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됩니다”를 용납치 않는 이명박 시장, 측근들은 의외로 부드럽다고 입모아…시민단체들은 반대쪽의 말을 무시해버리는 과도한 자신감에 혐오에 가까운 평가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소설가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권율에 대해 “무섭게도 집중된 위압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임진강에서 이겼고, 용인에서 이겼고, 수원에서 이겼고, 이천에서 이겼고, 행주산성에서 이겼다. 권율은 그 무수한 아수라를 돌파한 자의 살기를 몸속 깊은 곳에 숨기고 있었는데, 이순신은 그에 못지않은 아수라를 돌파한 살기로 그의 살기를 받아낸다.
이명박 시장을 지켜보면 그에게서도 비슷한 ‘살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처절한 가난을 딛고 일어나 30대 현대건설의 젊은 최고경영자(CEO)로 월급쟁이 신화를 이루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두번의 국회의원과 1천만 수도 서울의 시장 자리를 움켜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살기다. 그가 얼마 전 “경부운하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특히 환경운동 단체들은) 일종의 두려움을 느꼈는데, 그것은 입으로 내뱉은 말이면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것을 경험으로 보아 알기 때문이다. 그의 한 측근은 “이 시장은 세상을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핵심을 꿰뚫는 능력 탁월하다”
이 시장의 아들 시형(28)씨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시형씨의 중학교 친구 ㄱ씨는 “이 시장네 집에 놀러갔다가 겪은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집에 도착해서 시장님께 인사를 드렸죠. 대뜸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서울대에 갈 수 있어, 없어?’라고 묻더라고요.” 아이들은 쿡쿡 웃으며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ㄱ씨는 “물론 농담조로 한 말씀이었겠지만, ‘서울대에 갈 수 없으면 우리 애의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얘기로 들려 서운했다”고 말했다.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런 특성은 일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강점이 되곤 한다. 고건 시장과 이명박 시장 밑에서 언론과장을 했던 최임광 서울시 감사과장은 “고 시장은 심사숙고하는 분이지만, 이 시장은 매우 적극적인 분”이라고 둘의 차이를 설명했다. “공무원들이 하는 말 가운데 시장님이 제일 싫어하는 말은 ‘이건 안 됩니다’와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그렇게 해왔습니다’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으면 생각을 바꿔 다르게도 해보고,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파악해서 잘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때문에 취임 직후 관료적 사고에 물들어 있던 서울시 간부들이 시장에게 많이 깨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손석기 서울시의원(열린우리당)은 “이 시장은 사물의 핵심을 꿰뚫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2002년 7월, 시장 취임 직후 다른 시의원 3명과 함께 시장을 만나 지역 현안을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몇 마디를 듣고 핵심을 정확히 꼬집어내더라고요.” 또 다른 서울시 간부는 “그렇기 때문에 엉성히 보고했다가는 금방 들통이 난다”며 “직접 현장을 확인하고 한 보고인지 아닌지 귀신같이 잡아내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사람들은 “언론에 비치는 모습과 달리 의외로 부드러운 면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몇년 동안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 측근은 “부하 직원들에게 절대 큰소리를 내는 적이 없고, 항상 존댓말을 쓴다”고 말했다. 전직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제가 시장님을 꾸준히 봐왔지만 큰소리를 내신 것은 딱 한번 겪었어요. 삼일고가 철거 문제를 놓고 양윤재 부시장과 음성직 당시 교통관리실장이 크게 말다툼을 했거든요. 그때 ‘지금 뭣들 하는 거냐’며 큰소리를 내시더라고요.”
