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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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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침실로 들어올 수 있는가

등록 2005-06-09 00:00 수정 2020-05-03 04:24

부부강간 법제화 찬성론자 이은영 의원과 반대론자 유기준 의원의 설전
“가정 폭력으로 처벌하는 것이 당연”vs “악용으로 또다른 피해자 낳을 것”

▣ 사회·정리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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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외가 쉽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부부강간은 그만큼 예민한 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부강간에 대한 처벌과 법제화에 반대하는 쪽이나 찬성하는 쪽 모두, 공론의 장에서 가급적 얘기 나누기를 꺼려왔다. 사실 기회조차 많지 않았다. 그렇게 지난 십수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제 부부강간의 처벌을 명시한 가정폭력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토론이 필요한 것이다. 앞으로 국회에서 부부강간에 대한 논의와 그 결과가, 언제 어떻게 결론날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한겨레21>은 지난 6월1일 법안에 찬성하는 이은영 열린우리당 의원과 반대하는 유기준 한나라당 의원을 불러 좌담회를 열었다.

현행 형법으로 처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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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와 주셔서 고맙다. 부부강간을 처벌하는 법이 만들어지는 것을 어떻게 보나

가정 안에 법률이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19~20세기 법을 만들 때 법은 가정에 침묵하고, 가정은 가정 내 이미 있는 질서에 따라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법률 원칙이었다. 굳이 부부간 성폭력을 별도로 규율하는 법을 만든다는 것은 이러한 법률의 전통적인 개념과 맞지 않는다.

이은영(이하 이) 살인이나 폭행과 마찬가지로 강간은 인격 모독이고, 개인의 신체에 대한 중대한 범죄 행위다. 미성년, 부부, 동성 등 강간 앞에 뭐가 붙든 간에 강간은 당연히 금지되고 처벌돼야 한다. 특히 요즘같이 개인의 인격이나 신체 안전성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 상태에서, 부부강간은 죄도 되지 않는다는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정에 법이 들어가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데 공감하지만, 그러는 것도 한계가 있다.

현행 형법 제297조에 강간죄가 있다. 현행 법 체계 안에서도 오랫동안 별거하거나 사실상 파탄 상태에 이른 부부 사이에서 일어난 폭력과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한 부부강간은 처벌할 수 있다. 굳이 새로운 법을 만들 필요가 있나.

이 기존 형법에 의해서도 처벌이 가능하지만, 가정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이 만들어진다면 가정폭력의 한 예로서 부부강간을 다룰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부부간에 강간이 성립한다고 보지 않는다. 폭행을 수반한 강간 등 아주 특수한 경우를 강간이라고 볼 수 있고, 그러한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정도의 부부강간을 처벌하자는 것이다.

가정내 문제인가 인권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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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부부가 결혼할 때 배우자의 성적 요구에 응할 의무를 진다. 남편이 성관계를 요구했는데 부인이 거절했다고 다 처벌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물론, 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이 이번에 제출한 가정폭력 특례법에서 그런 부분까지 다루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부부강간 처벌의 법제화가 법률의 가정 내 최소개입 원칙과 맞지 않는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여성 페미니스트에 의해서 남성을 표적으로 하는 과잉 입법이 아니냐.

가정에 손을 안 대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될 때 건드리지 않고 성역으로 남겨야지, 가정 속에서 인권 침해나 폭력이 이뤄질 때는 손을 대야 하지 않나. 국가가 쓸데없이 남의 가정사에 간섭하는 것은 좋지 않겠지만, 가정폭력에는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 부부간 성폭력이나 강간도 심각한 인격적·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엄연한 가정폭력이다. 부부강간이 가정 내 문제 이전에 인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강간의 처벌을 명시화해서 종전과 달리 아주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둔다면, 순수하게 이 제도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간통죄처럼 악용해서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타내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은 좋지만 과잉 보호하게 되면 사회적 정의와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지 않나.

법제화를 통해서 부부강간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문화가 확산되면, 오히려 부부가 화합으로 가는 행복한 성관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사회 폭력을 수반하지는 않지만, 배우자가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요하는 것은 어떻게 보나.

‘원치 않는 성관계 강요’ 처벌은 아직 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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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사회적 상식에 비춰 논의하기엔 이른 것 아닌가.

법은 현저한 위험에 대해 처벌하는 것이다. 아직 그것까지 확대하는 것은 이르다. 가정폭력의 하나로 부부강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피해자 보호 측면에 초점을 맞춰 입법화하는 게 좋다. 이것도 물론 시대가 바뀌면 달라져야 한다.

사회 지난 1999년 유엔인권위원회가 우리 정부에 부부강간이 범죄로 성립되지 않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지 않았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금 현재에도 부부강간은 인정(처벌)되는 것 아니냐.

이 아니다. 아직 처벌된 사례가 한건도 없다는 것은 인정을 안 한다는 것이다. 이게 곧 현행법만으로는 부부강간 처벌이 안 된다는 것을 방증한다.



법사위 과반수 이상 찬성

한나라당은 주호영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 반대 입장

부부강간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까?
부부강간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가정폭력특례법 개정안은 앞으로 국회 법사위에 상정된다. 이르면 6월 중순부터 법안 심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한겨레21>은 최연희 위원장을 뺀 국회 법사위 소속 의원 14명 모두를 상대로 부부강간 처벌을 법제화하는 데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다. 조사는 지난 6월1~2일 이틀 동안 전화로 이뤄졌다. 법사위의 과반이 넘는 9명의 의원이 부부강간의 처벌을 법제화하는 것에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유보’ 입장을 밝힌 정성호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이 찬성 입장을 밝혔다. 반대로 한나라당에서는 주호영 의원을 뺀, 나머지 의원들이 반대 입장을 보였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최재천 의원은 “가정 내 살인은 존속살해로 엄하게 처벌한다. 부부간의 성폭력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주호영 의원은 “부부간이라도 강간으로 처벌할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안 통과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부강간 법제화에 찬성하는 의견을 보인 의원들 상당수가 나름대로 ‘조건’을 붙였다. 부작용이 우려되니, 부부강간의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윤석·주성영·김성조 의원 등은 “기존의 형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새롭게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며 반대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 의원들도 부부간 강간의 성립이나 처벌의 필요성은 부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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