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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먹는 하마, 이러다 터질라

등록 2005-09-16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전세계 석유 소비량과 이탄화탄소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
자동차·넓은 집·일회용 식기로 대표되는 생활방식이 재앙을 앞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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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미국에 가서 가장 놀라는 점 가운데 하나는 미국인들의 에너지 소비행태라고 한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이산화탄소 배출이고 이를 위해서 화석연료의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은 세계시민의 상식이 된 21세기에 미국인들만큼 에너지 소비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이들은 드물기 때문이다.

소비대국 중국도 석유는 따라잡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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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국의 무지와 몰상식이 카트리나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미국 안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미국의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이번 사태를 두고 “살인폭풍은 늘어난 이산화탄소 방출과 지구온난화의 엔트로피 계산서”라고 단언했다. 그는 또 “(이번 사태가) 앞으로 화석연료 사용이 한계점을 지나 기울기 시작하는 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면서 “미국인들이 미국 시대의 종말과 지구온난화의 재해가 먼 미래의 일이라는 미신을 버린 순간으로 (이번 사태를) 기억할 것이며 그 미래는 지난 8월29일 뉴올리언스와 미시시피만 지역 저지대를 초토화시킨 거대한 파도를 타고 폰차트레인 호숫가에 도달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전세계 석유의 4분의 1을 소비함으로써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면서도, 석유매장량은 전세계의 3%에 불과하다. 기형적인 불균형이다. 국가의 에너지 자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 나라는, 그러나 여전히 ‘에너지 먹는 하마’라는 소리를 듣는다. 중국과의 비교는 이를 웅변한다. 중국은 최근 식료품·공산품 등 대부분 품목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소비대국이 떠올랐지만, 석유 소비에서만큼은 미국을 따라가지 못한다. 미국이 하루 2천만 배럴을 쓰는 데 비해 중국은 700만 배럴에 그치고 있다. 자동차 보유대수도 2억2600만대와 2400만대로 10배 이상 많다.

이같은 에너지 과소비는 미국인들의 생활문화와 직접 맞닿아 있다. 미국은 자동차 평균 배기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거대한 차량을 선호하는 취향에다 대중교통은 발달되지 않았다. 자가용 승용차 문화가 발달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의 전체 차량 가운데 52%는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스포츠형 다목적 차량(SUV)다. 조깅을 하러 갈 때도 자동차를 타고 가는 미국인들에게 자동차는 다리와 같은 필수품이다. 장거리 여행을 할 때도 비행기나 기차보다는 자가용이나 렌터카를 몰고 다니길 즐긴다. 이렇게까지 된 데는 차가 가장 싼 이동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소득을 고려한 ‘실질 휘발유 소비자가격’을 보자. 한국은 100이라면 미국은 13.8에 불과하다.

집도 넓어서 유지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 주거 면적이 평균적으로 다른 곳에 비해 월등하게 넓어, 난방과 냉방에 드는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에어컨이나 난방시설을 쓰는 빈도도 한국만큼이나 높다. 미국의 가정집을 보면 각 방에 스위치 장치를 하지 않고 스위치 하나로 모든 방에 불이 들어오도록 하는 전원 구조를 갖춘 곳이 많다. 세탁물은 꼭 건조기에서 말리고, 몇개 안 되는 그릇도 식기세척기를 쓴다. 모든 가게들이 도난 방지를 이유로 밤새도록 불을 켜놓는 것도 이방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다.

음식문화도 특이하다. 일회용 식기가 일반화돼 있다. 패스트푸드나 간단한 먹을거리를 싸들고 아무 곳에서나 먹고 버리는 습관이 보편화돼 있다. 일회용 용기와 포장지를 과소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물 쓰레기도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린다. 규정 쓰레기 봉투 같은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에너지 공급 확대하는 부시의 환경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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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탄소 대량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현상은 전 인류의 지대한 관심사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민은 ‘세계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환경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이 미국의 미래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전세계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수치로 계산한 결과도 있다. 미국의 비영리 환경연구기관 ‘퓨 세계기후변화센터’는 산업혁명 초창기인 1850년부터 2000년까지 각 나라의 에너지 소비량 등을 토대로 각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추정한 결과 주요국의 책임 정도를 산출해 발표했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나라는 역시 미국. 책임 정도는 29.5%였다. 두 번째는 8.7%의 책임이 있는 러시아였다. 독일·중국·영국·일본·프랑스가 뒤를 이었다.

유엔 산하기구인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환경보고서도 있다. 보고서는 “지난 30년 동안 이상기후 등 재난을 악화시킨 가장 큰 책임은 미국과 캐나다에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1인당 석유소비량은 세계 평균의 9배에 이른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국민 1인당 매년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보면 미국 20t, 독일 10t, 중국이 2.3t 등이다. 중국의 인구가 미국의 5배 정도 된다고 쳐도 중국의 총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미국의 60% 정도에 이른다. 그만큼 미국의 생활습관과 경제발전 양식이 반환경적이라는 것이다.