2004년 7월 교통체계를 개편한 뒤 준비 부족으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을 때는 교통국 직원을 모두 중국집으로 불러 밥을 먹이며 격려했고, 2003년 11월 정두언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술자리에서 여기자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해 곤란을 겪을 때는 기자실로 직접 내려와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해 사태를 조기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그의 시정을 꾸준히 지켜본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그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평가를 내린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박정희와 정주영 시대를 대표하는 토건업자라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이 연 토론회에서는 이명박 시장에 대한 인신공격에 가까운 거침없는 비판이 자주 쏟아진다. 서울시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자기쪽에 있는 사람들의 비판은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지만,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의 지적에는 ‘어차피 반대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라며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감은 통제불능이 될 것인가
그를 주변에서 보좌하는 참모들도 “너무 자신감이 많다”며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태도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일에 대한 성취감이 대단해서 밑에 사람들이 못 쫓아가면 피곤하다”며 “지도자라면 아랫사람에게도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데 그런 것을 잘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시장이 10월 펴낸 자서전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를 보면, “내가 아직 상인대표 한 사람을 설득할 만한 진심을 보여주지 못했는가”라며 고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어떤 사람이든 (마음만 먹으면)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으로 읽힌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올해 펴낸 <사람 vs 사람> 둘째권에서 “자신의 성공 경험을 기초로 한 그의 자신만만한 문제해결 방식에 문제제기를 하긴 쉽지 않지만,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거대한 사회적 권력과 맞물려 ‘통제 불가능한 파워’가 될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고 적었다. 그의 자신감은 어떤 사람에게는 경외의 대상이, 어떤 사람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이 시장에 대한 평가가 ‘존경’과 ‘혐오’라는 두 극단을 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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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이명박 서울시장과 관련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첫 번째가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사람과 함께 일하면 힘들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장과 가까이 있어본 사람이라면 불도저보다는 그의 ‘치밀함’ 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안다. 이 시장은 치밀하고 꼼꼼하며 완벽주의자다. 청계천을 예로 들면 3년 동안 매주 토요일에 하는 청계천 회의를 한번도 거른 적이 없다(공휴일도 예외 없이 150여 차례나). 회의는 보통 두세 시간이 걸린다. 실무자까지 참석시켜 미세한 부분까지 의견을 들으며 하나하나 체크한다.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한 다음에야 실행을 하니, 매사가 일사천리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불도저는 뒷부분만 보고 하는 말이다. 기업가 시절부터 그 많은 일들을 불도저처럼 처리했으면 지금의 현대그룹이, 지금의 서울시가 가능했겠는가? 확고한 비전, 치밀한 계획과 컨센서스 그리고 효율적인 집행! 이것이 이명박 리더십의 요체다. 차라리 ‘컴도저’(컴퓨터+불도저)라는 별명이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이어지는 질문은 ‘이 시장은 재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다. 극복? 도대체 무엇을 극복해야 한다는 건지?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를 보자. 당시 열세였던 여당 후보는 이 시장의 재산 문제를 단 한번도 공격한 적이 없다. 면밀히 조사해보니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재산 형성에 의혹이 있다’는 설로 남겨두는 게 낫지, 공격해서 해명의 기회를 주는 것은 손해라는 계산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시장의 재산은 너무 간단하고 명료하다. 현대에 있을 때 외국 손님 접대용으로 지어준 논현동집, 중동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한 공로로 받은 서초동 부동산, 서울시에서 지하철 공채대금으로 받은 양재동 부동산이 그것이다. 1970년대에 마련한 것을 단 한번도 사고 판 적이 없다. 그때 가치로 몇억원 하던 것이 자연스레 지금 백 몇십억원이 된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은 맥이 풀릴 것이다. 그런데 사실이 그런 걸 어떡하겠는가?
다음은 군대 문제다. 이것은 참으로 불성실한 질문이다. 확인해보면 금방 알 것을…. 이 시장은 이태원 시장에서 청소부를 하며 대학을 다니다가 심한 병을 얻게 된다. 병원비도 없고 어차피 군대는 가야 하고, 군대를 가면 숙식도 해결하고 공짜로 치료를 받겠거니 해서 자원입대를 한다. 그러다 훈련소에서 쫓겨나 돌아온다. 아들의 병역 문제는 더욱 기가 막힌다. 사병으로 가서 병장 제대한 아들을 놓고 확인도 안 해보고, ‘어떻게 할 거냐’라고 걱정을 해준다.
청계천 준공 뒤 받는 질문들은 이렇다. ‘청계천 다음은 뭐가 있냐?’ ‘지금의 인기가 계속되리라 보느냐?’ 등등. 한마디로 이벤트 정치, 이미지 정치에 길들여진 질문들이다. 정치는 사업과 마찬가지로 신용이 가장 중요하다. YS, DJ, 노무현은 모두 신용으로 대권을 잡은 사람들이다. YS나 DJ는 일관된 민주화 투쟁 경력으로, 노무현은 지역구도 타파라는 일관된 ‘바보’ 행보로 신용을 쌓았다. 이 시장은 우리나라를 고속으로 성장시킨 주역의 하나라는 신용이 있다. 그런데 그게 정치권에서도 통하겠느냐는 의문이 많았다. 하지만 청계천으로 그 신용이 여전함을 입증했다. 신용으로 쌓은 인기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점점 보태질 뿐이다.
