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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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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는 이름의 후진국

등록 2005-09-16 00:00 수정 2020-05-03 04:24

카트리나로 국가 지배 질서가 흐트러지자 억압돼온 인종적 분노 잠시 폭발
뉴올리언스 사태의 핵심은 장기적 폭력과 단기적 폭력의 대립

▣ 조홍식/ 북경 외국어대 객원교수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 남부 일대에 거대한 상처를 남겼다. 현재 확인된 사망자만도 수백여명에 달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번 자연 재해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가 1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얼마 전 동남아를 강타한 쓰나미가 10만여명의 인명을 앗아간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 규모 면에서 이번 허리케인은 제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어디 인간의 목숨을 숫자로 가늠하고 비교할 수 있는가?

쓰나미 때도 사람들은 협력했건만…

우리가 인간은 평등하다는 진리를 진정 믿는다면 이번 카트리나는 분명 인류에 닥친 또 하나의 불행임이 틀림없지만, 그리 호들갑을 떨 만한 일은 아니다. 유엔 통계에 의하면 지구상에서 매일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은 3만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제3세계의 어린이로 위생이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혹는 기초적인 예방주사를 맞지 못했기 때문에, 또는 가장 간단한 종류의 항생제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생명을 잃는 어린이들이다.

카트리나로 인한 결과가 우리에게 이토록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이 미국이라는 세계의 중심부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같은 재앙이 아프리카에 닥쳤다면? 우리는 “정말 아프리카는 저주받은 대륙인 모양”이라고 한번 한숨을 내쉬고 지나쳐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 세계의 모델, 선진국의 대명사, 글로벌 스탠더드의 표준으로 불리던 미국에서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비규환의 장면들이 발생하자, 놀라운 충격으로 뇌리에 각인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미국의 인상은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가 수출한 드넓은 잔디 위에 지어진 그림 같은 집에서 집채만 한 차를 굴리며 사는 백인 중산층의 ‘아메리칸 웨이 오브 라이프’(미국적 삶)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한국과 같이 대미 종속적인 나라에서 보수 언론과 매체가 전달해온 미국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세계 최고의 교육과 의료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 인류가 도달하지 못했던 과학 기술의 첨단을 개척해나가는 미국, 그뿐 아니라 자유와 부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미국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카트리나로 인해 보여진 미국의 모습은 자연 재해의 충격에 노출된 아프리카 후진국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평소 적대적이거나 또는 냉정하게 지내던 사람이지만 위기의 상황을 맞아 상부상조하는 일반적인 사회의 인지상정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일본에서 1995년 고베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여러 가지 무리한 근대화의 결과 현대 사회가 가지는 구조적 문제와 일본식 성장의 특수한 문제점들이 노출됐지만, 적어도 지역 사회는 결집력을 발휘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상호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은 선진국의 경우라고 치자. 최근 동남아와 같은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도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가 인류에 가한 충격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평소의 갈등과 분쟁을 초월해 서로 돕는 아름다운 광경들을 연출했다.

흑인들은 빨리 걸으면 안 된다?

그런데 세계의 중심을 자부하는 미국에서 자연재해가 닥치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우리에게,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의 눈에 허리케인이 충격적인 이유는 허리케인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휩쓸고 지나간 도시에서 마치 이러한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이 조직적인 약탈과 강도, 강간과 폭행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폭풍과 홍수로 무정부 상태에 돌입한 뉴올리언스에서 무장 집단들은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상점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컴퓨터와 스포츠 용품과 총기를 마음껏 가져갔다. 이 세 종류의 상품은 미국 사회와 세계화돼가는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는 정보화 사회의 상징이며, 스포츠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이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는 분야다. 총기는 백인들의 지배를 상징하는 권력의 도구다. 결국 위기와 무정부 상태에서 표출되는 불만은 일상적인 지배 관계에서 누적된 불만의 집중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남부는 미 합중국 역사의 근원과 상처를 동시에 안고 있다. 농업에 기초한 미국의 남부 사회는 북부에서 산업화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미국적 삶이 시작된 곳이다. 이 지역은 미국이 서부로 확대되는데도 여전히 농업과 개척 정신으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미국적 정신의 핵심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남부가 인류에 대한 미국의 빚이라고 할 수 있는 노예제도의 본고장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남부는 21세기까지도 이러한 미국적 정신과 미국의 상처를 모두 끌어안는 지역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이번 허리케인으로 인해 발생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미국 사회를 좀더 현실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9·11과 카트리나의 다른 점

