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들어간 1999년 이전부터 이미 ‘파산’ 상태
품질 대신 돈 빌리는 수완만 부리던 ‘자전거 기업’은 쓰러졌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김우중 전 회장의 귀국이 임박하면서 일각에서 김우중과 대우그룹, 그리고 ‘세계경영’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 뒤편에는 “대우그룹 몰락은 정치적 타살인가, 아니면 빚더미 위에 쌓아올린 세계경영의 자멸인가?”를 둘러싼 엇갈린 평가가 깔려 있다. 한쪽에서는 한국 경제 회생을 위해 세계경영과 김우중의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비록 김우중씨에 대한 면죄부 주장까지 나아간 건 아니지만, ‘정치적 희생양’을 강조하면서 간접적으로 ‘사면’ 분위기를 띄우는 세력도 있다. 과연 대우그룹은 왜, 어떻게 침몰하게 된 것일까?
1등 제품 없이 파격적 마케팅 난무
대우그룹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1999년 당시, 한국금융연구원은 대우그룹이 이미 1997년 말에 ‘파산’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룹 해체 직전 대우의 부채 비율은 무려 580%에 달했다. 당시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부채 비율이 500%를 넘은 기업들은 모두 부도에 직면했다. 대우도 그런 양상을 보였음에도 정부가 오히려 방치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1997년 말 IMF 체제 진입 당시 대우그룹은 이미 사실상 기술적 파산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우 전체의 매출 규모 35조원 정도에 매출이익과 금융비용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상으로도 회생이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 대우그룹이 무슨 정치적 음모에 의해 갑작스럽게 타살된 것이 아니라, 대우그룹은 드러나지 않게 오래전부터 암이 퍼지고 있었고 급성으로 악화돼 막판에 펑 하고 터졌을 때는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사실 “대우그룹의 위기는 일상사”라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로 위태로운 경영이 지속돼왔다. 빚더미 위에 쌓아올린 세계경영은 마치 외줄타기하는 자전거처럼 계속 가속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김우중식 경영’이었다. 대우가 내놓았던 상품을 보면, 자동차·전자 등을 막론하고 확실한 국내 1등 제품이 거의 없었다. 이렇듯 넘버원 제품이 없었던 것도 대우그룹 몰락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대신 대우는 품질보다는 싼값에 물건을 팔거나 다양한 할부제도를 동원해 마케팅 극대화에 주력했다. 대우경제연구소에 있었던 ㅈ씨는 “그룹의 연륜이 짧은데, 사업을 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대우 브랜드는 시장경쟁력에서 두 번째 그룹에 속해 2등 제품을 팔다 보니 마케팅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우자동차는 1998년 마티즈를, 그런 가격으로는 도저히 돈을 벌 수 없다는 1대당 8800달러에 내놓았고 영국에서는 6개월동안 타본 뒤에 구입하는 판매전략도 구사했다. 대우차의 시장점유율 25%를 유지하려고 30개월 무이자 자동차 할부에 나섰을 때도 “(이 파격 마케팅이) 회사를 망하게 만들 것”이라거나 “현금흐름에서 문제가 터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대우가 폴란드·우크라이나·베트남 등지에 해외 자동차법인을 확장해 1998년 40억2천만달러어치를 팔아 14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고 발표했을 때도 시장 분석가들은 대우가 자회사들을 이용해 손실을 은폐하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1983년 여름, 대우는 한국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비즈니스 잡지에 6쪽짜리 멀티플 연속광고를 실었다. 이 광고에는 김우중 회장의 사진과 메시지가 실렸다. 이 6쪽짜리 광고를 미국의 주요 비즈니스지에 싣는 데만 100만달러는 족히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기업광고는 미국의 대기업조차 별로 하지 않는 대담한 대형 광고였다. 제품 품질보다는 홍보와 마케팅에서 승부를 내고자 했던 김우중식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마케팅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나는 반면 수익성은 계속 떨어졌고, 위태로운 자전거 여행의 끝은 오래전부터 대우그룹 가까이에 맴돌고 있었다.
