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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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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멸을 피하는 길, 고통분담

등록 2004-11-18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산업 연관 관계 미흡 등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 극에 달해…경제사안을 넘어선 정치적 문제 </font>

▣ 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우리 경기의 현실은 차디찬 아궁이에 불을 넣는데 아랫목에선 약간 훈기를 느끼지만 윗목은 여전히 찬 것과 같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충격파에서 간신히 벗어난 1999년 2월21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SBS 등촌동 공개홀에서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른바 ‘아랫목-윗목론’을 폈다.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경제 회복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한 상인의 푸념성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경기가 더 나아지면 윗목에도 자연히 훈기가 갈 것”이라고 기대감을 덧붙이기도 했다.

급속한 개방, 대기업만 재미봐

그로부터 5년을 훨씬 더 넘긴 지금, 윗목의 사정은 어떤가. 훈기가 돌기는커녕 점점 더 싸늘한 냉골로 변해가고 있다. 산업간·기업간·계층간 양극화의 골은 자꾸 깊어지고 있다. 수출은 2002년부터 두 자릿수로 쑥쑥 늘어나는 반면, 내수(민간소비·설비투자)는 2003년 2분기 이후 내림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출 위주의 대기업과, 내수에 목을 매고 있는 중소기업 사이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비정규직의 증가에 따라 노동시장에서도 윗목과 아랫목의 차이가 극심해지고 있다. IMF 사태 이후 갑자기 커진 빈부격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도리어 확대되고 있다.

청와대가 최근 대통령 직속기구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를 중심으로 10명의 연구팀(TFT)을 꾸려 양극화 문제 해법 찾기에 들어가고, 경제정책의 기조 변화까지 꾀하고 있는 것은 양극화 실태의 심각성을 반영한다.

아랫목의 온기가 계속 높아지는데도 윗목에는 도무지 소식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양극화의 근본 원인으로는 1990년대 들어 급변한 대내외 경제환경이 주로 꼽힌다. 세계화로 인한 무역의 확대와 중국의 부상에 따라 국제 경쟁력을 띠는 산업 위주로 경제 구조가 재편되면서 ‘적응 능력’에 따른 격차가 확대됐다는 것이다. 급속한 개방에 힘입어 대기업 분야는 중국으로부터 싼값에 부품을 조달받아 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게 된 반면, 중국과 곧바로 맞부딪치는 중소기업 부문은 고전을 면하기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우리 경제는 대체로 일본을 따라하는 ‘기러기형’ 발전을 해왔는데, 1990년대 들어 이게 한계에 이르렀다. 일본 자체가 한계에 봉착한데다 ‘액정표시장치’(PDP)를 둘러싼 특허 분쟁에서 보듯 일부 분야에선 한-일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90년대 이후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산업 구조가 급변하면서 기업들이 어디다 투자해야 할지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른 경제가 불가피하게 직면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기에 산업연관 관계가 미약하다는 경제 구조적 원인을 덧붙여 안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분석 결과 2000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국산화율(생산 1단위에 투입되는 국산 중간재의 비율)은 77.0%로 90년(81.2%), 95년(80.4%)보다 더 떨어졌다. 특히 수출의 주력인 전기·전자기기 업종의 국산화율은 90년 67.1%, 95년 64.9%, 2000년 55.4% 등으로 더욱 낮다(일본은 95년 기준 91%). 삼성전자 같은 ‘잘나가는’ 국내 대기업이 갖가지 부품을 나라 밖에서 들여오는 추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대기업 호황에 따른 ‘떡고물’이 아래(국내 중소기업)로 떨어지지 않고 옆(나라 밖)으로 새고, 대기업-중소기업의 격차는 자꾸 더 벌어진다.

