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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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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요노는 고분고분 미국 말만 듣고 오겠지”

등록 2005-11-17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아시아 정치판의 풍운아 압두라만 와힛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APEC은 국가간의 교통과 미국에 대한 경계라는 양면성을 가진다</font>

▣ 자카르타=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10월31일 11시40분, 인도네시아 최대 무슬림 단체 나들라툴 울라마(Nadhlatul Ulama) 본부는 라마단(무슬림 금식월) 끝물에 지친 기운이 역력했다. 늘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며 살 냄새가 물씬 풍기던 본부는 경비원 몇몇이 뿜어대는 하품 아래 늘어져 있었다.

어두운 눈, 세련된 입

1층 한구석에 자리잡은 아무런 장식도 없는 두어 평 남짓한 전직 대통령 구스두르(GUS Dur·압두라만 와힛의 별칭)의 집무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퀴퀴하고 어두침침했다. 2억4천만 인구를 지닌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 인도네시아의 전직 대통령은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들- 그게 역사를 감춘 벙어리였건, 시민을 죽인 학살자였건, 나랏돈을 빼먹은 도둑놈이었건, 어쨌건- 살아가는 모습과 참 달랐다.

필봉을 휘두르던 진보적 지식인에서 인도네시아 최대 종교단체 지도자를 거쳐, 57석짜리 소수 국민각성당(PKB)을 이끌고 정족수 700석의 국민협의회(MPR)를 맘껏 휘저은 끝에 인도네시아 최초의 민주주의 대통령이 된 구스두르, 그리고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며 뽑아들었던 ‘개혁 칼’이 수하르토 32년의 유산인 ‘수구 역풍’에 밀려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함으로써 ‘인도네시아식 민주주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만 구스두르. 그러나 그이는 적어도 자신의 신념인 민주주의와 삶의 태도를 일치시켜온 정치가라는 점에서만큼은 분명히 아시아 정치판에서 보기 드문 풍운아였다. 구스두르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그이가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뒤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인정받고 있다. “‘최악 가운데 최선’이라고 농담처럼 해왔던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때가 없다.” <템포> 기자인 아흐마드 타우픽은 구스두르에 대한 향수를 털어놓았다. 그이의 후임자들이 그만큼 신통찮다는 뜻이다.

구스두르는 오늘도 혼자 외롭게 책상에 앉아 사람을 맞았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수도 없이 그이를 만났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지만 여전히 그이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시각장애가 있는 그이를 만날 때마다 나는 늘 악수 대신 팔목을 잡으며 인사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그이에게는 어두운 눈 대신 세상을 보는 세련된 입이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정치가들을 만나왔지만, 구스두르만큼 거침없이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소리를 내뱉는 이들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이가 기자들에게 가장 즐거운 ‘인터뷰감’으로 꼽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말문이 열렸다. “내가 왜? 그가 내게 청하지 않은 걸 내가 뭣 때문에!” 경험 있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처음 선을 보이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에게 말 한마디 해줄 수도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구스두르는 대뜸 소리를 높였다. “그냥, 가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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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두르는 전직과 현직이 만나 무슨 상의를 하거나 조언을 구하는 문화가 인도네시아에 없다고 딱 잘랐다. 몹시 불쾌했던 모양이다. 구스두르가 대통령 시절 장관을 지냈던 유도요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단 한 번도 구스두르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조언을 구하기는커녕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뭘 어떻게?” 그이의 독설이 이어졌다. “어차피 유도요노는 APEC에 가서도 미국 말만 고분고분 듣고 올 텐데, 뭘….” 좀 심했다고 느꼈던지, 그이는 호탕하게 한판 웃어젖히는 걸로 입을 닦았다.

미국 상대하려면 영리해져야

APEC 정상회담 이야기가 이어지자, 구스두르는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갑갑한 주제라는 뜻이 분명했다. 그래도 오늘은 그이가 인터뷰 중에 잠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그이가 코를 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이 손이 코로 가기 시작하면, 그건 머잖아 잠든다는 신호다. 지금까지 구스두르와 인터뷰하면서 그이가 잠들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버틴 것은 2001년 대통령 집무실에서 한 인터뷰밖에 없었다. 정상회담 중에도 잠드는 ‘배포’를 지닌 인물이니, 꼴난 기자를 앞에 놓고야 오죽하랴! 그렇다고 그이가 인터뷰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잠들었다가도 대답은 기가 막히게 해대는 특별한 사람이다.

