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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변해야 하지만…

등록 2005-01-19 00:00 수정 2020-05-03 04:24

‘시장의 요구’에 대한 총장의 의견엔 공감 안해…공공성에 대한 ‘사회의 요구’ 등한시하지 말아야

▣ 조항현/ 카이스트 대학원총학생회 부회장·물리학과 박사과정

고급 과학기술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1971년에 한국과학원이 설립된 이래 3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1990년대 들어 카이스트의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지난해 7월 취임한 로버트 로플린 총장은 이 상태로는 카이스트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대학원과 연구 중심의 학교를,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학부 중심의 종합대학으로 바꾸려는 비전을 제시했으며 이것이 학교 안팎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이 글은 내 개인적인 의견임을 미리 밝혀둔다.

‘카이스트 정체성’부터 짚고 넘어가자

생산적인 논의가 되려면 가장 근본적인 것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바로 카이스트의 정체성이다. 방법론에는 논란이 있지만 총장은 적어도 ‘이래서는 안 된다,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 사회에서 카이스트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기보다 현상 유지에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여전히 ‘과학기술사관학교론’을 펼치면서 개혁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보아야 한다. 학부의 강의나 교육 수준이 10년 전보다 나아졌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대학원생들은 잡무에 시달리느라 정작 중요한 연구를 못해 졸업이 늦춰지는 경우도 많다.

카이스트는 바뀌어야 하지만 ‘시장의 요구에 맞추어야 한다’는 총장의 생각에는 문제가 있다. 견제와 경쟁 체제가 어느 정도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공공성을 담보해야 하는 교육·연구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시장의 효율성만을 추구함으로써 정작 소중히 여겨야 할 생명과 안전을 소홀히 하고 사회의 요구를 등한시 하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공공성이 있거나 돈은 안 되지만 필요한 분야는 다른 국립대에 맡기고 돈이 되는 분야를 확실히 하는 것이 처음의 설립 목적에 더 부합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럴 경우 대학원 학위를 받는 것보다 차라리 취직하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 ‘학교’로서의 의미가 있겠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재정 자립에 관한 부분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대학원은 연구 중심으로 남을 것이냐, 학부는 교육 중심으로 변할 것이냐도 카이스트의 새로운 역할과 정체성에 의해 결정될 것이고 그에 걸맞은 재정계획이 나와야 한다. 정부로부터 재정을 독립하여 자율권을 갖는 것은 분명히 매력적이지만, 학부생 수를 대폭 늘리고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받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인지 의문이다. 교육의 질 향상과 학생의 양적 확대가 선순환을 이루어낸다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러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을 절감한다. 지난 30여년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카이스트가 어떤 새로운 역할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학생들도 개인의 일신을 위해 거치는 학교라는 인식보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망 속에서 카이스트를 바라봄으로써 더욱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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