참여정부, 산업정책의 방향감 상실

경기 사이클이 상승 국면이라면, 이런 구조적 요인에 따른 양극화의 충격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텐데, 불행히도 현실은 거꾸로다. 과다한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문제가 미결 과제로 남아 있는 터여서 민간 소비는 계속 뒷걸음질이다. 2002년 중 가계대출 확대와 신용카드 사용 증가로 전년보다 무려 7.9%나 늘었던 가계소비는 2003년에 1.5% 줄었으며, 올해(상반기)도 계속 뒷걸음질(-1.0%)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수에 크게 기대고 있는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 등 서민경제쪽은 이래저래 위축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부라고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김대중 정부 초기인 1999년 2월에 이미 ‘아랫목-윗목론’이 제기된 것이나, 참여정부가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을 깃발로 내건 것 모두 양극화로 치닫는 경제 현실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기만 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정부로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밀려 정부의 역할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양극화에 대한 처방에서 참여정부 또한 대단히 미흡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정권 출범 뒤 수도 없이 지적됐듯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지키지 못한 점을 우선 들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한 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은 2003년 8월 ‘2만달러 시대’라는 구호를 내걸어 정책 기조를 바꿨다. 이는 내각의 경제 부문이 보수적인 관료 출신으로 채워졌다는 현실과 맞물려 양극화의 상처를 치유할 분배쪽 정책의 추진력을 급속히 떨어뜨린 것으로 분석된다.

한 예로 빈곤층 대책의 핵심과제로 제시된 근로소득보전세제(EITC)를 보자. 소득이 일정 수준에 못 미칠 경우 생활비를 보조해주는 내용의 이 제도는 지난해 1월 인수위에서 내걸었던 사안인데, 정부의 공식 방침으로 굳어진 것은 올 11월10일 대통령 주재 국정과제회의에서였다. 그나마 실제 시행은 정권 말기인 2007년부터 2천명에 대해 ‘시범적으로’ 하도록 돼 있다. 당장 심각한 양극화 문제를 감안할 때 로드맵(지도)만 있고, 액션(실행)은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노동정책에서도 이런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취임 때 “노동자는 약자, 사용자는 강자”라는 발언을 통해 노동쪽을 거드는 인상을 줬지만, 정작 그 뒤 펼쳐진 정책에서는 이전 정부와 다른 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재취업의 길을 넓히지 않은 상태에서 파견근로업종 확대 등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조처를 내린 것은 비정규직의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아예 기대감이 없었으면 모르되, 기대가 무너진 데 따른 실망감은 양극화의 체감도를 반사적으로 높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점은 산업정책의 방향감 상실로 봐야 할 것 같다. 사회 안전망 강화가 경쟁의 탈락자를 거두는 ‘사후약방문’이라면, (고용유발 효과가 큰) 중소기업을 중심축에 놓는 산업정책은 양극화의 속도를 늦추는 ‘선도적인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양극화를 고민의 주제로 삼은 산업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거시적인 정책으로만 관리했다”

참여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내세운 산업정책의 깃발은 ‘세계를 선도하는 디지털 정보 강국’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7월 차세대 신성장동력으로 디지털TV 방송, 차세대 반도체 등 10대 산업 및 세부 품목을 선정해 투자자금(매칭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안종배 한세대 교수는 “이들 산업은 특성상 대규모 투자자금과 고급인력을 필요로 하는 ‘미래형’이어서 삼성·LG·SK 등 대기업들이 맡을 수밖에 없는 분야”라며 “중소 벤처기업은 하청 방식으로 합류하든지 원천적으로 배제당하는 셈이어서 정부의 의도와 무관하게 양극화를 키우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은 이들 미래형 산업에 막대한 투자계획을 이미 갖고 있던 터여서 별도의 정부 지원이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그 자체가 잘못됐다기보다 어차피 정부 정책은 제한된 자원을 효과적인 분야에 집중시켜야 하는 ‘선택’의 게임 아닌가.