미국은 가장 극단적인 인종 차별이 벌어지는 사회다.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제도를 철폐한 대통령으로 후세에 알려졌다. 물론 노예제도의 철폐는 역사적으로 커다란 진보임이 틀림없지만 그 이후에도 남부의 흑인들은 1960년대까지 백인들과 같은 버스를 탈 수 없었다.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1960년대 시민 권리를 위한 운동의 결과 흑인들의 상황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으로 흑인은 여전히 미국 사회 내에서 인도의 불가촉천민과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남부에서 흑백의 차별은 여전히 극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내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읽은 글 중에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남부에서 흑인들은 천천히 걷는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빨리 걸을 경우 도둑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인종 차별과는 별도로 가장 극단적인 불평등 사회이기도 하다. 피부색과 상관없이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또는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허리케인이 도달하기 이전에 이미 해안 지역에서 탈출했고, 안전한 곳에서 허리케인의 종결을 텔레비전을 통해 기다릴 수 있었다. 물론 집안에 남겨둔 가구가 물에 잠겨 썩어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애완동물의 생사가 궁금할 수도 있지만, 가족이 모두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을 것이다.

아직 뉴올리언스의 구체적인 피해 상황과 조사를 접하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상상해보건대 탈출하지 못하고 재해를 당한 사람들은 가장 빈곤한 계층이었을 것이다. 허리케인이 닥치기 이틀 전 피난하라는 경고가 내려졌을 때, 가장 빨리 피난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자가용을 보유한 이들이었다. 내가 2002년 여름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 앨라배마, 루이지애나를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도로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한 광고다. 그것은 자동차를 담보로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광고였는데, 이 빈곤한 남부에서 가장 빈곤한 사람들의 마지막 자금 동원 수단은 차를 포기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사태로 드러난 미국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폭력성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폭력성은 위에서 지적한 인종 차별이나 사회의 불평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인종 차별의 근원은 노예제에 있고, 이 제도의 근본적인 작동 양식은 폭력에 기초하고 있다. 사회 불평등 역시 다양하고 교묘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폭력이 불평등을 유지하는 기본 기제가 아닌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국가와 사회의 지배적 폭력이 잠시 철수하자, 억압됐던 인종적 또는 사회적 집단의 폭력이 폭발했다.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미국 사회에서는 다시 강력한 군대와 경찰이 파견돼 무장세력에 대한 폭력적 탄압이 자행됐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은 장기적 폭력과 단기적 폭력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기적 폭력은 장기적 폭력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다시 한번 내려졌다고 볼 수 있다.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카트리나는 9·11과 함께 미국 사회의 본질을 세계의 무대 위에 등장시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9·11을 살펴보자. 21세기는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시대로 시작하는 듯했지만 새 밀레니엄의 첫 햇살이 비치자마자 제국의 심장부를 강타하는 9·11 테러 사건으로 이러한 지배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정부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원하는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초강대국의 체면을 살리려 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같은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아직도 찬양할 준비가 돼 있는가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의 내부적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9·11이 미국의 대외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라면 카트리나는 내부적 환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 경우다. 현재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9·11과 카트리나를 비교하고 있다. 두 사건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9·11 사건은 미국 시민의 평등한 운명을 보여줬다고 한다. 세계무역센터에 일하던 단순 노동직과 최고의 학벌을 가진 부유한 엘리트가 똑같은 죽음의 운명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허리케인은 정반대로 부자와 빈자, 엘리트와 대중의 불평등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결국 폭풍을 얻어맞고 홍수에 침몰된 주민들의 대다수는 빈민이자 흑인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세계무역센터에서 뛰어내린 사람 중에는 부자도 있었고 빈자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백인도 있었고 흑인도 있었다. 그러나 카트리나가 앗아간 인명, 파괴한 재산의 선별적 부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쩌면 너무 성급하게 많은 사람들이 미국 모델의 붕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구조 부대의 파견이 늦었고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대응이 소극적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늦장에는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미국 연방과 주 정부의 상호 관계의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조금은 더 구조적인 설명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이 지나가고 내일이 오면 역시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자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라고 찬양할 준비가 돼 있다. 또 미국의 단점이 이러저러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자식들을 미국에서 원정 출산하거나 유학시킬 준비가 돼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치부이자 콤플렉스인지 모른다. 불행하게도 카트리나의 비극은 우리가 꿈에서 깨어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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