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되는 것도 자기 희생이라는 유시민은 노무현·이해찬과 ‘3위 1체’
자기교정’ 없는 구시대에 대한 조롱은 이들의 최대 강점이자 약점
▣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
유시민의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동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관한 논란이기도 하다. 몇 개월 전 내가 만난 어떤 분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였다.
자기 잇속 챙기는 이타주의?
그분은 열렬한 유시민 지지자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의 진정성을 몰라주고 비난하는 걸 개탄하며 유시민 옹호에 열을 올렸다. 그분이 역설한 주장의 핵심은 유시민은 철저하게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국회의원 권력 누리며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도 계속 논란을 일으키며 일부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나는 정치논쟁엔 흥미를 잃은 지 오래인 터라 잠자코 듣고 있었지만, 그분이 어떻게 답을 할까 궁금한 게 있어 막판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타성이란 힘없거나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옹호할 때 적합한 말 아닌가요? 대통령 옹호를 위해 앞장선 사람치고 이타적인 사람이 있었나요? 대통령은 줄 게 많잖습니까? 장관 자리도 줄 수 있고 대통령과 통하는 ‘실세’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엄청난 이익 아닌가요?”
그분은 더 열을 내기 시작했다. 유시민은 장관 같은 건 거들떠볼 사람도 아니고 나라 잘되게 하는 데만 헌신하기 위해 계속 ‘악역’ 전담으로 일할 사람이란다. 내가 유시민은 장관을 하게 돼 있다고 장담했더니, 그분은 만에 하나 유시민이 장관을 한다 해도 그건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나는 “다른 장관은 나라 안 되게 하기 위해 장관 하나요?” “유시민은 무조건 대통령을 옹호하는데 대통령이 신(神)인가요?” “유시민이 단 한 번이라도 대통령에게 고언하는 입장으로 돌아서면 그의 열혈 지지자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요?” “유시민은 대통령을 등에 업은 영악한 정치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등등 도발적인 질문들을 계속 던져 그분을 더욱 열 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건 일상적 대화도 사회과학적 탐구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나의 못된 버릇 때문이었을 뿐 다른 뜻은 없었다.
사실 나는 유시민이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데에 흔쾌히 동의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유시민 논쟁의 핵심은 이타성과 이기성의 경계에 관한 혼란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기엔 분명히 자기 잇속을 챙기는 행위인데도 정작 당사자는 그것마저 이타적 행위로 믿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우리는 그 일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전에 썼던 ‘유시민론’의 한 대목을 다시 써먹는 걸 이해하시기 바란다.
유시민은 출세나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조국을 위해 강제로 차출당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지방대 교수’다. 유시민이 열린우리당 의장이 된다 해도, 설사 그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그건 조국을 위한 희생이지 그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그가 다른 정치인들에게 독설을 퍼부을 수 있는 힘도 여기에서 나온다. 그의 인간성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다.
유시민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는 것도 자신이 희생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전혀 내키지 않지만 ‘대통령 대신 비 맞아줄 사람’으로 나서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시민이 대통령을 열심히 옹호하더니 그 과실을 챙겼다고 생각한다. 유시민이 황우석 사건의 와중에서
국민들의 ‘정치저주’에 편승하다
‘나르시시즘’이란 말은 이 단어를 쓰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제각각이지만, ‘과도한 주관주의’라는 상식적인 정의에 따른다면 유시민은 그 점에선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런 낮은 단계의 나르시시즘은 노무현 대통령, 이해찬 국무총리, 유시민 의원 등 이른바 ‘노해민’ 3인의 공통된 특성이라는 점이다. ‘3위 1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건 나르시시즘이야말로 이들의 강점이며 이들이 행사하는 권력의 근원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나르시시즘 파워’를 이해하기 위해선 <서울신문> ‘광복 60주년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 조사(10점 만점)에서 응답자 1천 명 중 385명이 0점을 매겼으며, 5점 이하의 낙제 점수를 준 응답자가 전체의 91.6%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강대 명예교수 이태동은 “지금 국민 사이에서 정치인들에 대한 평판은 ‘쓰레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품위와 신뢰를 잃어 바닥을 헤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정도면 ‘정치 불신’이나 ‘정치 혐오’를 넘어 아예 ‘정치 저주’라고 해야 어울리지 않겠는가.
노해민의 열성 지지자들 중엔 ‘정치 저주파’가 많다. ‘정치 저주파’는 진보파와는 좀 다르다. ‘정치 저주파’는 구시대의 정치를 저주한다는 점에선 진보적인 면이 있지만, 빈부 양극화를 최대 현안으로 여기는 등의 계급 중심 사고가 약하기 때문에 민주노동당 지지자들과는 다르다. 최근의 황우석 사태에서 ‘황빠’와 ‘노빠’가 상당 부분 겹쳤다는 것도 ‘정치 저주파’의 독특한 면모를 말해준다 하겠다.
