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라 불리며 숨죽여야 했던 〈PD수첩〉 최승호 책임PD가 털어놓은 속내…“이 사태는 언론이 만든 악순환, <조선일보>는 PD 저널리즘의 싹을 자르려 했다”
▣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PD수첩〉이 한국 사회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한때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으며 숨죽였던 〈PD수첩〉이다. 이 프로그램의 총책임자인 최승호 책임프로듀서(CP)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황우석 사태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장주의를 보여줬다”며 “〈PD수첩〉의 문제제기가 성장으로만 치닫는 한국 사회가 성찰할 수 있는 단초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론이 황우석 신화를 만들었으며, 국민이 이에 환호하고 다시 언론이 이를 따르고 PD수첩을 공격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며 PD수첩이 애국주의에 빠진 언론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광고
지난 12월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에는 〈PD수첩〉 제작진 대부분이 모여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방송 중단된 〈PD수첩〉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취재의 핵심 역할을 맡았던 한학수 PD의 책상에는 생명공학 전문서적이 쌓여 있었고, 최승호 CP는 관련 기사를 꼼꼼이 챙겨보고 있었다. 최 CP와의 인터뷰는 노 이사장의 기자회견 방송 직후 시사교양국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처음엔 논문이 거짓이라 생각 못해
광고
황 교수의 줄기세포 의혹에 대한 취재는 어떻게 시작됐나.
=2004년 <사이언스> 논문 연구팀에 있었던 한 연구원이 인터넷으로 제보를 해왔다. 제작진만 볼 수 있는 게시판인데, 마침 한학수 PD가 옆에 있어서 “이리 와봐라”고 해서 함께 읽었다. 마침 한 PD는 부시 미국 대통령이 줄기세포 연구 반대 의사를 언급한 것과 황 교수의 2005년 환자 맞춤 줄기세포 연구성과를 대비해 보여주는 기획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제보자를 만나보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일단 방송한다는 전제는 없었고, 중요한 사안이니만큼 확인해보자는 차원에서 한 PD가 취재에 들어갔다. 만약 황우석 신드롬이 ‘신드롬’이 아니라 ‘신기루’라면, 국민들이 황 교수를 믿고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언제쯤 황 교수의 논문이 거짓이라는 심증을 굳혔나.
=상식적으로 황 교수의 논문이 거짓이라는 것을 믿긴 힘들었다. 다수의 연구자가 참여했고, <사이언스> 검증까지 있었는데 ‘과연 허위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DNA 검사를 한 뒤 2번 줄기세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뒤이어 황 교수가 재검증을 거부하면서 논문에 문제가 있다는 심증을 갖게 됐다.
광고
〈PD수첩〉이 황 교수쪽이 제공한 줄기세포로 검사를 했는데 2번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증거다. 하지만 DNA 검사를 대행해준 ‘아이디진’은 이후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PD수첩〉과 다른 말을 하지 않았나.
=아이디진은 우리가 갖다준 5쌍의 세포를 검사해서 결과만을 줬을 뿐이다. 체세포와 줄기세포를 줬는데, 체세포는 아예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줄기세포 2번만 명료하게 나왔다. 그 상태에서 아이디진은 양 세포 사이의 DNA 일치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 체세포가 다 망가졌으니까. 그래서 그것을 법의학자들에게 갖다주고 논문에 쓰인 DNA와의 일치 여부를 확인했다. 2번은 확실히 달랐고 4번은 법의학자마다 의견이 갈렸다.
그런데 <조선일보> 등 언론이 어떻게 기사를 썼는지 다시 한 번 보라. 아이디진 연구원의 판독할 수 없다는 코멘트를 가지고 〈PD수첩〉이 검사 결과를 호도한 것처럼 몰아갔다. 한국방송은 DNA 검사 때 〈PD수첩〉이 파라포름알데히드를 써서 판독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00%를 쓴 것도 아니고 4% 정도 쓰는 건 문제없다. 그런데도 상당수 언론들이 이 주장을 검증 없이 받아썼다. 게다가 한 PD가 피츠버그대의 김선종 연구원을 인터뷰할 때 김 연구원이 들었다는 “죽이러 왔다”는 말을 제목으로 뽑았다. 녹취록을 봐도 한 PD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언론 보도가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조선일보>는 ‘PD 저널리즘’에 대해서도 공격했는데. PD는 기자처럼 전문 취재 교육을 받지 않고, 사실 확인보다는 그림을 만드는 데 몰두한다는 기사였다. 실제로 중립성이 미덕이어서 객관적 요건을 갖춰야 하는 신문 기사와 달리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관점이 분명하지 않나.
