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수술’ 등 여성의 몸에만 책임을 지운 가족계획…5호담당제에 버금가는 감시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도회적으로 차려입은 엄마·아빠가 딸·아들 손을 잡고 자랑찬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의 미래는 화창할 것 같다. 이게 다 애를 둘만 낳은 덕분이다. 대한가족계획협회가 1970년대 내내 뿌린 포스터이다. 포스터와 뗄 수 없는 게 표어다. 1966년부터 대대적으로 벌어진 3·3·35 운동은 “세살 터울 셋만 낳고 35세 단산하자”는 것이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던 기존 표어와 달리 낳을 애들 수도 딱 정해주던 구체적인 것이었다. 1970년대로 넘어가서는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내 힘으로 피임하여 자랑스런 부모 되자”는 표어로 발전했다.
실적 채우기에 급급
일제는 병력 확보 차원에서 “낳아라! 불려라! 길러라!”라는 구호로 다산을 독려했고, 이승만 정권 역시 안보 기반 확충을 위해 다산정책을 유지했으나, 박정희는 단칼에 이를 뒤집었다. 애를 주렁주렁 낳는 게 조국 근대화의 걸림돌이라고 여겼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ざ銃?시작된 가족계획 사업은 대대적인 애낳기 단속이었다. 계몽 방식은 다양했다. 모든 방송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부는 무조건 아이 둘 이하를 둬야 했고, 우표·담뱃값·극장표·통장·주택복권에는 “내일이면 늦으리! 막아보자 인구폭발”이라는 구호가 도배됐다(<20세기 여성사건사> 여성신문사 펴냄). 마을마다 ‘5호 담당제’에 버금가는 감시도 벌어졌다.
피임 지식 전달과 보급을 위해 리·동별로 배치된 가족계획 지도원들은 “밤에는 좌담회, 낮에는 가정방문”으로 온 동네 남녀의 ‘밤생활’을 간섭했다. 시·군 보건소별로 목표량도 정해져 있었다. 실적 채우기에 급했던 지도원들이 권장한 것은 피임보다는 불임이었다. 남자들이 정관수술을 ‘거세수술’이라며 꺼린 통에 여자들이 주로 ‘배꼽수술’로 불리던 난관수술을 받았다. 피임 방법도 간편한 콘돔 사용에 앞서 자궁 내 부착용 루프 사용을 권장했다. 가족계획의 책임을 전적으로 여성에게 지웠던 셈이다. 지도원들도 대부분 ‘아무개 여사’로 불리던 여성들이었다.
정신이 서면 부작용 줄어든다?
성과는 놀라웠다. 1960년대 5명 안팎이던 자녀 수는 70년대 중·후반 2∼3명으로 확 줄었다. 가난한 집 엄마들이 가장 큰 수혜자였으나 동시에 피해자였다. 이들의 몸은 질 낮은 불임수술과 선진국에서 검증되지 않은 피임약제의 ‘실험장’이 돼야 했다. 허리 통증과 하혈, 구토와 어지럼증이 속출했지만, 당국은 출산 억제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여성들의 안전은 깊이 살피지 않았다. 대신 부작용을 호소하는 여성들에게 ‘마음의 자세’를 거듭 강조했다. “…가족을 조절하기 위해 (약을) 먹어야 되겠다는 정신이 선 다음에 복용한다면 이런 현상(부작용)이 훨씬 적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가정의 벗> 1970년 8월). 1968년에는 마을별로 ‘계몽된 어머니들’ 중심의 가족계획어머니회가 조직됐다. 이들은 피임과 불임의 전도사로 활동하며 ‘자발적 호응’을 유도했다. 실적에 따라 지원 규모를 달리한 결과, 마을마다 경쟁적으로 세를 불려 회원 수는 1970년대 말 75만여명으로 불어났다. 국가 주도의 가족계획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이해와 권리 개념은 싹부터 잘렸던 셈이다.
1980년대로 넘어가면서 출산억제는 브레이크 없이 질주한다. 구호도 “둘도 많다”로 바뀌었다. 전국 주요 도시에 인구 시계탑을 세워 한반도가 곧 폭발할 것 같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불과 십수년 만에 출산율 저하에 따른 대책 마련에 이제 정부는 물론 온 사회가 분주하다. 계획 없는 가족계획의 후유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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