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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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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미국을 아십니까?

등록 2005-09-16 00:00 수정 2020-05-03 04:24

조금씩 다른 시각과 경험 가진 미국 전문가 3인의 이야기
백인 주류의 정교한 시스템, 그 사회의 작동원리가 재앙을 부른다

▣ 사회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정리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하정민 인턴기자 foolosophy@hotmail.net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사회=개인적으로 미국에 대한 환상이 없었는데도 카트리나의 재앙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면서 놀랐다. 미국 사회의 감춰졌던 문제와 모순들이 일시에 툭 튀어나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어떠셨는지.

이영돈(이하 이영)=주검들이 즐비한 모습을 보는 순간 미국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제한된 지역에서 일어났던 9·11과 비교해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피폐화된 이번 일은 미국에 사는 백인들에게도 낯설었을 것이다. 미국이 막나가는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봤던 미국 사회에 그런 재앙의 암시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백인 중심의 사회 속에 그런 모순들을 감추고 운영을 잘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은주(이하 이은)=미디어들이 그려온 미국의 이미지가 언제나 워싱턴과 뉴욕 등 대도시 중심의 최첨단 부국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심했을 것이다. 예전에 뉴올리언스를 방문했을 때도 아름다운 재즈와 풍취 있는 건물 뒤편으로 흑인들의 피폐한 삶의 모습이 해안선쪽으로 펼쳐져 있는 식의 양면성을 본 적이 있다. 미국은 늘 그런 부분이 은폐된 채 세계 강국으로서의 정체성만 강조됐기 때문에 카트리나를 통해 환상과 현실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서서히 드러나는 ‘미국의 브라질화’

김동춘(이하 김)=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했던 ‘미국의 브라질화’를 떠올렸다. 미국은 사회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처럼 보이면서 어떤 부분은 완전히 버려져 있다.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이야기다. 이번 카트리나 재앙을 통해 브라질화가 하나의 외적 충격, 자연재해에 의해서 겉으로 드러난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사회=이번 일을 두고 소수 지배 엘리트들에 의해서 인종과 빈부격차 문제 등을 해결하려고 했던 게 결국 터진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이번 재앙은 언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는 전문가의 분석도 있다.

이영=미국 사회는 잘 운영되는 것처럼 보이는 철저한 작동원리가 있다. 예를 들어 슈퍼 점원은 다른 일은 절대 안 한다. 돈 받으며 바코드를 찍고 잔돈을 거슬러주는 일만 한다. 계층에 따라 주어진 일이 있다. 전체 5% 정도의 엘리트가 사회 전체를 운영하고, 잘 짜인 하부 구조에 흑인, 아시아인 등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이번 일을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났다.

이은=수면에 잠겼다 다시 올라오는 뉴올리언스 모습이 얼마나 추악하고 비참한지 모르겠다. 그 실체를 목격한 것으로 미국 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도 이번 사태를 통해 불평등, 빈민 문제가 구체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내가 뉴저지에 살았을 때 학교 근처에서 저녁마다 2~3건의 강간이 이뤄지고, 밤마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사회=약탈이 문제가 됐다는 점도 충격이다.

=리영희 선생이 중국 탕산 시민들과 미국 시민의 태도를 비교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지진으로 인해 정전사태가 일어났을 때 탕산 시민들은 침착하게 대처한 반면, 미국은 완전히 범죄의 도가니였다. 미국 사회 전체가 그렇다고 속단하긴 어렵지만, 통합성이 약하고 파편화돼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권력이 이완되면 노골적으로 본성을 드러내는 현상 말이다. 이번 뉴올리언스 사태는 미국의 사회·경제적 소수자들이 어떻게 배제돼왔는지를 보여준다. 돈의 논리로만 통합을 이뤘지, 사회적 규범으로 이들을 통합해내지 못했다는 치부가 드러난 것이다. 적어도 미국의 주류 사회는 자원봉사와 기독교로 대표되는 어느 정도의 통합성이 있다. 그러나 주류의 바깥, 즉 주류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되는 이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국 사회의 통합성이 한계를 지닌다.

이은=우연찮게 미국의 진보적 그룹의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례적으로 한 흑인이 와서 같이 논의를 하니까 민중운동 한다는 사람들이 흑인 한 사람이 온 걸 가지고 대단히 큰 성과처럼 이야기를 하더라. 그때가 1990년대 말이었다. 참 놀라웠다. 마음이 열린 사람들조차도 흑인과 뭔가를 같이 해나가는 것이 ‘도전할 만한 일’이 되는 사회인가 싶었다. 결국 진보주의든 인도주의든 백인 중심의 통합이었다.

