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가 생지옥이 되도록 방치한 미국 시스템은 무엇이 문제인가
소수인종이나 빈곤층을 배제한 국가통제는 작동을 멈추면 곧 무정부 상태로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미국 남부의 낭만과 생기가 넘치는 세계적 관광도시가 하루아침에 굶주림과 약탈, 강간, 살인이 벌어지는 ‘야만의 도시’로 변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연재난 앞에 드러난 벌거벗은 인간의 본성으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한 것들이 많다. 그토록 풍요로운 나라로 자부하는 미국에서 수재민들은 4~5일 동안이나 물과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주려 죽거나 약탈자로 나서야 했다. 그런데도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재난 예방과 구호, 치안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공존을 위한 노력마저 보기 힘들었던 뉴올리언스 공동체는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관리들을 해고해야 한다”
‘왜 그렇게 됐을까. 누구의 책임일까’라는 물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은 비상 재난관리에 무능력함을 보인 관료주의와 그 수장인 부시를 겨눴다. 관료주의는 미국을 떠받치는 국가 시스템의 핵심 부품 가운데 하나다. 법을 뒷받침하는 관료주의를 걷어냈을 때 미국의 공동체가 얼마나 손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뉴올리언스가 생생하게 보여줬다. 자연재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로 여겨지며 세계로 수출되는 미국적 시스템이 생각만큼 견고하지도 훌륭하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뉴올리언스의 입구는 여러 곳인데도, 관료들은 이재민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음식·물·의약품을 가져다주지 않고, 카트리나 발생 뒤 며칠을 그냥 허비했다. 연방재난관리청의 마이클 브라운 청장을 비롯해 모든 관리들을 해고해야 한다.” <뉴올리언스 타임스>는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연방정부의 늑장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가적 위기 때마다 도덕적 리더십(?)으로 포장한 미 합중국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이겨내자는 주류사회의 구호가 이번엔 잘 먹혀들지 않을 기미다. 미국 사회가 대통령이나, 자신들을 지탱해주는 관료주의를 한목소리로 비판하는 것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2005년 9월 첫쨋주는 자연재해와 서투른 관료주의가 결합된 부시 정권 최대의 위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예방하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자연재해 앞에서 자랑스럽게 여겨온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확실히 미국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 같다. 9·11 때처럼 생존자를 구하러 곧 무너져내릴지 모를 무역센터에 뛰어들었다가 숨진 소방관들의 감동마저 이번엔 볼 수 없었다. 대신 경찰은 배지를 내던지거나, 수재민들의 구호 임무를 뒷전으로 한 채 약탈범을 체포하고 그들을 향해 총을 쏴대느라 바빴다. 사망자 공식 집계는 재난 나흘째에야 겨우 시작됐다. 수술실과 병실, 물 등을 갖춘 미 해군 상륙함 바탄호가 뉴올리언스 인근인 멕시코만에 정박해 있었으나, 팔장을 낀 채 단 한명도 구호하지 않았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바탄호는 미 연방정부가 마비 증상에 걸려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불러온 죽음과 파괴는 끔찍하지만, 재해 관련 전 분야에서 정부기관들의 느리고 무능한 대응으로, 그 충격과 미국의 수치가 훨씬 커졌다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흑인이 공동체 의식 갖기 어려워
미 연방정부는 몇년 전부터 계속된 뉴올리언스의 재난 예고에 귀를 틀어막았다. 존 브룩스 전 상원의원은 “지난해 대통령을 만나 둑 붕괴 가능성에 대해 말해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미 육군 공병단이 이번에 붕괴된 폰차트레인 호수쪽 제방을 막기 위해 요청한 9900만달러의 4분의 1인 2200만달러만을 승인했다. 미시시피강쪽에서 4억9600만달러를 신청했으나, 2억5천만달러가 지원됐을 뿐이다. 언론이 끊임없이 경고했지만, 위험은 무시됐다. 카트리나 재앙이 인재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방재난관리청은 2001년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상륙을 앞으로 닥칠 3대 재앙으로 꼽았지만, 준비는 없었다. 400억달러가 넘는 돈을 쏟아부으며 연방재난관리청이 재난관리 시스템을 정비했으나 테러라는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이삼성 한림대 교수(정치학)는 “위험성이 제기돼왔던 제방 문제에 선진국답게 사전에 예방 시스템을 갖췄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데다,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 또한 늦었다”고 지적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책임 떠넘기기는 미국 정치 시스템의 취약한 고리를 그대로 드러냈다. 카트리나 상륙 전 뉴올리언스 시민들의 소개령을 내리는 단계에서부터 재난이 닥친 뒤 구호작업을 펴면서까지 서로가 권한과 책임을 놓고 다퉜다. 그러면서 피해와 혼란이 가중됐다.
미국의 시스템이 왜 이렇게 쉽게 붕괴됐을까? 억압적인 국가 통제는 그것이 작동하지 않으면 곧바로 무정부 상태나 폭력대결로 갈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김현주 광운대 교수(영상미디어학)는 “시스템을 강화하는 강한 힘은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보편적 동의가 있어야 유지된다. 그게 쉽게 무너진다는 것은 취약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소수인종이나 빈곤층을 배제하거나, 그들로부터 동의받지 못하는 미국의 시스템은 언제든 쉽게 깨져버릴 약한 고리를 내포했던 것이다. 공동체의 약한 응집력은 시스템의 붕괴를 가속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카트리나 비극의 원인을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정신의 부족”에서 찾았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우파적 시각이기는 하지만,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트러스트, 사회 도덕과 번영의 창조>에서 흑인 하층민은 오늘날 인류 역사상 가장 철저히 원자화된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고 봤다”며 “미국 인구통계국 자료를 분석해보면 2002년 백인 가구의 평균 순자산이 8만8천달러 이상으로 흑인 가구 평균 순자산의 14배나 된다. 인종차별을 느끼는 흑인들이 미국 사회에 대한 공동체 의식을 갖기 어려운 구조 아니냐”고 분석했다.
또 다른 위기, 신뢰의 상실
카트리나는 미국의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한 신뢰에 금이 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달리 식량과 물을 기다리는 시민들을 방치하고, 소수인종들은 구호의 손길에서 우선순위에 밀리거나 때론 소외될 수 있다는 현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이다. 미국은 외부의 적에 의한 9·11 테러나 카트리나와 같은 자연재해와 성격이 다른 또 다른 위기에 당면하고 있다. 바로 국가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커지는 불신과 의구심이다.
대중적 지지가 없는 국가 시스템은 한순간에 무너져내릴 수 있다. 위기에 닥쳐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수재민들이 어떻게 국가 시스템을 믿고 따를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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