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엄마 실업자의 좌충우돌 성격 개조기… 심리상담·성격검사·사주풀이에서 한의학까지 총동원령
▣ 이미경/ 자유기고가 friendlee@hani.co.kr
2년 전, 제물포 박보살은 말했다. “앞으로 이삼년간 우환이 겹치니 조심하라”고. 그가 진정 영험한 무당이었는지는 알 길 없지만, 그로부터 6개월도 못 돼 인생이 우중충해지기 시작한 건 사실이다. 의욕적으로 시작했으나 결코 적성에 맞을 리 없는 시집살이와 계획 없이 닥친 임신·출산, 회사에서 추진한 대형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기까지 딱 2년이 걸렸다. 누구는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데, 나는 깜빡 조는 사이 애 딸린 유부녀에 대책 없는 실업자가 된 셈이다.

“노력한 적 있어요?” 조용한 질문
그래도 아이가 생겼으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아니겠냐며 두 눈 말갛게 뜨는 당신, 모쪼록 그렇게 예쁜 생각 많이 하며 사시기 바란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매사 제때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는 자책감, 상황에 맞서 정면승부하는 대신 주변 사람들에게 엉기고 치대다 필름이 끊기면 꼬장을 일삼는 자신에 대한 모멸감에 시달렸다.
“나는 내가 진짜 싫어. 그냥 콱 죽어버릴 거야!” 느닷없이 터지는 혼잣말로 택시기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다. 옆에서 자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는가 하면, 맞은편에 앉아 있던 동료가 나 몰래 주변에 관심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나에게 묻는다. 넌 대체 누구며 왜 그 모양이니. 좀 달라질 순 없니?
“선생님, 저는요,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요?” “….”
마음사랑심리상담센터 이정흠 박사를 찾아놓고도 한참을 우물쭈물했다. ‘전문가의 세심한 손길’을 받겠다고 작정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렵게 말문을 여니 줄줄 터져나왔다.
“저 진짜 비굴하고 지리멸렬하게 살거든요. ‘노’라고는 절대 말 못하고 싫은 사람도 마주치면 헤죽거리고 누가 부탁하면 발바닥이라도 닦을 자세로 갖다바쳐요. 심지어 제가 더 미칠 지경인데 저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 인생상담까지 해줘요. 남 배려한다고 오지랖 넓히다가, 술만 먹으면 세상이 불공평해 억울해하면서 질질 짜는 게 바로 저예요.”
이 박사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인다. 조급해진 나는 내가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 증명하는 구체적인 사례를 꼽으며 설득에 나선다. 예전 회사에서 겪은 일이다. 대대적인 인력 재배치가 있을 거란 사실을 동기들보다 먼저 알게 됐다. 그런 정보는 혼자만 알고 있다가 조용히 살길 찾는 게 그 업계의 보편적인 정서다. 그런데 나는 동기들에게 죄다 알려주고 결국 혼자 물먹은 꼴이 됐다. 최근에 일했던 회사에서는 조직이 요구하는 대로 ‘때깔 안 나는 일’도 마다 않다가 제일 먼저 잘렸다. 조직에서 언젠가 인정해주려니, 때가 오겠거니 하면서 가라는 부서 군소리 없이 가고 동료들에 견줘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견디었다. 인사책임자의 모진 말을 듣고도 변변히 대꾸 한번 못했다. 내가 하녀 대접 받는 거 다 이유 있다.
이 박사가 묻는다. “왜 매번 그렇게 행동했어요?”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중증인 것 같아요.” “비슷한 환경에 계속 노출됐기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닐까요? 상황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적은 없어요?”
있다. 딱 한번. 첫 직장에서 남자 상사를 보조하는 일을 맡았다. 자료 찾아주고 출장 스케줄 짜주고 만날 사람과 약속 잡아주고…. 나중엔 끼니 챙기고 물 떠다 먹이기에 이르렀다. 시키지도 않은 ‘시다바리’를 자처하던 어느 날, 야근 중인 상사가 좋아하는 포테이토칩 세 봉지를 챙겨들고 가다가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사표를 썼다. 이렇게 살다 내가 앞으로 어떤 인간이 될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음 직장은 나만의 독립적인 업무 영역이 보장되는 곳을 택했다.

MBTI 검사에 ‘나쁜 성격’ 없다!
상담자로부터 격려가 왔다. “잘했네요. 환경을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잖아요. 잘하면서, 자신이 왜 그렇게 못마땅할까요?”
난 부르짖었다. “직장을 옮긴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니까요오~!” 이 박사는 나에게 다음에 만날 때까지 왜 그런 일이 되풀이되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풀기 어렵지만 의미심장한 ‘숙제’다.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늘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고 그게 성격으로 굳어졌다면, 환경을 벗어나는 걸로 성격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면 환경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교정해야 하는 것일까.
