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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늙어요! 준비됐나요?

등록 2005-03-15 00:00 수정 2020-05-02 04:24

집단 왕따당한다는 ‘현재 노인’들의 고충을 보며 ‘미래 노인’들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경기 과천에 사는 김경희(37)씨는 얼마 전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 나들이를 했을 때 당혹스런 경험을 했다. 한 샐러드 뷔페 식당에서 벌어진 일이다. 연어 샐러드 코너 앞에서 썰기 전의 연어가 맛있어 보인다고 했더니, 요리사가 두툼한 연어를 한 덩어리 줬다. 자리에 와서 아버지 김용규(72)씨에게 맛보길 권했다. 아버지도 연어를 얻으러 갔다. 그런데 빈 그릇으로 돌아왔다. 요리사가 안 된다고 하더란다. 잠시 뒤 김씨의 언니가 갔더니 같은 요리사가 언니에게는 서비스를 해줬다. 김씨와 가족들은 “아니 왜 사람을 차별하지?”라고 성토했다. 그때 아버지가 날린 한마디. “원래 그래. 내가 노인이잖아.”

푸대접에 면역이 돼버린 노인들

좌중에선 순간 침묵이 돌았다. 아버지는 “괜찮아. 다른 것도 많은데 뭐”라고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로 음식을 우물거렸다. “여기만 특별한 게 아니야. 등산 갔다 내려와서 친구들하고 호프집에 들어가면, 대부분 아직 영업 시작 안 했다고 해. 그러면서도 젊은 애들이 들어오면 ‘어서옵쇼’ 하지. 한마디로 우린 오지 말라는 거야. 사실 노인들은 안주도 별로 안 시키고, 시끄럽고, 오래 앉아 있잖아. 한마디로 물 흐린다는 건데, 할 수 없지.” 푸대접 받는 것에 면역이 된 것 같았다. 김씨는 아버지가 외출에 앞서 한참 동안 거울 보고 멋내는 것을 은근히 ‘흉보던’ 태도가 부끄러워졌다. 옷이라도 잘 입고 다녀야 그나마 ‘사람 대접’ 받는다는 게 아버지의 평소 지론이다. 고령사회가 코앞이라며 전 사회가 호들갑이다. 2026년에는 인구 5명당 1명이, 2030년에는 4명당 1명이 노인이라는 예상수치도 나왔다. 노인부양 부담이 높아진다고 여기저기서 경보음을 울린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응급처방’도 쏟아져나온다. 한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급류에 발을 담그며 허둥대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작 고령사회의 위기를 체감하는 이들은, 미래의 노인들이 아니라 오늘의 노인들이다.

3월5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안산행 열차 안.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70대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다. “…저 노선표 글자가 조금만 컸으면 좋겠어요.” “그러게요. 당최 뵈질 않아서.” “토요일이라 한적하네. 한번은 출근시간에 탔다가 낑겨 죽는 줄 알았어요.” “맞아요. 떠밀리는 것도 그렇지만 눈길들이 영…. 왜 노인들이 바쁜 시간에 돌아다니냐는 거죠.” 남자는 수원에 사는 딸네 애기 봐주러 가는 길이고, 여자는 상계동에 사는 딸네 애기 봐주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공통점을 찾은 두 사람의 대화에 탄력이 붙었다. “…아들 내외가 놀러간다고 내 스케줄도 안 묻고 손주들 덜컥 맡기면 마음이 좀 그래요.” “친구들하고 약속 나가야 한다고 하면, 오히려 섭섭하다는 반응이죠. 자기들 친구 만나는 건 중요하고 우리가 친구 만나는 건 할 일 없는 짓인가요?” “요즘엔 고령인구 늘어난다며 점점 노인들을 밥만 축내는 이들로 취급하잖아요. 그러면서 집에선 공짜로 부려먹죠.” “아이고, 고려장 하자고 안 그러는 게 다행이죠.” “노인들 골방에만 두는 게 고려장 아니겠어요? 내 아는 사람 중에….”

미주알고주알 이어지던 대화는 ‘세태 성토’로 치달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몇십년 뒤의 노인은 걱정하면서, 당장 오늘을 살아가는 노인에 대해서는 집단적인 ‘왕따’를 시킨다는 주장이었다. 금정역에서 헤어지기 전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노인들이 할 말을 제대로 해야 우리 자식, 손주들이 노인 됐을 때 세상이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인구지도는 급속히 바뀌는데 생산성 향상과 복지 확대라는 ‘시스템 변화’는 더디다. 더 더딘 것은 의식의 변화다. 강병만(71) 한국노인의전화 사무국장은 “고령세대와 비고령세대가 ‘함께 사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백날 고민해봤자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고령사회를 먼저 경험하는 현재의 노인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자식에게도 머리 숙일 수 있다”