이영=9·11 때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지만, 뉴욕의 빌딩 아래 보석방이나 고급 의류점 등 역시 많이 약탈당했다. 그리고 약탈자의 대다수는 백인이었다. 이 사실은 보도되지 않더라. 사실 백인의 심성 자체는 착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약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더 많이 받는다. 즉, 법이 없어지면 그 약한 측면이 야수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뉴욕에서 차가 막힐 때, 백인들이 스트레스 받는 걸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경우를 많이 봤다. 경찰이 있을 땐 신호를 잘 지키다가도 없으면 막 지나가버리더라. 만약 뉴올리언스 같은 사태가 뉴욕에서 벌어졌다면 백인들의 그런 ‘야성’이 드러났을 것이다.

소송 만능주의와 야성, 동전의 양면

사회=인간의 본성으로 파고들어가면 이야기가 복잡해질 것 같다.

이영=취재를 하면서 백인들이 심장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많이 봤다. 조급하고 화를 잘 내고 참지 못하는 성격상의 결함에서 오는 심장병이지 않을까 싶다. 백인 안에 그런 조급함과 화를 잘 내는 성격이 내재돼 있다는 건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지 않은가.

=이런 이야기도 이미 19세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해왔다. 자신과 이질적인 사람에 대한 과도한 공포, 두려움, 본능적 적대감 등이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또 하나의 측면은 미국이 ‘소송 만능주의’ 사회라는 점이다. 법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한다. 소송이 많은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불신하는 관계에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법 안에 있으면 편안함을 느끼고, 그게 흔들리면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래서 규정이나 법이 무너지는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본능이 폭발하게 된다.

이은=미국에 처음 간 사람들은 벌금을 내면서 미국 사회에 대한 수업료를 치른다. 소리 지르고 침 뱉거나 담배꽁초를 버려도 벌금이 200~300달러다. 어른이 장난감 총을 가지고 다녀도 구속 사유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삶의 방식을 내재화하는 것이다. 주류와 법을 만든 사람들, 즉 지배적인 계급이 만든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약탈 문제를 보자. 텔레비전에서 보니 뉴올리언스에서 한 흑인이 편의점에서 물건을 가지고 나온다. 하지만 이건 약탈이 아니다. 우유 몇개와 빵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먹을 게 없으니까. 당장 뉴올리언스를 빠져나갈 교통수단도 현금도 없고, 그렇다고 음식을 파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인데, 이게 미국 언론에선 초점으로 부각된다. 9·11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지만 부각되지 않았다. 이런 극한 상황이라면 전세계에서 이런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그걸 약탈로 보는 게 인종 편견이다.

사회=미국 사회의 시스템이 정교하다고들 말한다. 이 정교함이 약할 수도 있고 강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정교한 사회 시스템이 뉴올리언스에서는 통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연방제와 삼권분립, 각종 소송 절차들이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각종 사회적 제도를 만들면서 약자나 소외된 사람들이 체제를 뒤엎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치들이다. 미국에선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풀게 한다. 민주주의 형식을 통해 자본주의의 근본 문제를 은폐하고 주변화하는 꼴이다.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2003년 남부 흑인 지역에서는 주 예산이 삭감돼서, 이를테면 공익변호를 받아야 할 흑인들이 가해자가 아닌데도 가해자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의 제도들은 19세기부터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장점이 부각됐고 진보적이어서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미국이 일종의 제국주의 국가가 되면서, 내부에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등 여러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건 아닐까.

제국주의를 향해 질주하는 ‘법 체계’

이영=정교한 법 체계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큰 기능을 한다. 시민들은 잘 지키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지킨다. 나도 신호위반으로 280달러까지 벌금을 내봤는데, 그 뒤부터는 60~70마일 이상으로는 절대 달리고 싶지 않다.

사회=정교한 사회 시스템이 위기 상황에서는 작동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관료주의를 볼 수 있다. 연방비상관리청은 피난민 구호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구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원봉사들만 겨우 만났다고 한다. 이들은 주·연방 정부가 뭘 하는지 분통을 터트렸다. 미국에 갔을 때 막연히 시장 중심 사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회가 상당히 관료적이라서 놀랐다. 관료들은 자기가 주어진 것 외에는 절대 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할당된 임무와 절차 아니면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아서 한국인들이 질려 한다. 이번도 그렇다. 응급재난에서의 시스템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정부의 관료주의로 인해 융통성 있게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현장에서 느낀 문제가 그게 아닐까. “예산 책정이 안 됐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가만히 있는 관료들, 개인적으로도 이런 관료주의적인 모습을 많이 경험했다.