석유와 석유산업을 대하는 미국민의 태도도 생활습관 변화를 늦추게 하는 요인이다. 20세기 대표적인 미국 기업가 정신의 표상으로 불린 존 데이비슨 록펠러 1세는 ‘석유왕’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미국민들에게 기민하고 명석한 두뇌와 수완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준 인물이다. 그는 가난한 가정 출신으로 1870년대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설립하고 경쟁 회사를 모두 흡수하거나 몰아냄으로써 석유업계의 지배자가 됐다. 자신이 축적한 산업자본을 금융자본으로 전환시켰다. 석유산업은 또 가장 미국적인 사업으로 여겨진다. 즉, 적대적인 환경에서 더욱 힘을 발휘하는 ‘할 수 있다’ 정신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에너지 과소비 태도에 결정적으로 불을 지피는 것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환경정책이다. 지난 2월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대한 거부는 2001년에 부시 대통령이 에너지 정책의 기본 골격을 확정한 때부터 예정돼 있었다. 2001년 마련된 부시의 에너지 정책은 앞으로 20년 동안 석유 33%, 천연가스 50%, 전력 45%의 소비 증가를 전제로 소비 절감 대신 공급을 확대한다는 정책으로 요약된다.

부시는 이후 알래스카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의 석유 채굴 허용, 원전 건설 재개, 1300여개의 발전소 건설, 네바다주 유카산에 연방 핵폐기물 반입 승인 등을 잇달아 허용하거나 허용을 예고했다. 환경보호론자들이 부시를 ‘재앙’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환경운동가들은 부시를 마치 일산화탄소와 같아 소리 없이 퍼지고 치명적인 해악을 주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시는 에너지 공급 확대를 요구하는 석유자본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는 재선 선거운동 기간에도 에너지 정책의 골격을 바꾸지 않겠다는 공약을 여러 번 천명했다.

“허리케인의 파괴력이 두배로 커졌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그 주요 원인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합의가 처음 도출된 것은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였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에 갈등이 있었지만, 경제발전을 이룩한 선진국들이 이제 와서 환경을 문제 삼아 개도국의 발전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회의는 선진국에 한해 1990년 수준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유지하라는 의무를 부과했다. 그리고 1997년 교토회의에서는 2010년까지 선진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5.2% 줄이자는 교토의정서가 체결됐다. 그런데 교토의정서 체결에 동참했던 미국이 결정을 번복해 국제협력의 틀을 일방적으로 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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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정서 체결과는 상관없이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권역별로 보면 유럽은 모범생의 길을 걷고 있고, 일본은 갈등하는 학생이며,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여전히 문제아의 범주에 들어 있다. 우선 미국은 전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지구온난화 논쟁의 심각성을 깎아내리려 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에 숲이 많고 숲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을 가지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그만큼 늘려도 괜찮다고 주장한다. 또 환경 분야에도 시장의 자율적 규제라는 원칙을 적용해야 하며, 온난가스 배출권을 국제적으로 사고팔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태도다. 유럽연합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과 같은 강력한 의무 준수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미국은 “미국 시민이 국제기구의 판결 대상이 되도록 놔둘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오늘날 기후 변화의 원인에 대해 에너지 사용이 역사적으로 누적되면서 빚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별로 없다.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구온난화의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증거라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지만, 이를 부인할 증거도 별로 없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에마뉴엘 교수는 <네이처> 기고문에서 “지난 30년 동안 허리케인의 파괴력이 두배로 커졌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인의 에너지 과소비는 허리케인을 점점 더 위협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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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마피아’들이 모인 정권</font>

부시 대통령부터 내각의 주요인사들까지 석유산업과 깊이 관련

부시 정권의 성격과 인적 구성이 에너지 과소비 구조를 부추기고 구조화한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 정치부 기자 출신의 정치평론가인 이타가키 에이켄은 <부시의 음모>라는 책에서 “부시 정권은 석유 마피아 정권”이라고 규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부시 대통령 스스로가 석유회사 경영자 경력이 있고, 특히 부통령인 딕 체니는 세계 2위의 석유 관련 서비스 회사 핼리버튼사의 대표이사 겸 최고경영자였던 인물로 석유업계의 대부”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두 사람 이외에도 각료 가운데 석유업자와 군수산업 관계자가 여러 명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은 하원의원에 낙선한 뒤 미들랜드라는 지역에서 ‘알부스트 에너지사’(나중에 부시 익스플로레이션’으로 회사 이름을 바꿈)라는 석유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나 철학도 석유 관련 기업쪽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2001년 1월17일 캘리포니아주에서 도산 위기에 처한 전력회사 두 군데가 일부 지역에 전기 공급을 중단한 일이 발생했다. 2001년 5월17일 부시는 국가 에너지 정책을 발표했다. 체니 부통령이 위원장으로 있는 에너지정책입안 특별위원회가 정리한 것이었다. 민주당 게파트 하원 원내총무는 이 보고서를 두고 “마치 엑손모빌(세계 최대 석유메이저)의 보고서 같다”고 혹평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고서는 “미국은 앞으로도 에너지 소비를 더욱 증대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석유나 천연가스를 증산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원자력으로 보완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화석연료의 절감’과 ‘대체에너지의 개발·보급’으로 요약되는 전세계의 에너지 정책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겠다는 것을 공식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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