=그런 차원에서 PD 저널리즘이 주관적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하지만 PD 저널리즘이 심층성이 없나, 아니면 증거도 없는데 엉터리나 짜깁기로 작품을 만드나.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팩트(사실)만 전달했다. 난자 윤리 문제와 관련한 〈PD수첩〉의 보도도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나. 그 때문에 황 교수가 사과하고 공직에서 사퇴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사실을 호도해 그릇된 인상을 전달하는 데 급급하다. PD 저널리즘까지 운운하는 걸 보니, 오버를 해도 이만저만한 오버가 아니다.
조·중·동에게 PD 저널리즘은 위협적이다. 시사교양 PD들이 비교적 개혁적인 성향이고, 실제로 그런 프로그램을 많이 만드니까. 그래서 (지난 선거 때) 한나라당도 선거 관련 보도를 뉴스로만 제한하려 했던 것이다. <조선일보>는 〈PD수첩〉의 취재윤리 문제를 앞세워 PD 저널리즘의 싹을 아예 자르려고 했다.
PD 저널리즘이기 때문에 이번 특종이 가능했다는 시각이 있다. 기자와 달리 PD는 팀으로 움직이면서 인적·물적 물량을 대거 투여할 수 있다. 〈PD수첩〉의 취재인원과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분명 그런 강점이 있다. 〈PD수첩〉은 PD 8명, AD 6명, 작가 4명, 서브작가 8명 등이 만든다. 1회 방송분에 대략 2600만원이 책정된다.
우리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적었다
오늘 징계위원회가 열렸는데, 한 PD가 피츠버그에 가서 김선종 연구원에게 검찰 운운한 내용은 사전에 알고 있었나.
=취재윤리 위반 내용은 사전에 알고 있었다. 녹화분을 함께 봤으니까. 나와 한 PD가 각각 1개월 감봉을 받았다. 최진용 시사교양국장은 15일 근신이다. 경징계는 아니다. 겸허히 받아들인다.
처음에 여론의 역풍이 그렇게까지 거셀 것이라고 예상했나.
=그런 공격적인 반응에 대단히 놀랐다. 황 교수의 난자 윤리에 관한 방송을 시작하기 전날 밤 보도자료를 뿌렸는데, 다음날 방송 때까지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방송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정도였다. 역풍이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그렇게 거세리라곤 상상 못했다. 우리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매우 적었다.
〈PD수첩〉은 비틀어진 애국주의의 희생양이기도 했다. 대다수 언론은 〈PD수첩〉이 제기한 의혹이 합리적임에도 이를 취재하지는 않은 채 애국주의 물결을 타고 〈PD수첩〉을 난타하기 바빴다.
=언론이 황우석 신화를 만들었다. 언론이 황 교수를 신화적으로 포장했고, 국민은 열성적으로 환호했다. 그런데 〈PD수첩〉이 여기에 반한 것이다. 그랬더니 국민들이 들고일어났고, 언론은 대중 추수주의적인 보도를 했으며, 우리는 (국민에게) 공격당했다. 언론에서 잉태된 악순환이었다.
사이버 테러는 없었나.
=한 PD가 고생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있는 가족사진이 험한 이야기와 함께 인터넷에 나돌았다. 그래서 회사 쪽에서 24시간 경호원을 붙여줬다.
〈PD수첩〉이 지난 6~7월에 방송한 병역 기피를 위한 이중국적자의 국적 포기 문제도 사실상 국가주의의 한계를 담고 있지 않나.
=그런 관점에서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PD수첩〉은 애국주의나 국가주의를 취하지 않았다. 징병제가 옳다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군대에 가는 상황에서, 안 가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거다. 고관대작의 자식들은 다 빠져나가고 일반 국민들에게 군대 갈 것을 강요한다. 기득권층이 군대를 안 가면, 군대가 누구로 채워지겠나? 돈 없고 ‘빽’ 없는 민중의 자식들뿐이다.
황 교수 관련 후속편 준비 중
〈PD수첩〉의 의혹 제기로 여러 사회 병리적 현상이 나타났다. 황우석을 무조건 변호하는 네티즌이나, 진실을 파헤치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이웃 언론사 때리기에 바쁜 보수언론이나, 나에겐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인터뷰하러 오는 길에 탄 택시 기사는 “〈PD수첩〉이 괜히 황우석 교수를 건드려 국가의 위신과 경제가 망가지게 생겼다”고 말하더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장주의의 한 단면이다. 절차나 과정은 중시되지 않는다.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한 명에게 몰아줘야 한다는 생각, ‘안 되면 되게 하라. 하면 된다’는 1970년대 사고방식이 아직도 횡행한다. 이제 2000년대다. 뛰어넘어야 한다. 정치적 힘으로 평가받기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공정히 평가받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황 교수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황 교수는 많은 지원을 받았지만, 연구원들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PD수첩〉이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나.