어쨌든 APEC 정상회담이란 주제로 그이의 흥미를 유발하려면 독설을 퍼부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었다. ‘탄핵’과 ‘APEC 정상회담’을 묶는 패키지로 분노를 촉발하는 게 묘수라 판단했다.

“2003년 방콕 APEC 정상회담 때는 아무래도 탄핵 정국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텐데?” 신호가 왔다. 구스두르는 책상 앞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그랬지. 어떤 사람(당시 최대 의석을 지녔던 민주투쟁당 당수이자 부통령이었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이 날 탄핵하겠다고 날뛰는 바람에 APEC 정상회담 같은 건 신경쓸 겨를도 없었지.”

시간이 제법 흐른 때문인지, 그이의 분노가 많이 수그러든 느낌이 들었다. 뜻밖에 구스두르는 태연히 웃으면서 자신이 당한 탄핵을 이야기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 무렵엔 국내 문제(탄핵) 때문에 외교를 생각할 수 없었어. 그래서 그냥 갔지, 뭐.”

그랬다. 구스두르는 방콕 APEC 정상회담장에서 20명 정상을 앞에 놓고 태연히 잠들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신문들이 1면 톱으로 잠든 구스두르의 사진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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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본격적으로 APEC 정상회담 이야기가 시작됐다. 구스두르가 보는 APEC 정상회담은 ‘양면성’이었다. 하나는 APEC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인 면인데, 그이는 ‘교통’을 강조했다. “‘만남’ ‘대화’ ‘이해’라는 과정을 거치는 교통의 원칙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APEC 정상회담에 의미를 부여했다.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면으로 ‘경계’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그이는 이 부분에 온갖 열정을 바쳐 설명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건 미국에 대한 경계였다. “나는 미국을 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양성을 지닌 민주주의의 핵이라는 부분도 인정한다. 그런 미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영리할 필요가 있다. 그 영리함이란 미국이 지닌 현실적인 힘을 인정하고, 그이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는 데 있다….” 그이는 상대방을 이해시키고자 수많은 본보기를 들었다. 그 가운데 쿠바의 카스트로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등장했다. “카스트로와 차베스는 훌륭한 인물이지만 영리하지 못한 정치가야.”

그건 두 정치가가 ‘자진해서’ 미국이 적으로 여기게끔 만들어 ‘자진해서’ 세상 밖으로 떠나버렸다는 뜻이다. 구스두르는 자신의 대통령 시절 인도네시아가 독자 외교노선을 갈 수 있었던 건, “미국에 맞설 만한 힘이 인도네시아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주적인 외교노선을 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이는 미국을 인정하는 것과 미국에 굴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라고 덧붙였다.

김대중은 나의 ‘영원한 사부’

이야기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으로 넘어갔다. 그이는 지나치게 미국에 끌려가는 아시아의 현실을 놓고 ‘연대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현실적 해법은 없다고 딱 잘랐다. “나는 어떤 형태로도 ASEAN이 미국을 ‘반격’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유의 인식은 학자들이 책상머리 의지일 뿐이다.”

구스두르는 APEC 정상회담에 대한 추억도 기억도 별로 없다고 고백했다. APEC 정상회담에 대한 전망도 특별한 게 없고 개선 방향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APEC 정상회담은 그저 정상들이 만나는 의식적인 행위일 뿐이다. 그렇게 한 이틀쯤 21개 나라 정상이 우르르 만나서 갑자기 무슨 세상을 바꿀 만한 묘안을 뽑아내는 게 아니란 말이지. 교통한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면 되겠지. 그렇게 정상들이 만나 밥 먹는 일에(크게 웃으며)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뜻이야.”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니 또 그 이야기가 나왔다. 인터뷰 끝에는 늘 나오는 18번인 ‘사부 김대중’ 이야기였다. “아시아에는 김대중이 여러 명 필요해. 그이가 안타까워. 그 아이들 문제 때문에 고통이 심하겠지? 지면을 통해서라도 안부 전해줘. 영원한 나의 사부라고!”

구스두르는 누구에게 편지 쓰는 버릇이 없어 ‘사부 김대중’에게 직접 안부를 묻지는 못했지만 늘 마음에 두고 배워나간다며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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