으로 남자로서의 삶에 중대한 변화가 시작된 것만은 확실하다. 가장 중요한 환경적 요인은 아내다.

나는 휘발유 기질이 있어 순식간에 열을 잘 받는다. 오픈 스포츠카 성향도 있어 뚜껑이 잘 열린다. 아내는 나와 전혀 다르다. 사람에 대한 인내력도 대단하고 상대의 선의를 믿어 의심치 않는 스타일이다. 돈을 잃어버려도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불타거나 물에 빠져 없어지면 아깝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 손에서 떠나갔을 뿐 결국 누군가가 잘 쓸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나는 처음에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휘발유를 실은 오픈 스포츠카로 돌변했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그 얘기에 귀기울이려고 노력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와중에서 겪는 번민이나 울뚝밸이 만만치 않다.

외출했다 돌아와 거실에 널린 빨래를 걷을 때 나는 아내의 속옷까지 잘 개켜서 안방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그런 다음 내 옷가지는 내 옷장에 차곡차곡 넣지만 아내의 옷가지는 침대 위에 놓아둔다. 저택도 아닌 바에야 조금만 노력하면 아내의 옷장 구조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아직도 내 한계는 안방 침대 까지다. 내 속옷은 되는 대로 빨래통이나 바닥에 던져놓으면서도 아내의 비상용 생리대가 화장실이나 방에서 눈에 띄면 왠지 기분이 안 좋아진다. 요리를 못하지만 식탁을 차릴 때 도와주는 일은 열심히 하는 편이다. 딴 집에 초대받아 가서도 자동적으로 음식 그릇을 나를 만큼 몸에 밴 습관이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자상한 남자라고 등을 두드린다. 하지만 나이 먹어가면서 자꾸 꾀가 나기 시작한다. 나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나 혼자 그러는 게 귀찮고 손해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제사 뒤 식사 시간. 늘 그렇듯이 남자들은 음식상에 앉아 있고 여자들은 열심히 음식을 나른다. 왜 제사 같은 것을 지낼 때는 남자들이 더 가부장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막내 동생이 무심결에 음식 나르는 일을 도와주는 나에게 물김치를 더 달라고 말했다. 그런 순간 아직도 나는 ‘휘발유과’다.

남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때

내가 일하는 곳은 공교롭게도 동료들이 모두 여자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가능하면 말을 줄이려고 허벅지에 십자수를 놓으면서 노력하지만 속으로는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가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이슬람 국가의 ‘명예살인’이라는 짐승 같은 행위를 보면서, 파키스탄에서 여성에게 자행되는 끔찍한 염산테러의 전말을 접하면서, 또는 자신이 지도하는 박사과정 여학생의 귓속에 습관적으로 바람을 불어넣는다는 어느 파렴치한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남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러면서 호주제 철폐 같은 문제에, 정확한 사실관계조차 모르면서 ’암탉 같은 발언’을 일삼았던 남자들이 짜증스럽다. 팔순이 넘어 아내와 함께 설거지를 하는 노인에게 한 여성운동가가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평생 여성을 배려하면서 사실 수 있었나요? 나는 그 어르신의 대답을 잊지 못하겠다. “한 여자가 양손엔 물건을 들고 머리에는 보따리를 이고 등에는 아기를 업고 걸어가요. 그런데 나는 빈손이에요. 그럼 내가 몇 개 들어주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게 인간이죠.”

그런데 말이다. 내 말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누군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렇게 잘난 척하는 너는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략 난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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