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세무조사 통해서만 세무대리인 연루 드러나… 국세청 출신 전관예우에 ‘뺑뺑이 거래’ 은폐도 원인</font>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장부 작성(기장) 대행을 비롯한 세무대리 업무 과정에서 불법 변칙적인 일을 저지른 공인회계사나 세무사는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고 있을까?
탈세 조장 행위 등 법규 위반을 일삼은 세무대리인에게 내리는 처벌은 현행 세무사법(제17조)에 규정돼 있는데, 사안의 경중에 따라 등록취소, 2년 이내의 직무정지,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 견책(앞으로 조심해!)이다. 이 중 가장 강한 처벌은 세무대리 업무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등록 취소다.
지난해 1만2천여명 중 19명 징계
지난해 재정경제부 세무사징계위원회(위원장 이종규 세제실장)로부터 탈세 조장, 명의 대여, 금품수수 중개 등으로 징계를 받은 세무대리인은 세무사 17명, 공인회계사 2명 등 모두 19명이었다. 2002년(7명), 2003년(4명)보다 좀 늘어난 수준이지만, 전체 개업 세무대리인이 3월 말 현재 1만2338명(세무사 6299명, 공인회계사 5635명, 변호사 404명)에 이르는 현실에 견줘 미미한 수준이다. 더욱이 등록 취소는 한건도 없다. 세무대리인을 통한 탈세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여러 증언에 비춰볼 때 처벌 수위는 높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세무대리인의 비리를 가려내는 일은 기업체의 탈세 행위를 드러내는 것 이상의 난제다.
“세무대리인의 불법 변칙 행위는 대부분 (기업체) 세무조사 과정에서 밝혀진다. 갑자기 매출액이 증가하는 등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해당 세무서에서 나가 거래처를 조사하게 되는데, 이때 세무대리인의 연루 사실이 같이 드러나는 식이다.”(국세청 출신 재경부 관계자)
세무대리인에게 기장 업무 등을 맡긴 업체가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대리인의 비리 행위도 자연스럽게 묻힐 가능성이 큰 셈이다. 세무조사를 받는 비율이 1%에도 미치지 않는 현실임을 감안할 때 세금 탈루 조장에 관여한 세무대리인의 불법 변칙 행태가 바깥으로 불거지기는 원천적으로 어려운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세무대리 업계에선 국세청 출신으로 세무대리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은 데 따른 인적 연결 고리를 또 다른 이유로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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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6699"> △ 세무대리인들의 불법 변칙 행태는 세무대리 업무의 경쟁 심화에서 비롯된다는 해석도 있다. 지난 2002년 11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정부의 회계사 수급정책 실패를 규탄하는 자격시험 합격자들. (사진/ 임종진 기자) </font>
“국세청 조사과에서 차석으로 있다가 나와 세무사를 하는 이가 있는데, 현직 조사과 직원들이 동기이거나 선후배다. 고객 회사가 국세청 조사과의 서면조사나 현장실사를 받게 됐을 때 조사과 직원들과 상의해서 수월하게 처리한다. 이렇게 세무조사 단계에서부터 막히기 때문에 세무대리인의 행각은 아예 드러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세무사 권아무개씨)
세무대리인의 연합체인 세무사회나 공인회계사회가 자체적으로 징계하거나 제보를 모아 재경부에 징계를 건의하는 통로가 있긴 하나 실질적인 작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세청 조사 과정에서 용케 드러나는 게 전부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은 세무사의 일반적인 불법 변칙 행위 가운데 이른바 ‘뺑뺑이 거래’는 세무당국의 관심지대도 아니라는 점이다. 뺑뺑이 거래는 세무대리인이 매출 자료를 필요로 하는 업체와 매입 자료를 구하는 업체를 중간에서 연결해줌으로써 특정 업체의 세금을 낮추는 것으로, 이 또한 명백한 탈루 조장 행위다. 한 세무사가 수십개 업체의 기장 업무를 맡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행태는 일상적으로 벌어진다고 한다. 그런데도 총량적인 세액은 별 차이가 없으니 이런 행태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사안으로 여겨져 뺑뺑이 거래를 중개하는 세무대리인의 비리는 자연스럽게 은폐된다.
징계권 국세청 일원화가 해법인가
세무대리인의 불법 변칙 행위를 찾아내는 일이 어려운 점에 덧붙여 기왕 드러난 비리 행위에 일벌백계를 하는지 의문이란 지적도 많다. 세무대리인의 불법 변칙 행위가 적발되고 수집돼 징계위로 회부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징계 수위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국체청쪽에서 주로 제기돼, 관리·감독권과 징계권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곤 한다.
현행 법규에 따라 세무사의 선발 예정인원 결정, 자격증 교부, 등록, 교육 등 세무대리인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는 국세청이, 불법 변칙 행위자에 대한 징계는 재경부가 맡고 있다. 국세청에서는 징계 요건에 대한 조사만 하고 소득세과 세무사계를 통해 재경부 조세지출예산과로 서류를 넘기면 세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징계위원회에서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 징계 체제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게 국세청쪽의 주장이다.
“세무대리인의 이익단체들(세무사회, 공인회계사회 등)은 징계권을 재경부에서 국세청으로 넘기는 데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국세청이 자신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선 징계권을 국세청으로 이관하는 게 바람직하다.”(국세청 소득세과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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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나 국세청의 바람대로 일이 쉽게 성사될 것 같지는 않다. 세무사법을 바꿔야 하는 사안인데, 법 개정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재경부쪽의 반응이 심드렁하다. 국세청 출신인 이종규 재경부 세제실장은 세무대리인에 대한 관리·감독권과 징계권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해 “글쎄, 생각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이 실장은 “세무사 징계위원회에는 세무사회, 공인회계사회, 변호사회 소속 전문가들이 같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재경부만의 권한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세전문가들의 집합소인 조세연구원쪽의 의견을 들어봐도 국세청의 주장과는 좀 다르다.
김형준 전문연구위원은 “세무대리인에 대한 관리·감독권과 징계권을 일원화한다면 세무행정이 편해지긴 하겠지만, 납세자들의 권리·권한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세무대리인이란 게 어차피 납세자를 대신해 업무를 처리하는 자리여서 무엇보다 납세자 보호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데,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세무행정의 집행기관(국세청)이 징계권을 갖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변호사 징계권을 검찰이 갖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김 위원은 덧붙였다.
국세청 세무사계는 달랑 2명
때가 되면 어김없이 세무대리인 징계권 일원화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불법 변칙 행위가 만연해 있다는 의식이 바닥에 두텁게 깔려 있는 우리나라의 특수성 때문인 듯하다. 세무대리인들로선 이런 인식이 억울할 수도 있다. 일부 대리인의 비리를 들어 전체 대리인 집단을 도매금으로 넘기는 것이라는…. 그렇지만 세무행정 전반에 대한 불신이 매우 크다는 점과 세무대리인의 높은 공공성을 감안할 때 흘려넘길 일만은 아닌 듯하다.
납세자의 성실 신고 여부는 세무대리인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 세법이 복잡한데다 지역담당제 폐지로 국세청은 예전과 달리 납세자와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어 세무공무원과 납세자의 매개체인 세무대리인의 입지가 넓어지고 있다. 더욱이 1만2천여 세무대리인을 관리·감독하는 국세청의 세무사계는 달랑 2명으로 구성돼 있어 세무당국쪽의 대처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넓어진 입지를 윤리의식으로 채우는 세무대리인들의 자정 노력에 상당 부분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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