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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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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치적 웰빙 식단

등록 2006-03-01 00:00 수정 2020-05-03 04:24

정치에 목매지 않고 권력에 게걸스럽지 않은 강금실의 치명적인 매력
사람 냄새 나는 정치인을 만나기 위해, 나도 그녀의 시장 출마를 권한다

▣ 조선희 소설가

최근 막을 내린 TV드라마 <황금사과>의 주인공 사남매 중에서 막내가 ‘금실’이다. “그 아가 복을 타고 났데이. 그 아 엄마가 그 아를 날 때 황금색 실이 소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꿈을 꿔서 이름을 금실이라 지었다 안 카나.” 그런 ‘태몽설화’를 지닌 야무지고 깜찍한 캐릭터인데, 일곱 살짜리 아역배우가 극중 인물에 완전히 몰입하는 이른바 ‘메소드’ 연기의 한 경지를 보여줘서 드라마 초입부터 주목을 받았다. 내가 작가 김운경씨에게 물어보았다. “강금실에서 이름을 따온 거죠?” 하고. 작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재미있는 ‘이름 캐스팅’ 장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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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될 수 없는 스타의 운명

강금실씨는 2004년, 법무부 장관을 사퇴하고 변호사 사무실로 돌아갔다. 여당 최고위원 자리를 줘도 싫다고 했다. 정치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냥 자유로운 개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저 개인이 될 수 없는 운명인 모양이다. 무대를 떠나도, 아무리 은퇴 선언을 하고 고별사를 읽고 무대를 내려와도, 여전히 그를 위해 배역이 남겨져 있다는 것.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아이를 낳고 쉰 다음에도 자신의 연주 스케줄이 그대로인 걸 보고 자기가 스타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요즘 돌아가는 사정을 보니, 강금실은 대역조차 없는 스타다.

원래, 뺄수록 더 끌리는 법이다. 강금실씨 경우는 특히 그렇다. 그가 빼는 이유가 사람들이 끌리는 바로 그 이유다. 정치에 목매지 않는다는 것, 권력 앞에 게걸스럽지 않다는 것, 그게 사람들이 그에게 정치를 시키고 싶고 권력을 쥐어주고 싶은 이유다. 사람들이 ‘정치적 웰빙’을 꿈꾸는 것이다. 농약에 오염된, 내성이 강한 정치 식단에서 유기농 자연식을 먹고 싶은 것이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최적화’ 적응훈련 끝에 거의 사이보그가 돼버린 정치인들 사이에서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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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사람들의 감(感)이 틀리지 않았다. 강금실이 유기농 자연식인 것, 맞다.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인 것도 맞다. 판사나 변호사라는 직업, 경기여고 서울대라는 학력, 그리고 법무부 장관까지. 그가 거쳐온 경로는 외벽이 워낙 요새처럼 튼튼해서 마음만 먹으면 바깥바람 한 번 쏘이지 않고도 한국 사회 위를 두둥실 떠서 한 세상 건너갈 수 있다. 하지만 몇 번의 만남으로 보건대, 그런 커리어라는 건 강금실이라는 인물의 20% 정도밖에는 설명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는 그것 말고도 훨씬 복잡한 뭔가가 많은 사람이다.

양가적인 캐릭터, 강금실의 딜레마

그는 매우 양가적인 캐릭터다. 강금실이라는 사람 안에는 여러 가지 양가적인 가치가 공존하고 있다. 돈을 잘 벌지만 빚 때문에 끙끙대는 것. 낮에는 법전을 읽고 밤에는 소설을 읽는 것.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꼭 그만큼 노는 것도 좋아한다는 것. 유쾌함과 우울함. 웃기도 잘하고 울기도 잘하는 것. 떠들썩함도 즐기지만 고적함도 즐기는 것. 주변에 돈 많은 친구도 많지만 가난한 친구도 많다는 것. 자신이 지휘하는 소송사건의 디테일들은 꼼꼼히 기억하지만 자기가 신혼 초에 결혼반지를 빼서 병원비에 쓰라고 누구에게 주어버렸는지는 전혀 기억을 못한다는 것. 법대생이면서 탈춤반이었던 것. 현직 판사 신분이면서, 구속된 남편을 위해 국가보안법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장문의 의견서를 써서 재판부에 낼 수 있다는 것. 주류이면서 비주류인 것. 시스템 안에서 경쟁력이 있지만 시스템에서 자유롭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양가적인 특성 가운데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은 아마도, 그가 대중정치를 달가워하지 않지만, 대중정치에서 경쟁력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그를 괴롭히고 있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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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법무부 장관 임명 초기에 인터뷰에서 자신은 정치인이 아니며 앞으로도 아닐 것이라고 했다. 장관은 행정적이고 실용적인 일이라서 받아들였다고 했다. “분명하게 선을 긋고 싶다. 정치할 마음은 없다. 내 있는 그대로 살다 가야지 인기를 발판 삼아 정치인으로 간다거나 그런 건 있을 수 없다. 나는 그냥 나로 살고 싶다. 장관 끝나면 빚이 남았으니 돈 버는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의 불행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대중정치에서 경쟁력 있는 캐릭터다. 명석함, 유능함, 강인함, 여성성, 특A급 커리어, 그리고 호감을 주는 인상과 맵시 있는 차림새까지, 그 모든 것들이 그가 선거정치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임을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그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으면 좋겠다.

그는 언젠가 사석에서 이런 얘길 했다. “사는 데 두 가지만 있으면 돼. 사랑하고 슬퍼하고.” 전형적인 낭만주의자의 대사다. 그런 낭만주의자에게 혁명은 어울릴지 모르되 현실정치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선거판은 지옥일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결국 그에게 행복의 길이 될지지 불행의 길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서울시장 후보로 선거전에 나섰으면 좋겠다.

첫 번째는, 나 역시 정치적 웰빙을 바라기 때문이다. 무공해 메뉴를 원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그들이 원하니까, 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율 10~20%대가 되어 마땅할 만한 잘못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진보 진영이 3대를 이어오니까, 보수 진영의 집단스트레스가 폭발하고 있고 그 파편을 뒤집어쓴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서울시장 후보로서 대체 불가능한 카드라면 그야말로 다시 한 번 공익근무 하는 셈치고 나서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 진보 진영이 원한다

법무부 대회의실에 가면 벽면에 역대 장관들 사진이 걸려 있다 한다. 수십 개의 액자들이 모두 양복 넥타이 차림에 한일자로 입을 꽉 다문 남자들의 흑백사진인데, 단 하나, 활짝 웃는 여자의 컬러사진이 있다고 한다. 서울시 청사에도 기획상황실에 가면 역대 서울시장 사진들이 죽 걸려 있다고 한다. 그 액자들 사이에도 언젠가 활짝 웃는 여자의 컬러사진이 걸리기를 기대해보는 것도 즐겁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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