가까운 친구에게 새해엔 심리상담을 받으며 성격개조를 해보겠노라 했더니, 눈이 함지박만 하게 커진다. 나는 “잘한 걸까? 그렇게 하는 게 좋을까?”라고 자꾸 묻는다. 친구가 말한다. “너 또 그런다 또. 남에게 지지격려받기 전에 너 스스로를 믿고 지지격려해봐.” 그래 내 태도에는 분명 반복적인 패턴이 있다. 성격유형 테스트에 들어가보자.
한국MBTI연구소를 찾아 내 성격이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MBTI는 정교하게 짜인 설문을 통해 개인이 크게 16개의 성격 유형 중 어디에 속하는지 알아보는 검사다.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 부족한 점은 개발하고 좋은 점은 잘 살리라는 취지로 보급된 검사 도구로, 다면적인성검사(MMPI)와 함께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검사는 제대로 된 해석을 받는 게 중요하므로, 전문 상담센터를 이용하는 게 좋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느낌 오는 대로 찍기’를 93번 한 뒤, 나는 ENFP 유형에 속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향적이며, 직관으로 사물을 파악하고, 감성적으로 판단하고,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사람의 유형”이란다. 어? 나쁘지 않은데? 알고 보니 MBTI의 어떤 유형이라도 ‘나쁜’ 건 없다. 서로 ‘다를’ 뿐이다. 검사를 담당한 신영규 연구원에게 물었다. MBTI의 성격 유형은 얼마큼 믿어야 하냐고. 바뀔 수 있는 거냐고. 신 연구원이 답했다. “카를 융은 인간에게 변하지 않는 본성이 있다고 믿었고, MBTI는 그 본성을 찾아내 이해하기 위한 도구예요. 중요한 변화가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결국 사람은 자기 본성에 따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다는 거죠.”
좋게 해석해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고’ 나쁘게 해석하면 ‘현실에 발 못 붙이고 원리원칙이 없는’ 내 성격은, 어쨌든 목표를 향해 부단히 정진하는 현실주의자들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을 것 같다. 카를 융이 일깨워준 본성이야 어찌됐건, 기왕 씩씩하고 용감한 여성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나선 길이니 다리품을 더 팔아보련다.
“지금보다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쩌지… 누구랑 맞장 뜰 사람이 아닌데. 타고난 기가 워낙 약해요.”
허걱. 페미니즘 사주풀이로 유명한 장철학 최장재희 원장에게 ‘성격 컨설팅’을 의뢰했다가 절망적인 답변을 들었다. 성격은 노력하면 바뀌게 마련이지만, 사주팔자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전환은 무리라고 한다. 대신 좀더 현실적인 해결책이 있단다.

무정한 사주팔자 가라사대…
장 원장에 따르면, 원체 기운이 약한 내가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첫째 방법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것이다. 뻔뻔해지라는 뜻이다. 남의 기운을 빌려도 모자랄 판에, 내 주변에는 기가 허한 사람들이 자꾸 몰려들어 나의 에너지를 덜어가려고 한다. 늘 그렇게 계속 빼앗기면 되는 일이 없을 테니 딱 끊고, 바쁘다 약속있다 거짓말을 하면서 가급적 만남을 피하는 게 상책이란다. 그 다음엔 기가 강한 사람 뒤에 꼭꼭 숨어서 그 사람이 나를 위해 싸우게 만드는 것도 좋다. 대신 그 사람에겐 밥 사주고 술 사주고 뭐든 열심히 도와주면서 “미안하지만 네 기를 좀 빌리자”고 딱 달라붙어 있으란다.
기발하고 신묘한 방책이지만 씁쓸한 생각이 든다. 결국 ‘어제와 전혀 다른 나’는 불가능한가. 덤벼라 세상아, 라고 호기롭게 외치기엔 타고난 기가 부족하다니. 피할 수 없으면 즐기겠노라고 쿨하게 굴자니 내 (대책 없는) 열정과 (즉물적) 직관, 남달리 (질척질척) 끈끈한 인간관계가 발목을 잡는다. 여러모로 생활에 도움 안 되는 성격을 가진 애 딸린 유부녀가, 2005년 한국 사회를 무탈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파견근로법이 통과되면 고용불안이 극에 달할 것이고 경기침체로 실업자가 넘쳐날 게 아닌가. 아이를 맡겨놓고 직장 생활하는 것도 점점 만만치가 않을 텐데…. 나는 왜 이렇게 약해빠진 것일까.
먹먹한 심정으로 홍명한의원 고은광순 원장을 찾아갔다. 날 좀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 기분이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찬 진료실에서, 고은 원장은 내가 소음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전체적으로 기운이 약하고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 소화기능이 떨어지기 쉬운 게 소음인의 특징이다. 걱정을 사서 하다 탈이 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머리를 맑게 비우고 비장과 위장의 기능을 강화하면, 기가 좀 세질까.
