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방송 중단 조처 등 소극적 대응으로 비판받는 문화방송 최문순 사장…일련의 문제들은 리더십의 부재라기 보다는 개혁을 밀어붙이지 못했기 때문
▣ 김진철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 nowhere@hani.co.kr
이제야 중요한 한 고비를 넘은 셈이다. 반전 드라마 같이 흥미진진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대응책을 고민해왔다.
출구는 뜻밖의 곳에서 트였다. 12월15일 오후 황우석 서울대 교수 연구팀의 핵심 인물인 노성일(53)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한겨레>에 “황 교수팀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환자 맞춤형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가 없다”고 털어놓으면서다. 이날 오전부터 최문순(49) 사장을 비롯한 문화방송 임원들은 <pd>의 후속 보도 방영을 두고 고심하고 있었다. 결국 16일 후속 보도를 잠정 결정했으나 <한겨레> 인터넷판에 노 이사장의 인터뷰 기사가 뜨자, 방송 일정을 앞당겼다. 이날 밤 10시 ‘특집 PD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나?’가 방영됐고 판세는 뒤집혔다.
조직 재편 등 처음부터 난관 봉착
앞서 최 사장은 〈PD수첩〉 방송 중단 조처를 결정하기도 했다. 융단폭격식으로 비판을 퍼붓는 보수 언론과 악화된 여론을 피해가며 동시에 시사교양국과 경쟁·알력 관계에 있는 보도국의 반발 탓이었다. 일부에선 청와대 등의 문제제기에 밀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pd> 후속 보도가 올 안에 될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다만 광고까지 중단되는 등 우려할 만한 비판 여론 속에서 후속 보도를 과감하게 할 수 없기에 내린 전략적인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선 여론에 밀릴 일이 아니었다는 비판도 강하게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16일 후속 보도를 잠정 결정했던 15일, 시사교양국 PD들이 총회를 열어 후속 보도 방영을 촉구한 것도 이런 흐름에서 나온 것이다. 최 사장의 소극적인 대응은 X파일 보도 유보에서도 비판받았던 바다. 이상호 기자가 단독으로 취재를 마치고서도 미적거리다 낙종하는 일이 벌어졌다. 최 사장이 이끄는 고위급 임원들의 소극적인 태도가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최 사장이 지난 2월 신임 사장으로 임명된 뒤 가장 큰 고비가 지나갔지만, 줄기세포나 X파일 보도의 유보와 관련된 책임에서 최 사장과 임원들이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소극적인 보도 태도 등에서 볼 수 있듯, 문화방송의 문제와 이로 인한 위기는 오래된 일이다. 노조위원장과 언론노련 위원장을 지낸 40대 부장급 인사가 사장에 파격적으로 선출된 것부터 문화방송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이 반영된 터였다. 그래서 최 사장이 사장으로 선출되며 요구받은 것은 크게 두 가지, 쇄신과 개혁이었다. 문화방송의 정체성인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 세우기가 최 사장의 어깨에 지워진 가장 큰 숙제였다.
최 사장은 개혁 인사부터 시작했다. 세대 교체가 열쇠말이었다. 국·부장급을 본부장으로 전격 발탁하는 파격 인사를 통해 잃어버린 조직의 활력을 찾겠다는 뜻에서였다. 부사장에 신종인(58) 전 울산문화방송 사장, 보도본부장에 정흥보(49) 전 기획국장, 경영본부장에 남정채(52) 전 재무운영부국장, TV제작본부장에 고석만(57) 전 교육방송 사장, 편성본부장에 윤영관(50) 시사교양국 위원, 기술본부장에 이완기(51) 방송인프라 부국장을 임명하는 한편 엄기영 특임이사(54)는 유임했다.
최 사장이 특히 강조한 것은 문화방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스템 개편이었다. 그는 “간부 1천 명에 평사원 500명인 기형적 구조를 일 중심 구조로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내놓은 해법은 △단일 호봉제 폐지 △대국 소팀제 △지방사 광역화 △비정규직의 일부 정규직화 등이었다.
프로그램 경쟁력 약화도 큰 문제
그러나 초반부터 걸림돌이 만만치 않았다. 가장 큰 저항은 지방사에서 비롯됐다. 지난 3월 강릉 문화방송 김영일 사장의 사퇴 철회로 불이 붙었다. 결국 7월 사장 교체를 반대해온 2대 주주 최돈웅씨의 주식 49%를 자사주 매입 형식으로 사들이면서 마무리가 됐지만, 역설적으로 지방사 광역화 문제는 사실상 철회된 것으로 풀이됐다.
