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와 학대 속에 시들어버린 어린 꽃들에게 바치는 진혼가
어리석은 우리여, 아이들이 보내는 침묵의 호소를 들어보자
▣ 이숙인/ 작가·하자작업장학교 교사 sookin84@hanmail.net
머리가 하얗게 비워진다는 것, 바로 이런 느낌인가? 아침 뉴스를 열어보니, 부모와 헤어져 살던 남매 중 한 아이가 아파트 22층에서 뛰어내렸단다. 화가를 소망하던 14살 소년이었다. ‘가진 것은 손재주밖에 없어, 예고의 꿈을 접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이젠 성적 비관만이 아닌가 보다. 꿈이 찢기고 삶이 신음한다. 십대 자살도 버거운데 이젠 아이들 방치와 학대가 수위를 넘고 있다. 다리미에 허벅지를 지지고 굶어죽기 직전에 발견된 영훈이, 그 아이가 살았던 의왕시에서 이번엔 혼자 있던 9살 아이가 자신이 기르던 도사견에 물어뜯겨 죽었다.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마지막 숨이 끊기던 그 찰나, 아이는 얼마나 사람 기척에 갈급했을까! 누가 하루만 먼저 왔어도, 누가 옆에서 이 아이가 지내는 나날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진 경우만도 방치된 아이들이 3800명에 달하는데 전국 39개 지역에만 있다는 그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얼른 신고만 해줬어도…. 그래도 착한 교사 덕에 연결된, 그 터무니없이 일손 모자라 아이와 엇갈리던 사회복지사랑 좀더 일찍 만나기만 했어도….
견디다 견디다 으깨지는…
내 젊은 날 꿈꾸던 세상은 헛꿈으로 끝나고 좀더 나아지리란 세상에 대한 기대도 소인국의 걸리버처럼 결박당한 이 정권의 무력함에 허탈해진 지금, 그저 내 아이만이라도, 내가 돌보는 이 학교 아이들만이라도, 하며 누르고 참으며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5년이 되어간다. 이제 내가 새삼 버려져 비명에 스러진 저 아이들로 인해 가슴이 몹시 쓰리고 아린 것은, 이것은 도무지 남의 일이 아니라 여겨지는 것은, 그렇게 수년 남짓 아이들 곁에 머물면서 그들의 마음과 갈망을 조금은 더듬어 알게 된 까닭이다.
어른이란 자들은 잘 모른다. 아이들이 얼마나 이 세상과 인간들을 잘 참고 견디는지. 그리 교활하지 않으니까, 충분히 겪어 알지 못하니까, 오히려 잘 참아내는 것이다. 그저 미련하게 버티는 것이다. 그러다 쉬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견디다 견디다 끝내 으깨지는 것이다. 버티기 싫어서가 아니라 버틸 수 없어 스르르 내민 손을 거두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누구보다 빨리 용서하고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라 터무니없이 낙천적으로 모든 것에 쉬 속아버리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 세상이, 사람들이, 반드시 나아질 것을 끝까지 믿는 기막힌 존재들이 바로 그들, 못난 성인들이 ‘미성년’이라 부르는 스무 살 미만 아이들인 것이다. ‘날 계속 때리는 저들도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겠지. 왜냐하면 나처럼 매일 이렇게 변하고 자랄 테니까. 날 버리고 간 저들도 내일이면 돌아오겠지. 왜냐하면 내가 그들이 너무도 보고 싶으니까….’ 겁에 질려 떨면서도 자신을 죽도록 팬 아비의 구직을 빌고, 아픈 어미에게 죽을 쒀주며 자신이 어서 잘되어 그들을 거두겠다는 ‘므흣’한 결심도 한다. 물론 그들도 분명 어른보다 사악할 수 있으며 매우 잔인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지옥이 더욱 슬픈 것은, 그들이 이 무너져가는 세계와 그것을 만들어놓은 어른들을, 어른들이 그들을 싸잡아 ‘기른다’고 말하는 행위로 드러내는 알량한 애정보다 훨씬,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사실 지금 내가 쉼 없이 가슴으로 흘리는 눈물의 진원이다.
그들의 바람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일하는 학교만 해도 그런 아이들, 숱하게 머물다 사라져갔다. ‘이젠 안녕, 나, 학교를 더 다닐 힘이 없어요. 미안해요….’ 원망하거나 분노조차 하지 않았던 그들이 하나둘 망막에 어릴 때마다 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된다. 스스로 떠난 아이나 타살된 아이나 미성년의 아이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언제나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옆에만, 무섭거나 춥거나 배고프지 않게만, 누구라도 좋으니 그저 함께 어려운 시간 오래도록 같이만 견뎌주길 아이들은 바랐다. 그리고 그 단순한 바람들이 나는 지금 세상 그 무엇보다 아프고 슬프다.
자, 그러니 책임이란 것을 한번 등에 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저마다 피리 부는 사내와 계집이 되어 서로를 꼬드기고 꽃 같은 생명들 만들고 마구 세상에 흩뿌린 자들은, 당연히 자기복제의 꿈은 꾸지도 말 것이며 더 이상 사기도 치지 말 것이며, 그러므로 뭔가를… 이런 자들이… 그런데… 뭔가를… 하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 일단 한다고 치자. 과연 무엇부터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
가까이 나부터 돌아보자. 일단은 무슨 일을 할 때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속이지 말 일이다. 뭐든 다 할듯 ‘폼’도 잡지 말 일이다. 장담도 약속도 말자. 다만, 있으라. 다들 그 자리에. 다만 숨죽이고 들으라. 가청권을 벗어난 침묵의 주파수를 읽어보라. 그러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심해에서 들려오는 낮은 신음과 탄식과 비명을.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대개의 교신 부호는 아주 간명한 것이다. 심오한 우울이 아니다. 타고난 절망도 아니다. 그저 배가 고프다, 편한 잠자리가 필요하다, 더 이상 맞기 싫다, 쓸쓸하다, 심심하니 뭔가 하고 싶다, 무엇보다 성장이 운명인 시절이니 ‘성장’을 하고 싶다, 날 좀 성장하도록 도와달라… 는 정도의 바람이란 말이다.
어쩌자고 꽃들을 불러왔는가
어리석은 우리여. 그러니 그때그때 응답하고 교신하자. 왜냐, 그것밖엔 어리석은 우리가 선택할 만한 ‘진실된’ 행위가 별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그대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 이제 누구도 바라거나 믿거나 기대하지 않으니 교육 입국도 선진복지 사회도 대안 공동체의 이상까지도 모두 ‘당신들의 천국’임을 ‘미성년’의 마음이 되니 또렷이 알아버렸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대여 부디 죽지 말고 살아 있어라. 그리하여 자신이 맡아 책임질 아이 하나만이라도 찾아 그 곁을 오래 지켜주어라. 이런 길이 너무 답답하고 남루하게 여겨진다면 현명한 그대여, 더 좋은 길을 찾아 내게 메일이라도 한 통 띄워주시라. 다시 속는 한이 있어도, 눈물샘이 짓물러 잦아 붙었어도, 이즈음이라면 나, 도망과 은둔의 달인일지라도, 정말이지 뭔가 다시 시작할 마음이 새삼 드는 것이다.
가여운, 너무도 아팠던 아이들아, 잘 자거라. 이제 아무것도 애타게 그리워하지도 기다리지도 말아라. 나, 정말 너희에게 미안하고 미안하다. 어쩌자고 이 칠흑 같은 세상에 꽃 같은 너희를 함부로 나오게 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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