“기가 세고 약한 게 문제가 아니고, 좋은 기인가 나쁜 기인가가 중요하죠. 자기 자신한테 ‘넌 왜 이 모양이냐’라고 다그치면 기운을 더 갉아먹는 거예요. 내 안에도 기가 흐르고,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도 기가 흐르거든. 좋은 기운을 서로 나누면 두 사람뿐 아니라 세상이 평화로워지지. 미경씨는 좋은 기운을 많이 주고받는 사람인 것 같은데?”
고은 원장이 말하는 걸 받아쓰다가,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번지수 못 찾고 주책 없이 흐르는 눈물의 정체를 짐작해보면서,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를 편견 없이 이해하고 무조건 지지해주는 ‘엄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을 돌보고 위로할 여력이 없었다. 내가 내 몸과 마음의 엄마가 돼주지 못했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은 게 아니라 당신들이 너무 많아서, 정작 내쉴 곳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내 기를 갉아먹었던 걸까?
“내 안에 좋은 기운이 충만한 2005년을 만들자”는 깔끔한 구호로 새해 성격개조 프로젝트에 돌입해야지, 두 주먹을 불끈 쥐다가 문득 깨달았다. 성격 좀 어떻게 해보자고 심리상담소로 철학관으로 한의원으로 이리 찍고 저리 돌다니. 내 성격에 맞장 떠보자고 나선 것, 나로서는 큰 변화가 아닌가. 내 성격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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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활짝 펴서 손바닥을 마주 댄 다음 양손의 길이를 재어보자. 양손의 길이가 같다는 점을 확인한 뒤 왼손바닥은 펴고,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왼손바닥을 쓸어내며 “길어져라 길어져라” 주문을 왼다. 3분 동안 계속한 뒤 다시 양손을 펴서 길이를 재어보면 놀랍게도 왼손이 오른손보다 조금 길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 그럴까?
홍명한의원 고은광순 원장은 “손가락이 길어지기를 바라는 ‘의지가 담긴 생각’이 왼손의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해 순간적으로 손이 길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몸은 생각이나 감정과 이처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몸의 기운이 막힘 없이 원활하게 흐르려면 낙천적인 생각으로 항상 미소를 짓고 매사에 너그러워야 한다. 상대방에게 관용의 미덕을 발휘하면 나의 기와 그의 기가 상생하면서 각자의 몸도 건강해진다.
성격은 오장육부에도 영향을 미친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간이 안 좋고 자고 일어나면 입 안에 쓴맛이 돈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은 위가 튼튼하지 못해 자주 체한다. 슬프고 우울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숨쉬는 데 곤란을 느끼고, 자주 놀라거나 겁이 많은 사람은 신장이 약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해로운 것은 분노다. 화가 나면 몸에서 열이 나고 나쁜 기운이 간 속에 꽉 들어차 결국 화병이 된다. 그러나 정당한 분노는 예외다. 불의나 부조리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당한 분노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면, 분노를 유쾌하게 해소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몸은 완벽한 예술작품이다. 담배나 술처럼 자신에게 나쁜 기운을 불어넣는 것들을 피하되 꼭 특별한 효능이 있는 음식을 골라먹을 필요는 없다. 신선한 식품을 제때 섭취하면, 몸이 알아서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그러니 평소 몸이 말하는 것에 귀기울이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미루지 말고 즉시 몸을 돌봐야 한다. 견디기 힘든 상황에 놓인 당신의 몸이 응급신호를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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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싶다면 다양한 심리학적 ‘도구’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국 MBTI연구소 홈페이지(www.mbti.co.kr)에서는 MBTI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각 지역 상담실이 소개돼 있다. 또 임상심리 영역에서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활용할 목적으로 개발된 다면적인성검사(MMPI)는 전문적인 해석이 중요하므로 신경정신과나 심리치료 전문기관에서 검사받는다.
△인지치료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개선하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하다. 인지치료는 심리적 문제가 어떤 상황이나 사건이 아니라, 상황을 인식하는 개인의 왜곡된 생각과 믿음에서 기인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보고 이를 수정해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음사랑심리치료센터 www.maumsarang.co.kr
△사주풀이
개인의 사주는 바뀌는 것이 아니지만, 이를 풀어주는 사람의 세계관에 따라 결론이 천차만별이다. 사주와 족집게를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장철학 www.saju-mbc.co.kr
△몸으로 마음 다스리기
음양오행에 근거한 개인의 천성이나 독특한 기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한의사는 몸뿐 아니라 마음도 고친다. 홍명한의원(02-57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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