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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명가’의 새주인은 누구일까

등록 2004-12-16 00:00 수정 2020-05-03 04:23

현대건설 채권단 지분 향방에 관심 집중…외국기업·현대 일가·제3의 대기업 등 소문 분분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현대건설의 순항은 자연스럽게 임시 대주주인 채권단의 지분 향방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꿔줬다 못 받게 된 돈을 주식으로 대신 받은 채권단으로선, 이를 현금화하는 게 최대 관심사다. 회사 경영 상태가 정상 궤도에 진입할수록 채권단 보유 주식을 처분할 시점은 점점 당겨질 수밖에 없다. 채권단 지분의 처분은 기술력과 시공 경험에서 자타 공인 국내 최고인 건설회사 주인의 교체를 뜻하는 것이어서, 당사자인 현대건설은 물론 재계 전반의 촉각을 잡아끄는 사안이다.

공동관리 시한 2006년까지

외환은행(17.8%), 산업은행(16.8%), 우리은행(14.6%) 등 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건설 지분은 절반을 훨씬 넘는 수준(54.8%)이다. 지난 2000년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 뒤 수차례에 걸친 감자(자본금 감액), 출자전환, 유상증자 및 전환사채(CB) 전환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2조9천억원의 자본 확충이 이뤄진 결과다.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에 따라 2001년 10월부터 시작된 채권단의 현대건설 공동관리 시한은 2006년 말로 예정돼 있다(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은 채권단 자율협약에 따라 진행돼온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을 법제화한 것으로 2001년 9월 발효됐다). 이 때문에 채권단 지분 매각을 거론하기는 이르다는 시각이 아직 많긴 하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여신관리부 관계자는 “제값을 받으려면 팔 ‘물건’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라크 미수 채권 등 현실화되지 않은 리스크(위험)가 남아 있다”며 “아직 매각을 논의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현대건설에 대한 인수·합병(M&A) 소문은 꾸준히 돌고 있다. 지난 9~10월에는 미국 벡텔이란 구체적인 인수업체 이름까지 거론되며 인수·합병설이 흘러나와 현대건설 주가가 출렁거리기도 했다. 이는 채권단 공동관리가 2006년에 끝나는 것을 감안할 때 내년부터는 지분매각 작업을 시작할 것이란 분석 때문으로 풀이된다.

재계 일각에선 현대건설과 한 뿌리였던 현대자동차그룹, KCC그룹, 현대산업개발 등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일가의 수중으로 돌아가 다시 합쳐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대건설이 ‘범현대그룹’의 ‘종가’라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다. 범현대그룹 대부분이 건설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토목에서 강점을 띠고 있는 현대건설과 크게 겹치지 않아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여기에 덧붙는다.

반면 국민 세금이나 마찬가지인 채권단 출자전환을 통해 회생한 기업을 되찾아가는 데 대한 국민적 반감을 감안할 때 범현대 외에 다른 대기업 그룹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더 클 것이란 상반된 전망도 있다. 건설 ‘명가’로 불리기에 손색없는 시공 경험과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건설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들이라고 해도 충분히 욕심을 낼 만하기 때문이다.

주식가치와 안정 경영 사이

언젠가는 현실로 맞닥뜨려야 할 채권단 지분 매각에 대한 현대건설 내부의 시각은 좀 복잡하다. 자존심 회복 차원에서라도 채권단 ‘신탁통치’는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열망의 한켠에, 고용 안정과 경영의 영속성을 보장할 대주주를 맞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눈길이 교차한다. 이는 주주가치 극대화 차원에서 주식 값을 높게 쳐주는 곳에 팔려고 할 채권단쪽과, 안정적인 경영을 바라는 회사쪽 사이의 이해 상충 가능성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임동진 현대건설 노조위원장은 “누가 대주주로 오든 국내에서 현대건설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현대정신’을 잘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투기자본에 의한 인수로 귀한 자본이 외국으로 빠져나가서는 곤란하다는 게 직원들의 정서”라고 전했다.

채권단 지원을 통해 한때의 어려움을 극복한 현대건설로서는 만만치 않은 또 다른 시험대를 앞두고 있는 셈이다. 국가경제적으로는 주주가치 극대화 논리가 득세하는 와중에서 채권단과 회사의 상반된 이해관계가 어떻게 조율되는지를 보여줄 대표적인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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