=자위하자면, 한국 사회의 성과주의를 성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지 않았을까. 국익을 저해할 의도는 없었지만, 당장 혼란스럽더라도 장기적으로 사회의 투명성을 확립하고 검증 시스템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길 바란다.
프로그램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 노조 쪽에서 중단됐던 〈PD수첩〉 재방을 요구할 것으로 보이는데.
=지켜볼 일이다. 황 교수 관련 취재는 계속하고 있다. 노성일 기자회견장에도 취재진이 나갔다. 후속편을 준비 중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우리도 마음이 편치 않다. 〈PD수첩〉 제작진은 무엇보다도 하루빨리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한 철저한 재검증이 이뤄지길 원한다.
![]() | ||||
![]() | 방송 중단이지 폐지는 아니다 |
올해는 〈PD수첩〉 15주년이다. 〈PD수첩〉은 지난 5월31일 15주년 특집 프로그램에서 “능력이 모자라서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적은 많았지만, 압력 때문에 피해간 적은 없었다”며 앞으로도 약자의 편에서 성역에 도전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던 〈PD수첩〉이 황우석 교수를 보호하자는 ‘애국적 여론’에 밀려 방송 중단된 상태다. 김선종 연구원에 대한 한학수 PD의 강압 취재 때문이었지만, 15년 전통의 프로그램이 중단될 정도의 사유는 아니라는 게 안팎의 평가다.
이 때문에 그간의 줄기세포 의혹에 대한 취재가 담긴 방송분도 ‘PD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하는가’라는 이름으로 〈PD수첩〉 간판을 뗀 채 12월15일 방송됐다. 보수언론들은 〈PD수첩〉이 폐지됐다고 했지만, 김상훈 문화방송 노조위원장은 “언론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며 “폐지가 아닌 일시 중단으로 안다”고 말했다.
〈PD수첩〉은 1990년에도 네 차례 결방된 적이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직전 농촌의 현실을 다룬 내용이었는데, 문화방송 사장이 당시 남북 고위급 회담에 참석한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불방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를 항의하는 과정에서 노조 간부가 해직됐고, 〈PD수첩〉 제작진들은 카메라를 던졌다. 〈PD수첩〉은 15주년 특집 프로그램에서 “이러한 〈PD수첩〉의 저항은 1992년 문화방송 50일 파업의 한 원인이 됐다”며 자신들의 역사성을 방송 민주화 투쟁에서 찾았다.
〈PD수첩〉은 한국 PD 저널리즘의 산실이라고 불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1990년 5월8일 ‘피코 아줌마 열받았다’로 전파를 쏜 뒤, 지난 11월29일까지 660회를 방송했다. 1993년 마지막 재일 조선인 강제징용촌인 우토로를, 1998년에는 신문 개혁 문제를, 2000년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변칙 상속 문제를, 2004년에는 사회 지도층 혼맥도를 다뤘다. 최근에는 고위층의 이중 국적 자제들의 병역 기피 사실을 공개해 사회를 뒤흔들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저널리즘의 주체는 기자라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PD수첩〉을 위시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이러한 선입견도 바뀌고 있다. 출입처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자의 취재 시스템보다 특정 주제에 다수의 인원을 투입해 장기 취재하는 PD 저널리즘이 발굴 취재에 더 적합하다는 의견도 많다.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달걀 한 알 1000원 넘는 이 나라, 한국에 손 벌렸다
윤석열 구속기간 계산법 집중분석…법원 판단은 ‘깔끔하게 털고 가자’
헌재, 오늘부터 매일 탄핵심판 평의…‘윤석열 석방’ 영향 없을 듯
윤석열 다시 구속될 3가지 가능성…파면 시 불소추특권 사라진다
정부 ‘백기’에도…의대생·전공의 “학생 협박…해결된 것 없어”
야 5당 “심우정 사퇴 안 하면 탄핵”…즉시항고 포기 책임론
“너 갑자기 왜 그래?” [그림판]
“증원 없다”는데, 의대생·전공의는 왜 안 돌아오나
미국, 트럼프발 경기침체 오나…관세 전쟁 ‘부메랑’ 실물경제 적신호
윤석열이 구치소에서 떠올린 2명…본인이 기소한 양승태·임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