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왜곡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대학가 친일동상 철거운동도 한창
무조건 철거할 게 아니라 기념물을 변형해 성찰의 계기로 만들어야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하정민 인턴기자 foolosophy@naver.com
기억의 공간을 재배치하는 것은 투쟁이자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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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을 철거하거나 이전·복원하고, 기념물에 변형을 가하거나 옆에 다른 구조물을 세움으로써 공간의 정치적 의미를 변형시킨다. 그래서 공간을 재배치하는 행위는 역사에 대한 기억을 재해석하고 변형하는 일이다.
만국공원·팔미도 기념비의 문화적 왜곡
퇴물로 취급되는 동상은 맥아더 동상뿐만이 아니다. 지금 대학가에서는 과거 친일 행적을 일삼았던 대학 설립자 등의 동상 철거운동이 한창이다.
대학가 친일파 동상 철거운동은 올 초 각 대학의 친일파 청산운동을 계기로 일어났다. 연세대 학생들은 전 총장이었던 백낙준씨의 동상 철거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학내 정치세력들은 동상 철거 서명운동을 벌였고, 총학생회는 ‘학교-동창회-학생’ 삼자의 선 토론 뒤 결정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서울대에선 친일 예술인으로 알려진 현제명씨와 장발씨가 문제가 됐다. 3월 발족한 서울대 일제잔재청산위원회는 음악가 현제명의 동상과 미술가 장발의 동상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전북대는 총학생회와 학교본부가 친일파 인사의 부조석에 친일 행위를 게시하는 알림판을 세우기로 합의했고, 이화여대는 김활란 동상 대신 이화학당의 재학생이었던 유관순의 동상을 세우자는 논의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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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동상 철거는 비교적 보편적인 민족 정서에 호소할 수 있어 학생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경북대의 박정희 흉상은 1980년대부터 학생들의 몇 차례의 철거 시도와 운동이 있었지만 아직은 진행형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군사독재와 미국이란 기억은 상반된 평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천은 구한말 개항장으로서 국제 교역도시인 공간적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한국전쟁과 반공정권을 거치며 인천의 공간적 배치는 미국을 중심으로 짜였다. 그 정점은 맥아더 동상이 서 있는 자유공원(옛 만국공원)이다. 김창수 인천학연구소 소장은 “러시아·영국 등 외국 공관이 들어서 있었던 만국공원에 오르면 인천의 근대사와 한국의 근대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은 가장 전망 좋은 곳을 맥아더가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그의 시선을 빌리지 않고서는 서해와 인천을 바라다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공간의 문화적 왜곡은 불과 6년 전인 1999년에도 일어났다. 인천시 유형문화재 40호인 팔미도 등대가 그러하다. 1999년 켈로부대 전우회가 한국전쟁을 추억하며 팔미도 등대 아래에 가로세로 1m 크기의 맥아더 장군 기념비석을 세운 것이다. 기념비석에는 맥아더가 한국인 켈로부대 지대장에게 친필로 사인해서 준 사진이 부조가 돼 실렸다. 100년이 넘은 등대에 개인적인 구조물을 세우는 것도 문제거니와 낙조 때 팔미도를 돌아드는 범선의 자취가 아름다워 ‘팔미귀선’이라 하여 인천팔경으로 꼽힌 곳에 들어선 전쟁영웅 찬양비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맥아더 기념석으로 인해 팔미도 등대는 빛이 나지 않는다. 등대의 주인은 마치 맥아더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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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로 이데올로기가 사라지진 않는다
황평우 문화유산연구소장은 “1999년이라면 맥아더가 한국전쟁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확전했다는 미국 학계의 비판이 있는 등 맥아더의 공적을 두고 이미 찬반이 엇갈리고 있었던 때”라며 “이런 논란의 인물에 대한 아무런 토론이나 검증 없이 주요한 문화유산 앞에 기념비석을 세우도록 한 것은 성급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기념비석이 설립된 해는 1999년이고 2002년에 팔미도 등대가 문화재로 지정됐으므로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물론 무분별한 철거는 반달리즘(문화재에 대한 고의적 파괴)으로 귀결돼 궁극적으로는 문화유산의 유실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류제홍 박사는 “동상을 우리 시선에서 완전히 없앤다고 해서 그 동상이 표상하는 이데올로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무조건 철거를 주장할 게 아니라 기념물을 변형하거나 흔적을 남김으로써 후대에게 성찰의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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