그나마 임금 삭감만이 지켜졌다. 지난 6월 문화방송 노사는 임금을 6% 삭감하는 데 합의했다. 당초 10% 선에는 크게 못 미치는 결과였다. 최 사장은 자신의 연봉은 20.45% 자진 삭감했으며, 다른 임원들도 11.38% 삭감을 결정했다. 거의 유일하게 실현된 개혁안이다. 조직효율 개선을 위해 6월에 실시한 명예퇴직제 역시 구성원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접수 기간을 늘려가면서 신청을 받았지만 12명이 신청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개혁안 실현이 지지부진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무엇보다 크고 작은 사건이 잇따라 터져나온 탓이 컸다. 끊임없는 사건 사고로 사과문 발표가 이어졌다. 저녁 종합뉴스인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한 것만 해도 올 들어 7번이었다. 최 사장의 취임을 앞둔 1월 <신강균의 뉴스 서비스 사실은> 제작진 등의 ‘구치백 사건’으로 시작해, 6월엔 파일럿 프로그램 <파워TV>의 ‘극기지왕’ 꼭지에서 1박2일 촬영한 화면을 2박3일간 촬영한 것처럼 조작 편집해 물의를 빚고 사과문을 냈다. 이어 7월엔 <음악캠프> 생방송 중 인디밴드의 알몸 노출 사건으로 사과하고 관련자를 징계했다. 8월엔 중국영화의 한 장면을 실제 ‘731부대’의 생체실험 발굴 영상인 듯 보도해 사과했고, 브로커 홍아무개씨의 검·경·언 로비 의혹 사건에 직원이 연루돼 해고 등 중징계를 받는 일도 벌어졌다. 안기부 X파일 보도 문제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와 함께 10월 ‘상주 참사’는 최대의 고비인 듯 보였으나, 이달 〈PD수첩〉의 취재윤리 위반은 문화방송의 위기감을 최고조로 올려놨다.
일련의 사건들이 최 사장의 리더십 부재에서 기인했다는 일부 보수 언론 등의 비판도 있으나, 사건·사고 등을 더 세밀하게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 구치백 사건이나 브로커 홍씨 사건 등은 과거의 구태를 벗지 못한 일부 보도국 간부 등을 중심으로 벌어진 일로, 이들이 개혁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최 사장의 미진한 개혁을 중대한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극기지왕’ 편집 조작이나 731부대 오보, 상주 참사 또한 개혁을 통해 조직을 쇄신하지 못해 드러난 느슨한 조직문화의 단편을 보여준 사건이었지만, <음악캠프> 사건은 돌발적인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프로그램의 경쟁력 약화도 무엇보다 큰 문제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굳세어라 금순아> 등 일부 드라마에서 상종가를 치기도 했으나, 그동안 문화방송 경쟁력의 한 축이었던 예능 프로그램 등이 무너지면서 전반적으로 경쟁력이 급격히 저하됐다. 주간 시청률 집계에서 20위 안에 드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지경까지 왔다. 결과적으로 11월 광고 수주액 집계에서 SBS보다 30억원 적은 433억원이라는 수치가 나왔다.
이에 대한 원인 분석은 다양하지만, 강력한 개혁 정책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문화방송의 한 고위관계자는 “적극적인 개혁이 추진되지 못해 조직이 느슨해진 측면이 분명히 있다”며 “올 한 해는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는 등의 이유로 개혁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본격적인 개혁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측면의 해석도 있다. 한 시사교양 PD는 “최 사장이 개혁의 상징으로 취임했지만, 일부 간부들의 인사에서 구시대적인 인물들을 중용한 측면이 있다”며 “실무진들을 개혁적인 사람들로 배치하면서 적절한 조화를 끌어내기 위한 인사였지만, 이로 인한 불협화음도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 적극적이며 동시에 구성원들에게 설득력 있는 개혁을 이어가기 위해선 균형보다는 파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균형보다는 파격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장기 전략과 철학의 부재가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과거 ‘1등 채널’이라는 신화에 갇혀 문화방송 스스로 뿌리 깊은 문제들의 원인에 대한 해법보다는 임기응변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이젠 최문순의 문화방송 2년차가 어떻게 풀려나갈 것이냐가 문제다. 이번 〈PD수첩〉 사태에서 해법은 나와 있다. 개혁을 향한 집요하고 끈질긴 항해가 문화방송의 정체성을 제대로 구현해내리라는 것. 〈PD수첩〉 방영을 앞둔 15일 밤 최승호 〈PD수첩〉 책임 프로듀서가 남긴 말에서 진실의 속성은 개혁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문화방송과 최 사장을 향한 조언일 수 있다. “진실(개혁)은 때로는 계속 참혹하고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파도 그것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p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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