이은=답답한 사회다. 우리가 ‘중·장년 사회’라고 한다면 미국은 ‘청년 사회’라고 해야 하나? 일 처리에서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는데, 그런 장점이 융통성과 신속성을 대체할 만한 차원은 아니다. 9·11은 세계사적으로 중대한 사건이고 백인, 뉴욕, 연방정부와 가깝지만 뉴올리언스는 빈민층, 흑인, 변방을 표상한다. 이런 차이가 있지만 큰일이 터졌을 때의 수습 대처 능력이 많이 뒤떨어진다. 구조적으로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의 빈 공간이 있고, 미국이 이라크전과 같은 미국 외적인 부분에 지지 기반을 얻으려고 하니, 국내에 그런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인권을 이야기하기 전에 내부 모순부터 해결해야 한다. 미혼모·흑인·가족·아동 등 복지 부문에서 주정부 예산이 많이 삭감됐고, 이런 사태는 자연 재해뿐만 아니라 어떤 사태가 오더라도 복구할 수 없다. 사회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단 사나흘 동안을 살 수 없는 극빈층을 양산한 건, 부시 행정부 정책의 필연적 결과다.

김동=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대구 목욕탕 폭발 사건도 비슷하게 봤다. 이 사건은 소방안전 점검을 게을리한 행정 당국의 책임이 먼저다. 기업은 이윤을 많이 남겨야 하기 때문에 안전시설을 안 갖추고 돈을 벌려고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행정 당국에서 관리하고 감시해야 한다. 대구 가스폭발 사건이나 지하철 사고도 마찬가지인데, 1990년 이후 ‘작은 정부론’이 나오면서 민원 행정 인력이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그리고 업무가 과중됐다. 시장만능주의 결과다. 대구가 연상된 건, 대구는 40년간 한 당이 지배한, 한번도 정권이 교체되지 않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도 보수 성향이 짙은 지역이다. 지역사회에서 사회운동의 견제력이 없고, 흑인 사회는 게토화됐다. 1960~70년대만 해도 인권운동이 활발했는데, 결국 각개격파되고 동력을 잃었다. 그런 게 결합해서 정부에 복지 예산 확보를 요구하는 내적인 힘이 없는 것이다.

사회=백인 경찰들이 약탈하는 흑인을 제지하는 것이 생방송으로 반복 중계된다. 사람들이 재난 자체가 아니라 피해자인 흑인을 가해자로 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김동=흑백 문제는 인종차별과 빈부격차가 겹쳐 있다. 냉전 이후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코드다. 미국은 겉으론 풍요롭고 풍족하고 정교한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곳처럼 보이지만, 이를 지탱하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한 사회다. 아프가니스탄 등 미국이 벌인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은 가난한 집의 자식들이자 흑인이다. 이걸 ‘애국주의’로 포장해서 지금까지 버텨왔다. 이번 재난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희생됐다. 이런 식으로 그동안 미국 사회를 설득하고 그런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버텨왔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회·노동 운동에 의해 모순이 폭발하는데, 미국은 그것이 폭발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시스템적으로 감춘다. 단지 범죄의 형태로 폭발한다. 외적 환경이 이런 식으로 억압하니까 집단적 범죄로 나타나는 것이다.

흑인 게토화 정책, 백인들의 미디어

이은=흑인들은 복지 예산 삭감에 반대하고 세력화할 만큼 성장돼 있지 않다. 법적으로 주거지나 학교, 음식점이 흑백으로 분리되지 않지만, 흑인들은 아직 그 테두리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돈 있는 학교 못 보내고, 좋은 집을 살 수 있는 돈도 없고…. 법적 차이가 아니라 빈부 차이에 의해 흑백이 차별된다. 흑인들은 차별에 저항할 만한 힘을 상실했고, 역사적 계기마다 이런 어두운 측면이 나타난다. 이런 문제는 흑인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에게 피해를 준다. 부시도 이런 문제에 대처하지 못하면 정치적 부담을 갖게 된다. 서로에게 악영향을 준다. 흑인을 게토화하는 정책을 고집한다면, 미국은 자기붕괴하는 방향으로 갈 위험이 있다.

사회=<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미국 언론에서 뉴올리언스의 재난보다 수치스러운 것은 이로 인해 빈부격차가 드러난 것이라고 했는데.

=빈부 차이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가 예전에 빨갱이를 악마화했다면, 미국은 테러를 악마화하고 있다. 마치 미국 사회 내부엔 문제가 없는 것처럼 외부 문제를 들먹인다. 미국의 패권주의라는 게 결국은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인데, 상대방을 악마로 만들며 내부 사회의 문제를 감춘다. 그러면서 내부 사회의 통합을 위한 비용과 노력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이영=유대인 위주의 백인과 백인 엘리트들이 경찰국가 형태로 미국을 다스린다. 결코 현 상태에서는 흑인 빈민층이 세력화되기 어렵다고 본다. 백인들이 지배하는 미디어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텔레비전 방송도 다 자기들이 원하는 형태로 뉴올리언스 사태를 보여주며 봉합할 것이다. 한두달 내에 다른 사건이 터지면 쉽게 잊혀지겠지. 시카고 경찰 매뉴얼에는 ‘벤츠320’ 타고 다니는 흑인이나 ‘렉서스400’을 타고 다니는 히스패닉은 반드시 검문하라고 나와 있다고 한다. 흑인을 다루는 백인 세력을 보면, 정말로 교묘하게 모든 일을 처리한다. 어려운 문제다.