‘실탄’은 부족한데 전선만 넓은 세계경영
‘대우의 일터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는 광고 카피가 보여주듯, 열사의 사하라에서 혹한의 시베리아까지 ‘대우 제국’을 건설한다는 세계경영은 기술과 품질을 크게 따지지 않는 동유럽 등 신흥시장에 값싼 대우 제품을 팔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한신대 배준호 교수(국제학부·경제학)는 “대우의 세계경영은 국내에서 잘 안 되니까 외국에서 먼저 제품을 평가받고 국내에 롤백해 삼성, LG와 경쟁하는 구도를 구상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대우 몰락은 빚더미에 쌓은 세계경영의 침몰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비행기를 사무실 삼아 전세계를 누볐던’ 김우중씨의 세계경영은 대규모 금융회사들과 고리를 맺어 싼 해외 자금을 더 많이 빌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투자는 많았지만 투자자금은 거의 회수되지 않았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다른 기업들이 모두 축소경영에 나설 때 대우는 오히려 세계경영을 기치로 해외투자를 지속했다. 또 쌍용자동차까지 전격 인수해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를 다 집어삼킬 기세로 멈출 줄 몰랐던 세계경영은 “실탄은 부족한데 전선만 넓게 펴는” 확장경영이었고, 결국 ‘경영 실패’로 이어졌다. 1999년 <비즈니스위크>는 “대우의 전략은 경영학 교과서와 전혀 동떨어진 비현실적 도박”이었다고 혹평한 바 있다.
독선적 경영에 누구도 반대 못해
세계경영이 빚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이었는지 진정한 프런티어 정신이었는지 당시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언론들은 “칭기즈칸 이래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유럽을 공략하고 있다”거나 ‘타고난 세일즈맨’이라고 김우중 신화를 찬양하기 바빴다. 그러나 ‘세계경영이라는 이름의 도박’과 무모한 ‘빚 게임’의 실상은 1998년 하반기에 금융기관이 보유한 동일 계열 기업어음과 회사채의 보유한도제가 시행되면서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차입경영으로 달려온 대우 자전거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마르지 않는 돈주머니’로 불리던 대우그룹에서 갑자기 돈줄이 말랐다. 사실 대우의 강점은 1등 제품이 아니라 자금융통(파이낸싱)에 있었다. 당시 대우그룹 회장단 9명 중 5명이 은행 출신일 정도로, 그룹과 핵심 계열사 최고경영진에 포진해 있는 금융 베테랑들은 놀라운 금융기법을 동원해 세계경영의 고비마다 자금줄을 터왔다. 이들 금융통은 ‘런던스쿨’(런던에 있는 (주)대우 지사의 별칭) 멤버로 불렸다. 대우그룹 출신 이아무개씨는 “금융팀쪽에서, 남들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돈을 잘 끌어왔다. 그룹 해체 이후 대우 출신 금융 전문가들은 금융기법 노하우를 인정받아 좋은 대우를 받고 다른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우중씨의 경영철학은 “국제금융을 알아야 사업이 보인다. 수익성 낮은 사업도 국제 자본시장에서 싼 이자만 끌어올 수 있다면 해볼 만하다”였고, 대우는 빚이든 뭐든 돈만 끌어들이면 된다는 김우중식 경영에 빠져 있었다. 1999년 6월 말 대우계열 총부채 중 15.4%인 12조원(99억달러)이 외화채무였고, 이 중 70억달러가 외국계 금융기관에 대한 채무였다. 나란 안팎의 빚으로 베팅하던 김우중식 경영은 실탄이 바닥나면서 결국 폭발하고 만 셈이다.
그룹의 채무 규모는 김우중씨 본인이나 핵심 측근이 아니면 아무도 몰랐다. 벌여놓은 사업이 전세계에 600여개 거점에 이르렀고, 수백개 해외법인의 부채 규모나 실상은 모두 베일에 싸여 있었다. 대우경제연구소에서 일했던 ㅈ씨는 “1998년 말부터 대우가 갑자기 시장에서 흔들흔들했다. 나중에 부채 비율을 발표한 것을 보니 어마어마하더라”라고 말했다. 당시 대우가 발표한 총부채는 68조2천억원이었으나 실사 결과는 89조원으로 드러났다. 대우는 장부상 순자산가치가 1999년 6월 말 14조원이라고 했으나, 실사 결과 -29조원으로 나타났다. 무려 43조원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차이가 발생했고 검찰 수사에서 결국 이것이 분식회계로 드러났다. 당시 대우 사태를 연구했던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대우는 도대체 부실 규모를 알 수가 없었고, 채권 금융기관들도 ‘한번 지원하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 돼 도처에서 부실이 드러나면서 (채권단이) 수렁에 빠질 것이 뻔한 기업’이라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뒤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기 위해 회계법인이 대우 그룹을 실사했을 때 회계 전문가들이 차입금 장부를 들여다보다 결국 포기했을 정도다.