이 시장이 고속도로, 청계천과 같이 ‘건설사업에만 능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도 많다. 청계천을 토목건설 공사의 걸작품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계천의 위대함은 그 외형적인 결과가 아니라, 수십만명의 상인과 노점상들을 설득하고, 모두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일을 가능하게 한 데에 있다. 서울시는 주변 상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무려 4200차례나 만났으며, 그러면서 보상에 관한 각서를 단 한번도 써준 적이 없다. 부안 방사선 폐기물 처리장 사태와 너무 대비되지 않는가? 청계천이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은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입으로만 먹고사는 ‘아마추어’들이 우리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는 이때, 청계천은 우리에게 희망과 가능성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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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재옥/ 서울시 의원(민주노동당)
2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이명박 시장과 서울시의회 여성특위 위원들이 점심식사를 겸한 간담회 자리에서 뜻하지 않게 청계천 문화재 논쟁을 벌이게 됐다. 그때 시장은 “청계천에 문화재가 어디 남아 있겠느냐, 복개공사하고 고가까지 설치했는데 그게 온전하게 남아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때 서울시는 문화재청의 요구로 애초 계획에 없던 청계천 문화재 시험 발굴을 시작하고 있었다. 문화재 발굴이 끝나기도 전에 공사를 시작한다는 것은 문화재 복원을 신경쓰지 않겠다는 것이었지만, 서울시는 공사 일정을 늦출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논쟁이 길어지면서 여성의원 간담회 자리가 썰렁해지고 있을 무렵, 시장은 얘기를 마칠 작정이었던지, ”심 의원, 하나를 알아도 내가 더 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며 말을 잘랐다.
하기야 건설회사 사장님 출신이신 시장님이 공사에 문외한인 나와의 논쟁이 무어 그리 달가웠겠는가. 그렇지만 그것은 사회적 공론화 과정 없이 공사를 밀어붙이고 있는 서울시에 대한 중요한 문제제기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깔아뭉개는 듯한 그의 태도를 참기 힘들었다. ”시민의 마음은 알아도 하나를 더 아니까 제 얘기를 들으시지요“라고 받아쳤으나 시장은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그때 비판을 듣는 것을 매우 불편해하는 이명박 시장의 성격과 그의 지나친 자신감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 얼마 지나 개천의 상류인 백운동천과 삼청동천을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일이 안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 정도로 치부하는 것에서, 그가 얼마나 선택과 배제가 분명한 사람인지 또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그의 선택과 배제는 서울시의 핵심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다. 서울시의 굵직굵직한 사업이 발표될 때마다 크고 작은 문제점이 제기되고 반대도 있어왔으나 시장은 사업들을 예정대로 밀어붙였다. 최고경영자(CEO)의 의지대로 사업을 추진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은 주식회사에서나 할 일이다. 서울시는 강력한 시장의 리더십으로 움직이는 주식회사가 아니다. 서울시의 주인은 천만 시민이고, 서울시의 사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시민들의 삶의 요구여야 한다. 그만큼 다양한 이해와 갈등을 조율하고 조정하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효율성과 속도는 떨어질지언정 사업의 결정과 추진, 성과의 나눔에서 시민들 모두가 주인으로서의 참여가 보장되도록 더 노력할 수는 없는지 아쉬울 뿐이다.
이명박 시장의 속도 중심의 사업 방식은 민주주의 문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소외와 배제, 약한 자의 목소리가 무시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 모두를 조율해가려면 임기 내에 그 많은 사업을 완성시키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시민은 서울시 사업의 주인이 아니라 시장이 벌이는 기획사업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모든 사업의 필요와 목적은 그럴듯했지만 언제나 일방적이었다.
시청앞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준다고 했으나 광장은 잔디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1년에 7개월 동안 시민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버스 중심의 대중교통 체계를 짠 결과, 기사들의 체불임금은 더 늘어났다. 주거환경 개선을 이유로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가난한 원주민들과 세입자들은 뉴타운 개발로 오히려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청계천도 마찬가지다. 인왕산에서 출발한 진짜 청계천 물은 오수와 섞여 지하를 흐르고 있는데 청계천을 흐르는 한강물을 바라보며 ‘복원’됐다고 축하할 수만은 없다. 게다가 청계천에 접근조차 안 되는 장애인과 거리에서 쫓겨난 노점상들은 청계천의 화려한 특수와는 거리가 멀다.
시장의 기획사업과 속도의 화려함 뒤에는 시민들의 무겁고 느리고 답답한 삶의 일상이 있다는 엄연한 현실에 대해 이명박 시장은 좀더 몸을 낮추었으면 좋겠다. 1년도 남지 않은 임기 동안, 시장이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서울의 그늘쪽으로 더 많은 시선을 돌리고 주변으로 밀려난 시민들의 낮은 목소리에 더 귀기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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