사회=9·11과 이라크전, 뉴올리언스 사태의 연관성을 찾아본다면 무엇이 있는가.

이은=부시의 테러 전쟁은 결국 미국 내부의 무능한 경영을 낳았다. 테러전쟁에 대한 반응이 9·11이다. 9·11 수습은 애국주의에 기댔다. 테러에 대한 반격으로서 이라크전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뉴올리언스 사태는 그런 연장선 속에서 뚫린 ‘구멍’을 수습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난 현상 아닐까.

김동=부시 행정부를 이끄는 네오콘과 우파들은 절제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한다. 부르주아 안의 한 분파인 민주당은 이익을 추구하되 어느 정도 나눠가며 하자는 것이고. 부시 정부 들어와서 민주당은 ‘적당히 먹어라’는 식으로 비판할 뿐이다.

사회=이번 사태는 그동안 미국에 대한 환상을 깨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번을 계기로 좀 달라질까? 이영=미국에 대한 환상은 한국전쟁 이후에 형성됐다. 미국 사람들을 생활 속에서 들여다보면 친절하고 인도주의적이고 그런 측면들이 있지 않나? 그런데 미국에 있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말 미국 사람들은 만나서 섬뜩할 때가 언제냐면,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정상 얼굴로 돌아올 때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변할 수 있을까. 반면 흑인들과 만날 때는 좀 다르다. 한국 사람과 비슷한 측면이 많다.

사회=미국 안의 1·2·3세계의 단면들이 다 보이는 것 아닌가? 이은=미국은 전 국민 의료보험제가 없는 나라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시도했다가 의료계의 로비로 실행되지 못했다. 대다수 흑인들, 미혼모 등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이 사이가 벌어져도 이 사람들은 치과에 가질 않는다. 10% 이상이 의료보험 없이 살고 있다. 흑인들은 과거 노예제의 연장선상에 살고 있다. 백인의 사망률은 낮지만 흑인은 높고, 흑인들의 학교 시설은 한국 학교보다 훨씬 못하다. 흑인이나 소수민족 차원에서 보면 미국은 매우 후진국이다.

사회=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할까? 미국에서 수입된 한국 규범은 글로벌 스탠더드 행세를 하고 있다.

김동=미국의 세계와 문명의 표준을 만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물론 민주주의와 부패 방지 시스템 등 배울 것도 많다. 그런데 문명사적으로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 게 소유권 만능주의다. 공유가 가능한 지적재산권마저 사유화하고 글로벌 스탠더드화해 전세계에 강요한다. 미국 상품을 판매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다. 그게 과연 문명의 진보인가?

사회=주지사가 경찰에게 약탈자를 사살하라고 지시하는 것에 황당했다. 개인 재산 보호가 소수자의 생명이나 안전보다 우선시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은=미국은 나와 가족을 위한 보호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전면화된 사회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는 총기가 필요하다는 게 합리화된다. 그래서 총기 사살도 그리 놀랍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텔레비전을 비교해봐라. 미국 프로그램에는 야한 장면이 별로 없는데 폭력이 난무한다. 남녀간의 사랑은 굉장히 보수적이면서도 폭력 장면을 보여주는 데는 거리낌이 없다. 미국은 자신들이 벌이는 대내외적 폭력을 테러를 막는 수단으로서 합리화한다. 흑인 등 소수자에게는 폭력을 이용해 공권력이 직접 위해를 가한다. 부시든 아니든, 미국이 앞으로 발전하려면 흑인을 무력화·미개화해선 안 된다. 역설적으로 이 집단이 저항정신을 가지고 정치세력화되지 못했을 때 미국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동성애, 문화 등 다양화된 운동도 중요하지만 계급 중심적 차원에서 빈곤과 싸워나가는 저항이 있어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대항세력도 없고, 지식인도 없다

김동=1990년대 이후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자기반성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미국의 문제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시대다. 그래서 이건 우리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얼마든지 터질 수 있고, 터지고 있는 문제다. 미국이 물론 민주적으로 바뀌면 좋겠지. 미국이 민주화되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 물론 미국의 미래는 비관적이다. 대항세력도 없고, 지식인도 조직화돼 있지 않다. 이것이 단순히 ‘반미’에 그치지 말고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미국 맹신에 대한 반성 말이다.

이영=뉴올리언스 사태를 맞은 백인으로 이뤄진 주류 사회는 또 다른 형태로 봉합하며 위기를 넘길 것이다. 이번 사태로 흑인들의 인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백인 주류가 이런 기회를 통해서 반성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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