김우중씨는 그룹이 침몰하는 급박한 순간에서도 단 한번의 ‘빅딜’을 통해 상황을 역전시키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제너럴모터스(GM)와 자동차 제휴·합작 건만 성사되면 50억달러를 받아 유동성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끝까지 버텼다. 또 전경련 회장직을 이용해 청와대를 오가면서 정치적 담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사실 김우중씨는 동구권이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계획이 수립되면 곧바로 현지에서 대통령·국왕 등 국가원수와 ‘독대’에 들어간 뒤, 현지 투자 대가로 세금 감면·금융 지원 등 파격적인 내용을 요구했다. 자신의 뛰어난 담판 능력과 정치적 수완을 이용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허세를 부리는 영웅’에 불과했던 것일까? 김우중씨의 독선적 경영도 대우그룹 몰락을 부른 요인으로 꼽힌다. 일벌레로 불린 김우중씨의 지칠줄 모르는 열정은 부인할 수 없지만,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을 곧잘 했던 김우중씨 주변에는 ‘리틀 김우중’만 가득 차 있었다. “안 된다. 터무니없는 투자다. 빚을 줄여야 한다”는 말은 누구도 꺼낼 수 없었다.
미스터리 기업 대우, 김우중 신화의 몰락
대우그룹이 몰락한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사회에는 ‘미스터리 기업, 대우’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다. 여기에는 3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재계 서열 2위까지 치고 올라선 ‘김우중 신화’가 덧칠된다. 또 “마치 대모험을 향해 떠나는 기차에 훌쩍 올라타 안개를 헤치고 기적을 쫓아 달려가는 것 같았어요”라는 말로 대변되는 세계경영의 도박과 모험이 겹쳐진다. 이것이 대우그룹이나 김우중에 대한 재조명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대우는 스스로 몰락했고, 김우중씨도 ‘실패한 기업인’일 뿐이다. 김우중씨 본인은 “한국 경제를 위해 내가 컴백해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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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은 과연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구조조정의 음모에 걸려들었던 것일까? 또 김우중씨는 정권에 의해 쫓겨난 것일까? 사실 정치자금 제공 등과 관련해 김우중씨는 다른 재벌 총수에 비해 김대중씨한테 더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김우중씨는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된 뒤 경제 부총리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전경련 회장을 맡았던 김우중씨는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오전 청와대로 들어가 김대중 대통령한테 보고서를 올렸다. 이 자리에서 김우중씨는 ‘500억달러 무역 흑자론’을 비롯해 갖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아 김 전 대통령한테서 점수를 땄고, 보고서는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관료들은 이런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고, 이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른바 ‘관료 장막’에 갇혀 김대중씨와 김우중씨의 사이가 멀어졌고, 이는 정권의 의해 대우그룹이 타살됐다는 음모론으로 이어진다.
김우중씨와 관료가 서로 틀어지게 된 계기는 무역흑자를 둘러싼 설전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김우중씨는 전경련 회장을 맡자마자 외환위기를 돌파하려면 수출을 통해 1년에 500억달러 흑자를 기록해야 한다는 논리를 설파하고 다녔다. 반면, 관료들은 무역흑자 20억달러 선을 얘기하면서 김우중씨를 허풍쟁이로 몰았다. 그러나 1998년 무역수지는 1997년 84억달러 적자에서 399억달러 흑자로 갑자기 돌변했다. 무역흑자로 외채를 갚으면 된다던 김우중씨 앞에서 관료들의 체면은 여지없이 구겨졌다. 당시 무역흑자의 상당 부분은 (주)대우가 올렸는데, 1998년 (주)대우는 수출 1위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비록 수출액에 잡히긴 하지만, 사실은 (주)대우 해외법인에 외상 수출하는 것이 많았고, 해외법인 창고에서 수출상품이 재고로 썩고 있었다.
차츰 관료들은 김우중씨가 구조조정을 미적대며 버티고 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고, 삐걱거리기 시작한 김우중씨와 경제팀의 관계는 점점 악화됐다. 김우중씨는 나중에 “(관료들에게) 밥이라도 잘 사줄 걸”이라며 혀를 찼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김우중씨에 대한 감정이 쌓였다고 해도 경제 관료들이 재계 2위의 기업을 ‘치밀한 각본’에 따라 망하게 만들었다는 음모론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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