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 지위가 지속적으로 하락한 카이스트… ‘사립화 논란’은 그 해결을 위한 입장 차이의 반영
▣ 이상동/ 시민참여연구센터 사무국장
지난 1990년 카이스트 학부에 입학해서 군복무 기간을 제외한 13년여 동안 줄곧 카이스트와 연을 맺어왔다. 그 기간은 과학기술자로 산다는 것과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게 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른바 ‘카이스트의 사립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최근의 논란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카이스트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수행해야 할 새로운 역할 모델을 찾기에 앞서 지나치게 경쟁력 강화의 방향만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7년 전 ‘자전거 침묵 시위’의 추억
이번 논의의 시작은 로플린 총장이 밝힌 대로 ‘재정 전략’에 대한 것이고 논의의 내용은 학부생 정원 확대와 재정자립화, 그리고 논의의 배경은 시장의 요구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카이스트는 34년 전 설립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두 가지 역할을 맡아왔다. 첫째는 ‘고급 과학기술 인력 양성’이고 둘째는 과학기술계가 ‘대중들에게 과학기술을 인식시키는 하나의 매개체’의 역할이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카이스트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해온 이 역할들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수십년 전의 독보적이고 절대적인 지위가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는 사실이다. 최근 ‘과기원의 사립화’ 논란이 교내에서 증폭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지역사회에서 카이스트를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발전 방향에 대해 명확한 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카이스트 비전에 관한 논의의 시작과 방향에 관해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주어져왔던 자신의 역할 모델을 평가·반성하고 카이스트가 사회와 과학기술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 어떤 가치를 전파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새로운 역할 모델을 찾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1998년 초 카이스트에 몸담고 있던 이들은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추진됐던 ‘카이스트 교육부 이관 논의’를 기억할 것이다. 이때 카이스트의 독자적 위치를 잃을지 모른다는 극도의 위기감을 느낀 카이스트 구성원들은 ‘과기부에 소속되지 않으면 국가 과학기술의 몰락을 가져온다’거나 ‘교육부 산하가 되면 대학입시 경쟁에 나서게 될 것이고 그럴 경우 창의적 인재양성 기능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목소리에 모두 동감했다.
비록 위기 상황에서 즉자적인 행동이 시작되기도 했지만 곧 적극적인 토론과 행동이 학교를 휩싸게 되었다. 학생들의 호응은 대단해서 2천여명의 학생이 ‘자전거 침묵 시위’에 동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행동은 카이스트의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것이기도 했다. 카이스트 구성원들이 처음으로 좁은 실험실에서 벗어나 사회의 큰 틀에서 함께 고민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과 교수들이 과학기술 정책에 좀더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과학기술자들이 인문사회과학과 만나고 시민들과 접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난데없이 오래된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당시 광장에 쏟아졌던 열정과 고민들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7년이 지난 뒤엔 ‘시장’의 논의만 무성한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카이스트가 ‘한국 과학기술의 또 하나의 이름’으로 남기를 원한다면 과학기술이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고 학생들이 이와 관련된 소양을 기르도록 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써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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