11년째 상담활동을 해오는 강 사무국장은 시대별로 상담 주제가 바뀌어왔다고 전했다. 1994∼97년에는 단연 ‘취업 문제’가 고령자들의 으뜸 고민이었다. 구제금융 한파에 시달리던 1998∼2000년에는 ‘시설 문의’가 제일 많았다. 2001년부터는 ‘가족관계’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상담 빈도를 보면 1994년 △취업 △시설 문의 △고독·소외 △건강 △가족관계 순이었는데, 2003년에는 △가족관계 △시설 문의 △건강 △취업 △고독·소외 순으로 나타났다. 강 사무국장은 “노인들도 이젠 변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면서 “특히 가족과의 ‘관계’, 사회적인 ‘관계’에 대해 예민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들도 바뀌고 있다. 지난해 한국노인의전화를 찾았던 칠순의 ㄱ씨는 ‘자식에게도 머리 숙일 수 있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준다. 젊은 시절 자식 셋을 둔 상태에서 첫째 부인을 나몰라라 하고 둘째 부인과 살림을 차렸던 그는 나이 들어 재산도 없어지고 둘째 부인과도 헤어졌다. 첫째 부인은 일찍 세상을 뜬 뒤였다. 홀로 된 그는 자식들과 ‘화해’를 원했다. 아래 둘은 그런대로 지내지만 큰아들만은 유독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절 때 만나도 소 닭 보듯이 굴었다. 어머니가 고생하던 기억이 생생한 탓이다. ㄱ씨는 “정말 미안한데, 미안하다고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큰애 마음을 돌릴 수 있겠느냐”고 상담을 요청해왔다. 상담자는 ㄱ씨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다. 아버지라고, 노인이라고 잘못을 저지르지 말란 법 없다”라고 충고했다.

ㄱ씨는 지난해 추석 때 자식들이 모두 있는 가운데 떨리는 목소리로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꺼냈다. “미안하다. 애비가 정말 잘못했다. 너희들과 잘 지내고 싶다.” 큰아들은 그 한마디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ㄱ씨는 그 뒤 큰아들과 함께 살며 밀린 부자의 정을 나누고 있다. ㄱ씨는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려고 나섰다는 점에서 모범 사례로 꼽힌다. 비슷한 이유로 상담을 의뢰해왔던 ㄴ씨는 해가 바뀌도록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첫째 부인도 살아 있고 자식들도 그를 밀어내는 게 아닌데 ㄴ씨 스스로 ‘자존심 때문에’ 6개월째 여관과 여인숙을 떠돌며 지내고 있다. ㄴ씨는 상담자에게 “우리 애들에게 나한테 전화해서 ‘아버지 들어와 같이 사시죠’라고 얘기하라고 좀 시켜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자식들이 애원해서 들어가는 모양새를 취하고 싶다는 것이다. ㄴ씨는 ‘대접받는’ 것에만 익숙했지 ‘대접받을’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지 못한 경우다. 자신을 ‘차별의 울타리’ 안에 가둬둔 셈이다.

방송이 노인으로 눈길을 끄는 전략

고령자들이 스스로 친 울타리보다 더 높고 견고한 것은, 비고령자들이 이들을 대상으로 친 울타리다. 방송을 필두로 한 대중매체가 노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런 비고령자들의 ‘취향’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집단이나 버림받고 궁핍한 집단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과장된 촌스러움을 지닌 집단이나 더할 나위 없이 순박한 집단으로 내보인다. 정진웅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이런 태도를 ‘과거에 묶어놓고 칭송하기’라 이름붙였다. “특정한 미적 존재로 신비화하고 향수의 대상으로 삼지만, 동시에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지고 합리성의 세계에 진입하지 못한 존재로 그려낸다”면서 “(이렇게 그려지는 노인들은) ‘세련된 나’와의 차별성을 확인하기 위해 설정된 과거에 고착된 타자”(월간 <인권> 2005년 1월)라고 정의했다. 이런 경향 때문에 노년의 부정적 모습에 대한 방송의 과도한 시선 집중이 이어지고, 이미 연민이나 비하의 대상이 되고 있는 노인들에게 또 다른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한다고 정 교수는 덧붙였다.

부정적 이미지 못지않게 고령층을 옥죄는 것은 ‘젊음 연장 이미지’다. 상품 광고에서 등장하는 고령자는 하나같이 자신이 고령자임을 부정한다. 인라인을 타거나, 비탈길을 뛰어오르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철인 3종 경기를 즐기는 할머니’나 ‘보디빌딩을 하는 할아버지’로 대표되는 ‘예외적인 인물’이 성공적인 노년의 삶으로 포장된다. 정 교수는 “인구도 많고 경제력과 함께 문화적 소비 취향까지 갖춘 현 중년세대가 은퇴할 즈음이면 이런 젊음에 대한 ‘강박적 입맛’은 더 개발되고 ‘젊은 노년’의 이미지 공세는 더욱 공격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젊음 늘이기’는 얼핏 보면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 같지만 사실상 늙어가는 과정을 ‘은폐’하면서 이뤄지고, 기존의 부정적인 노년 담론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사실상 ‘회피’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계간 <당대비평> 2003년 여름호).

