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복원부터 뉴타운 개발까지 이병박 3년의 평가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소통하지 못하는 비민주적 리더십을 한결같이 지적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지난 10월11일 서울시가 기자실에 뿌린 보도자료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자료의 제목은 ‘청계천 방문해보니 “좋아요” 98.6%’.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에 참여한 시민 710명에게 ‘청계천을 방문해보니 어떠냐’고 물었더니, 63.5%가 “매우 좋다”, 35.1%가 “약간 좋은 편이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시민 절대다수가 청계천 복원에 만족하고 있다는 설문 결과는 서울 시민 대부분이 이명박 서울시장의 3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증거’로 다음날 아침 조간신문을 도배했다. 청계천 새물맞이를 축하하러 나온 시민들에게 ‘청계천이 어떠냐’고 물으면 어느 누가 “싫다”고 답할 수 있을까. 조사 방식과 결과(98.6%!) 모두 ‘엽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구름 위를 날고 있는’ 이 시장과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그런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써주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교통체계 개편은 긍정적 평가
그렇지만 청계천 복원 이후 이명박 시장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가 높아진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최근 주요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 이 시장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넘어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해온 고건 전 국무총리를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 시장의 3년 시정은 어땠을까. 그가 벌인 주요 역점 사업은 △청계천 복원 △뉴타운 개발 △교통체계(버스체계) 개편 △서울광장 조성 등 크게 4가지다. 그동안 우리 도심에서 이뤄진 막개발을 반성하고(청계천 복원·서울광장 조성), 강남에 견줘 낙후된 강북에 활력을 불어넣으며(뉴타운 개발),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에 유리한 교통체계(버스체계 개편)을 만들겠다는 이 시장의 발표에 시민과 전문가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두고두고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청계천 복원사업 같은 과거를 반성하자는 의미의 사업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는 데” 있었다. 불협화음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각종 사업이 닻을 올린 지 1년쯤 지나면서부터다. 전문가들은 “서울시와는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청계천 복원 때는 시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들을 모아 만든 ‘청계천 복원 시민위원회’ 위원들이 집단 사퇴했고, 서울 광장은 현상공모로 뽑힌 안이 멀쩡히 있는데도, 시 간부들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잔디광장으로 바뀌었다. 뉴타운 사업 때는 결과와 효율성에 대한 집착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겠다”며 초빙해온 MA(Master Architect·뉴타운 사업 관리와 디자인 조정을 위탁받은 건축가)들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왕십리 뉴타운의 총괄 MA를 맡았던 건축가 정기용(기용건축 대표)씨는 “왕십리에 좋은 임대주택을 만들고, 기존의 도시 조직을 해치지 않으면서 도시를 서서히 바꾸려는 시도가 모두 좌절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교통체계 개편뿐이다. 중앙버스전용차로를 도입한 뒤 서울 도봉·미아로에서 버스의 속도는 2004년 6월 시속 11km에서 그해 말 22km로 2배 빨라졌다.
지난 10월6일 발표된 문화연대의 ‘전문가 100명 설문조사’ 결과는 이 시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응축해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 시장의 ‘가장 잘한 정책’으로 ‘청계천 복원 사업’(26명)을 꼽았지만, 각론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졌다. ‘청계천 복원 사업이 역사·문화 복원 사업이라고 생각하냐’는 물음에는 64명이 “아니다”라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 “용적률 확대를 골자로 한 청계천 주변부 개발”(38%),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인 행정”(38%), “문화유산 파괴”(13%) 등을 꼽았다.
‘가장 잘못한 사업’에는 뉴타운 사업(31명)이 1등으로 꼽혔다. 서울 은평 뉴타운 지구 안에 포함된 한양마을 주민 인성진(68)씨는 “뉴타운이 사람을 죽인다”며 거침없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한양마을은 1978년 북한 적십자 대표단이 오가는 통일로 주변에 들어선 지저분한 판자촌들을 정비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전시 마을이다. 계획된 시범마을답게 주택단지는 반듯하게 잘린 50평의 땅 위에 25평 크기의 단층 주택이 두채씩 사이좋게 붙어 있다. 10월11일 돌아본 마을 언저리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렸고, 전봇대에는 ‘물건지 조사 반대’ ‘수용 웬말이냐’는 펼침막이 어지러이 휘날리고 있다. 마을을 갈아엎어 뉴타운이라는 이름의 아파트촌을 만들려는 서울시와 “우리끼리 평화롭게 살게 해달라”는 주민들의 전쟁은 서울시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가고 있다.
‘가장 잘못된 사업’ 뉴타운 1등
사업이 끝나면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지고, 그 터에 지어진 아파트는 돈 많은 강남 사람들의 차지가 된다. <한겨레>가 4월에 입주가 시작된 성북구 길음 뉴타운 2구역의 조합원 명부를 분석한 결과, 1997년 조합 설립인가 당시 전체 조합원 가운데 원주민은 798명이었고, 재정착에 성공한 사람은 82명이었다. 재정착률이 10.3%에 불과한 셈이다.
이 시장은 10월 초에 나온 자서전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에서 “(청계천 복원이) 개발주의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생명 중심의 새로운 가치를 좇”는 사업이라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개발주의는 사람과 소통하는 민주적인 리더십을 몸에 익힐 때 극복할 수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해 11월 SH리서치에 맡겨 조사한 ‘서울시정에 대한 시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시장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가에 대해 “매우 그렇다”는 3.1%, “그렇다”는 13.4%에 불과했다. 손석기 시의원(열린우리당)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민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게 이 시장의 가장 큰 단점”이라며 “그 때문에 그의 시정 3년이 평가절하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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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서울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표현은 그를 ‘불도저’라고 부르는 것이다. ‘불도저’라는 표현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박정희 개발독재 시절의 인물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원조 불도저’ 김현옥 시장(1966~70년 재임)의 처참한 실패가 투영돼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김현옥 시장은 4년의 재임 기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도로·지하도·육교 등을 세웠고, 세운상가와 여의도를 개발했고, 400동이 넘는 시민아파트를 만들었다. 그는 4·19, 5·16 등 국가 기념일에 수십건의 공사를 시작했고, 8·15나 10·3(개천절) 등에 날짜를 정해두고 공사를 끝냈다. 그 기간이 상상도 할 수 없이 짧았다. 김현옥은 한마디로 일에 미친 사람이었지만, 1970년 4월8일에 시민아파트 한 동(와우아파트)이 무너지며 불명예 퇴진했다.
이 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청계천·뉴타운·도심 재개발·버스체계 개편 등 많은 사업을 쏟아냈다. 그는 취임 1·2주년 날짜에 맞춰 청계천 복원공사와 버스체계 개편을 시작했고, 완공 날짜도 정확하게 못박았다. 이 시장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그의 눈부신 활약에서 김현옥의 옛 모습을 읽어내는 사람이 기자만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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