노해민은 모두 거침없는 박력과 달변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깨끗하다. 유시민의 경우엔 재산이 1억원도 안 될 정도로 ‘청렴’하기까지 하다. 노해민의 독설도 늘 기성 정치인들을 겨냥한 것이지 이들은 보통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겸손하다. 젊음과 혈기와 개혁 의지로 충만한 ‘정치 저주파’ 네티즌들이 어찌 노해민을 사랑하는 걸 거부할 수 있으랴.
노해민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노해민은 역사의 업보다. 노해민을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도 기성 정치를 저주한다는 점에선 노해민 세력의 잠재적 우군이 될 수 있다. 이게 바로 노해민이 내심 기대하고 있는 ‘막판 뒤집기’의 가능성이며, 한나라당이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불안해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노해민이 여론을 무시하고 ‘마이 웨이’를 고집하면서도 내심 ‘두고 봐라’ 하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 한자리 차지하면 침묵하는가
요컨대, 노해민 나르시시즘의 본질은 구시대에 대한 조롱이다. 조롱은 생산성이 없지만, 경제에 큰 악재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생산성 개념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간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정치가 아무리 이전투구로 날을 지새운다 해도 정치가 기업 등쳐 먹는 관행만큼은 거의 사라진 이상 한국 경제는 제 갈 길을 가게 돼 있다. 그러나 국정운영이 구시대에 대한 조롱에 무게를 두는 이상 경제는 굴러간다 해도 사회적 갈등은 꽃을 피우고 빈부 양극화는 브레이크를 찾지 못한 채 질주할 것이다.
구시대에 대한 조롱은 노해민이 믿는 ‘시대정신’이다. 코드 인사? 그게 아니다. 시대정신에 따른 인사다. 노해민 시대의 최대 역설은 노해민 정권의 가장 큰 장점이 가장 큰 단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노해민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와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건 노해민 정권에 대거 참여한 건 일단 축복이다. 그들은 구시대에 대한 염증을 공유함으로써 강한 개혁 의지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로 인해 노해민 정권은 ‘자기 교정의 메커니즘’을 상실했다.
예컨대, 대통령 직속 위원회건 정부 위원회건 무슨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했다고 해서 노해민 정권에 고언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한국인 특유의 DNA(유전자)는 그 법을 강요한다. 그 누구건 다 침묵하게 돼 있다. 침묵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단 한 명이라도 이름을 대보라. 단 한 명도 없다. 한국인 DNA의 놀라운 파워이거나 노해민 정권이 완전무결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에 걸겠는가? 만약 전자라면 참여정부에게 참여는 축복이자 저주인 셈이다.
유시민의 나르시시즘이 논란이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엘리트 한국인들이 모두 참여에 심한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인들의 무서운 인정 욕구는 재미동포들의 한인회 회장 선거가 사투에 가깝다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학계의 학회 회장 선거에서부터 노동조합의 위원장 선거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거를 보라. ‘선거 망국론’이 나올 정도로 한국인들의 지도자 인정 욕구의 열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도 유시민은 그런 현실은 전혀 아는 바 없다는 듯 국회의원에 장관 자리까지 누리게 됐으면서도 자기는 늘 원하지 않는 희생을 하고 있다고만 믿고 있으니 그걸 나르시시즘이라 하지 않으면 무얼 나르시시즘이라 하겠는가. 유시민이 엘리트 한국인들의 지도자 인정 욕구마저 구시대의 문법으로 간주하고 그걸 혁파하고자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런 꿈을 갖고 있다면 그건 한국인의 유전자 조작을 해보겠다는 야심처럼 황당하고 위험하게 여겨진다.
‘막판뒤집기’가 걱정된다
유시민에 대한 강한 반발과 비난엔 여러 현실적인 이유들이 개입돼 있겠지만, 바로 이런 인식의 괴리가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대학교수들이 정부 위원회 위원 자리 하나 꿰차지 못해 서운해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유시민과 같은 희귀한 한국인이 장관이 된 걸 축복으로 여기고 싶은 마음 간절하면서도 그의 과도한 주관성이 보건복지 행정에서도 발휘되는 건 아닐까 싶어 염려되기도 한다.
한국인들의 정치에 대한 저주는 한국 정치에 활력과 역동성을 부여하는 근원이기도 하지만, 그 역동성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카타르시스 축제’만 융성케 한다. ‘막판 뒤집기’는 축복일 때도 있었지만, 그 축복 때문에 각 정치세력은 성찰을 할 필요도 없고 변화도 시도하지 않는다. ‘막판 뒤집기’가 언제든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거야말로 정치에 대한 저주를 동력으로 삼는 소용돌이와 쏠림 현상의 비용이자 희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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