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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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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서 세계가 열린다는 것

등록 2005-04-13 00:00 수정 2020-05-03 04:24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나와 내 아들의 다중언어 인생’… 아이가 커서 정체성을 택할 수 있다면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러시아가 18세기 초 서구 중심의 체제에서 주변부로 편입되다 보니, 중세의 한국에서 한문이 그랬듯이, 러시아에서 유럽 중심부의 언어들을 구사하는 것은 결국 지배계급 또는 지식계급의 주된 문화자본이 돼버렸습니다. 사실 1917년 이전의 러시아에서 ‘지식인’의 정의 중 하나는 프랑스어나 독어를 자유자재로 해서 철학 원서 등을 즐겨 읽는 사람이었지요. 예컨대 레닌은 죽을 무렵까지 밤마다 애지중지했던 헤겔의 원서를 즐겁게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 중심부 언어와 문화 습독에 대한 열성이 고정됐기에 유럽의 새로운 유행인 마르크스주의도 비교적 후진적인, 노동계급이 강하지 못한 러시아 지식인 사회를 쉽게 강타할 수 있었지요. 19세기 러시아 지식인 가정 같은 경우 대개 5~6살 때부터, 아이가 러시아어의 어휘력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해 외국어의 어휘력을 설명할 수 있게 됐을 때 프랑스어와 독어 교육을 했습니다. 영어를 가르치는 가정도 있었지만, 영어는 그렇게 중심적으로 여겨지지 않았지요. 레닌의 경우 그의 아버지가 한미한 가문의 출신으로 자수성가해 한 지방의 교육감이 된 만큼, 그의 가정에서는 문화자본 획득 열의가 아주 강했어요. 레닌에게 그런 언어적 배경이 있었기에, 그가 20여년 동안 프랑스·독일·영국에서 살았을 때 세계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영어를 일찍이 배운 건 축복

저의 경우 조부모님이 전통 러시아 지식인이라기보다는 소련 시대의 무산자 출신으로 교육을 받으신 분들이어서 집안에서 1917년 이전처럼 외국어를 일부러 아이 앞에서 쓰거나 5~6살 때부터 집중적으로 외국어 교육을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중학생(한국식이라면 초등학교 4학년)이 돼서야 처음 영어를 접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러시아어만 했어요. 그래도 영어교육을 책과 음악 등을 통해 고교 졸업 이전까지 많이 받았죠. 게다가 영어와 러시아어는 같은 인구어족입니다. 어휘도 많이 상통하고 양쪽에서 비슷한 라틴어·희랍어를 많이 차용해 쓴 덕분에 영어는 거의 모국어와 같습니다. 러시아어로 책을 읽거나 영어로 책을 읽거나 거의 비슷하게 느껴져요. 요즘 들어서는 영어로 글 쓰는 편이 더 쉽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어는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접했고 게다가 기본 구조가 러시아어와 다른 ‘우랄알타이어족’(동사가 뒤로 가고 전체 문장을 지배하는 게 특징이잖아요)이다 보니 솔직히 책을 읽을 때 아직까지 한글보다 영어가 쉽습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일부러 매일 몇 시간씩 한국 역사책을 읽지요. 영어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보니 영어와 어휘가 많이 통하고 문장 구조가 비슷한 노르웨이어를 여기에 와서 약 1년 반 만에 배웠어요. 지금은 약간 어색해도 노르웨이어로 강의할 수 있어요. 노르웨이어 역시 독어와 통하니까 요즘 독어 공부에 빠졌어요. 그러니까 영어를 일찍부터 배운 일은 축복이 된 겁니다. 한편으로 한국어와 함께 대학 시절에 제2동아시아어로 일어를 배웠는데, 지금도 사전만 있으면 웬만큼 독해를 합니다. 한국어를 ‘기본 소프트웨어’로 깔아놓으면 일본어 배우기가 아주 쉬워집니다.

한국어의 위계질서에 적응하기 힘든 아이

지금 제 가정의 경우 아이의 이중언어는 거의 아이 교육의 주된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밖에서 한국어를 쓰고 집에서 부모가 애써 영어 지배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식일 수 있지만, 한국 나이로 4살 된 제 아이는 밖에서 어쩔 수 없이 노르웨이어를 쓰고 집안에서는 가족 모두 주로 한국어를 씁니다. 제 가족이 이렇게 살다 보니, 이중언어를 쓰는 경우 둘 다 똑같은 수준으로 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제 아이의 경우 밖에서 쓰는 노르웨이어는 그의 주된 언어가 된 셈이고, 집안에서 쓰는 한국어는 보조언어 이상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노르웨이어로 듣기·말하기는 노르웨이 아이들과 별로 다를 게 없지만, 한국어로는 다 들을 수는 있어도 말하기는 매우 제한적이며 주로 ‘소극적 이해’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유치원에 다닐 아이를 조기유학을 보내도 그 결과는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결국 영어가 주된 언어가 되고, 한국어는 어디까지나 보조 기능을 맡게 될 것입니다.

물론 ‘소극적 이해’에도 가능성들이 많지요. 예컨대 아이는 한국에 가서 한국 아이들과 놀게 되면 한국어 단어나 표현들을 매우 빨리 배우게 됩니다. 즉, 한국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인데, 지금으로서는 일단 노르웨이어 세계에서 사는 것 같습니다. 노르웨이어가 주된 언어이다 보니 한국어를 해도 ‘노르웨이적 방식’으로 하는 듯합니다. 즉, 노르웨이어에 없는 존댓말, 반말 구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조기유학을 갔다온 세대로서는 한국 사회의 언어적 위계질서에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 듯하고, 그런 면에서 사회가 의식적으로 그 언어적 위계질서의 간소화에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세계와 한국 사이의 벽을 허물자면 그것이 관건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결국 반말을 프랑스어나 독어처럼 가까운 친구나 가족 사이의 ‘비공식적 언어’, 존댓말을 일체 공식 관계(학교에서의 사제 관계 포함)에서의 ‘공적 언어’로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저로서는 아이의 이중언어 체험이 참 신기합니다. 제가 소련에서 자랐을 때 영어 읽기 등을 많이 했지만, 일단 집안에서든 바깥에서든 러시아어만 썼지요. 그런데 지금 차라리 레닌의 가정처럼 아이의 교육을 위해 제 가정에서도 하루는 독어, 하루는 프랑스어, 하루는 영어를 쓸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되도록 많은 언어를 일찍부터 배우는 게 축복이지요. 그런데 그것은 하나의 주된 언어(모국어) 기반이 어느 정도 확립됐거나 확립돼가는 상황에서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다”

제 경험으로는 “나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다”라는 의미에서 다언어 구사에 대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예컨대 스웨덴에 가도 스웨덴 동료나 진보주의자, 사회주의자들과 노르웨이어로 대화하면 되고(노르웨이어는 스웨덴어와 대단히 흡사하기에 그대로 써도 스웨덴 사람이 거의 다 알아듣고, 저는 스웨덴 신문도 봅니다), 덴마크에서 동료들이 와도 서로 흉금을 털어 이야기할 수 있고(덴마크어도 노르웨이어와 상통됩니다),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을 만나도 상대방이 영어를 못하여 말이 안 통해도 한자를 써가며 필담 아닌 필담을 어느 정도 나눌 수 있습니다. 세계가 열려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어떤 협소공포증도 깨끗이 씻을 수 있지요. 제 아이가 그나마 한국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니 역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그 아이가 커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이 택하는, 자유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커서 유럽인으로 살 수도 있고, 한국인으로 살 수도 있고 아니면 차라리 양쪽을 겸해서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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