한 공중파 방송사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는 이아무개씨는 노년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의 통상적인 매뉴얼로 1. 울리기 2. 웃기기 3. 놀래기 세 가지를 꼽았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거나, 뒤집어지게 웃기거나, 이색적인 인물을 내세워 눈길을 끄는 전략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고령자들은 이런 범주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비고령세대가 고령세대를 보는 시각은 그런 까닭에 지극히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노인들에 대한 의식을 바꾸자

3월9일 서울 마포 신촌로 마포노인종합복지관 현관 앞. 4명의 ‘노인들’이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발랄한 어조로 호객을 하고 있다. 라떼, 카푸치노 같은 달콤한 커피와 유자차를 취급한다. 한잔에 1천원이다. 양영순(63)씨는 “지난해 여름 60 대 1의 경쟁을 뚫고 이 자리를 얻었다”면서 “한달에 20만∼30만원씩 월급 받는 것도 좋지만, 적성과 특기를 살릴 수 있어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노인들이 정부나 국가의 ‘혜택’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실버 카페’는 오전·오후 4명씩 8명의 고령자를 고용하고 있다. 월급은 수익에 따라 배분한다. 윤수경 사회복지사는 “바느질 솜씨가 뛰어난 분들은 ‘장수복’(수의) 제작을 하고, 소일거리가 필요한 분들은 포장 소품을 만든다”면서 “장시간 일자리가 필요한 분들은 구인구직 연결을 해주는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돌봐주는 ‘도우미’ 소개 문의가 부쩍 늘고 반응도 좋다”고 말했다. 이 복지관에서는 지난 1년간 700여건의 일자리 상담을 받아 절반을 연결했다. 윤 복지사는 “힘을 많이 쓰거나 정보를 다루는 일에는 뒤처지더라도, 틈새를 찾아보면 어르신들이 오히려 잘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면서 “장점은 첫째도 성실, 둘째도 성실”이라고 강조했다.

유도 선수 출신의 홍준표(69)씨는 꼭 낀 앞치마 입은 폼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모든 할머니는 인자하고 모든 할아버지는 쓸쓸한 게 아니다”라면서 “얼굴 생김이 다르듯이 노인들도 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몇해 전 마누라를 ‘등산 보내고’(사망) 혼자 살고 있다”는 홍씨는 “사지 멀쩡하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데 자식 신세질 생각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노인 인구 늘어난다고 걱정하는데 나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다”면서 “근데 내가 국회의원 홍준표보다 더 멋지게 생기지 않았냐”고 덧붙였다.

지난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노인 생활실태와 복지욕구 조사 결과’(2004)를 보면 과반수의 노인들은 자신을 노인이라고 보는 연령을 “70∼74살”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지도가 바뀌면서 사회통계적인 기준점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더 시급히 필요한 것은 고령자에 대한 의식이다. 강병만 한국노인의전화 사무국장은 “공존의 지혜는 노인에 대한 의식을 바꾸는 과정에서 터득된다”면서 “오늘의 노인들이 미래 노인들의 표상이니 걱정하지 말고 지금부터 잘하면 될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강 국장의 말을 듣다 보니, 고령자를 ‘차별과 편견’ 속에 묶어둔 채 고령사회 대비를 외치는 것은 혹시 비고령자들이 자신의 몸값을 올리고 생색을 내려는 고도의 ‘정치적 술수’나 ‘문화적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먹어도 공존하자

원만형에서 자학형까지, 한국노인의전화를 찾는 고령자 유형

지금의 나, 혹은 미래의 나는 세상과 어떤 방식으로 ‘공존’할까?
한국노인의전화를 찾는 고령자들은 네 가지 유형을 보인다고 한다. 각 유형별 특징과 극복법은 다음과 같다.

△원만형

나와 남, 세상을 객관적으로 조망해보는 스타일로, 두루두루 마찰 없이 잘 지낸다. 일이 터졌거나 감정이 상했을 때 사건 위주로 해석하고 주변 환경을 고려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 고령자 혜택이나 정보에 밝고 위기대처 능력이 있어, 자기 몫도 잘 챙기는 영리한 스타일이다. 상담자들이 ‘1등 부류’로 꼽는 유형이다.

△무장형

자기 상처에 예민한 사람들이다. 피해를 주기도 받기도 싫어한다. 함께 차를 마셔도 자기 찻값만 내고 싹 빠지는 식이다. 평소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자신을 지나치게 방어하다가 남에게 뜻하지 않게 상처를 줄 수도 있어, 일명 고슴도치형이라고 불린다. 내가 상처받기 싫듯 남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분노형

과도한 피해의식을 갖는 유형이다. 문제가 생겼거나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앞뒤 따져보지 않고 분노하는 식이다. 고령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말투가 거칠어진다거나 신경질이 늘었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불만의 원인을 차분히 짚어봐야 한다. 특정 사건, 특정인으로 범위를 좁혀 해결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초조·자학형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리는 이들로 우울증에 빠질 위험이 크다. 주위 사람들도 눈치채기 어려워 극단적인 상태로 치달을 수 있다. 상담하기에도 가장 까다로운 부류다. 자기 욕망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과자 하나를 먹어도 ‘참 맛있다’, 텔레비전을 보더라도 ‘참 재미있다’, 누군가를 만나도 ‘참 반갑다’고 스스로 감정을 키우는 훈련을 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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