참여정부의 벤처정책이 ‘시장원리’에 바탕을 뒀다는 점에 이르면, 이런 의문은 더욱 커진다. 지난해 10월 정부 제안으로 12월 국회를 통과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시장원리에 입각해 경쟁력 없는 벤처기업의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는 인수·합병(M&A)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이 중소 벤처기업을 집어먹을 수 있는 길을 넓힌 셈이다. 이 조처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제쳐두고라도 양극화로 치닫는 산업구조의 위험성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도 양극화 문제와 관련해선, “추경예산 편성, 금리 인하, 재정 확대, 감세 등의 거시적인 정책만으로 경기를 관리했다”며 “미시적으로 하나씩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결국 양극화 문제에 대한 참여정부의 처방은 사회 안전망 확충을 통한 경쟁 탈락자의 사후 구제라는 틀에 머물렀던 셈이다. 이런 해법으로는 양극화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것은 지금의 현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양극화의 확대는 단순히 사회적 갈등을 확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경제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폭발력을 안고 있는 사안이다. 양극화가 계속 확대될 경우 상대적으로 뒤처진 산업·기업의 비중이 높아져 ‘설비투자 위축→성장잠재력 훼손’으로 이어진다는 게 연구 결과로 제시되고 있다. 또 수출·내수 양극화가 계속될 경우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돼 환율 등 외부 충격에 견디는 힘이 약해진다. 윗목의 곤경이 아랫목까지 포함한 방구들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거시적인 정책으로만 관리했다”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여당은 물론 한나라당까지 경제 문제를 거론할 때면 으레 양극화를 화두로 삼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양극화의 실태와 영향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양극화의 해법에서도 별 차이점은 없어, 성장을 통해 파이(몫)를 키우면 온기의 일부가 윗목으로 자연스럽게 전달될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랫목과 윗목의 연결장치(산업연관 관계 등)가 고장난 상태에서는 방안의 평균 온도가 올라가더라도 윗목은 냉골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우리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양극화의 교과서적 해법은 너무나 빤하다. 원인을 뒤집어놓으면 곧바로 해법이 된다. 산업연관 관계 강화, 중소기업 혁신 유도, 낙후 산업·기업의 구조조정 촉진, 서비스산업 지원·육성, 인적자본 육성, 사회 안전망 확충…. 정부가 지난 7월7일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을 주내용으로 하는 중소기업 종합대책을 제시한 것이나, 서비스 산업 육성책을 추진하고 있는 게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런 모범 답안이 다급한 현실에선 너무나 무력하다는 점이다. 방향성에 대한 일부 논란은 제쳐두고라도 이런 방책의 효과가 나타나기에는 많은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혁신형 중기를 키운다는 정책을 예로 들어보자. 혁신형은 대체로 제조업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데, 국내 300만 중소기업 가운데 제조업은 11만개에 지나지 않는다. 제조업 전체를 혁신형으로 키울 수도 없을뿐더러 나머지 289만개의 중기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외환위기 뒤 과잉 공급된 택시, 식당업의 구조조정도 이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조영삼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중기 정책 등에서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하는 구조적인 대책이 중요하나, 단기적인 정책 수요도 적지 않다”며 “제한된 재원에 대한 합리적 배분에서 이런 부분을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 각 부문의 양극화 문제는 너무나 비대해져 이미 ‘경제 사안’을 넘어선 ‘정치·사회적 현안’으로 번지고 있다. 실업자가 10만 단위이면 ‘경제 문제’이나 100만 단위에 이르면 ‘정치 사안’으로 번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해법 또한 경제 영역을 넘어서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한정된 정부 재원으로 윗목에 돈을 퍼부을 수도 없다. 사회 안전망 확충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각 경제주체들이 요구의 수준을 한 단계 낮추는 타협과 고통 분담을 통해 공멸을 피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예컨대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혁신을 도와주는 대신, 중소기업은 납품가를 낮추는 협약을 통해 거래관계만큼은 지속적으로 보장받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기업이 뭐가 답답해서 양보하겠느냐는 회의론이 나올 법하나, 파국 뒤에 잃을 게 많은 쪽은 대기업이다.

‘단기주의의 덫’에서 빠져나오라

경제 주체들 사이의 타협은 노동계(특히 대기업 정규직)가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함으로써 사용자쪽으로부터 고용의 안정성 및 사회 전체의 취업 기회를 높이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타협은 노사정위 같은 틀을 통해 국가 단위에서 이뤄져야함은 물론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각 경제주체들이 ‘단기주의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결단을 내리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중소기업 혁신을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지만, 양극화 완화를 위한 타협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경제 양극화는 이제 더 이상 경제 문제가 아니라는 위기의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경제학 교과서는 “시장 자율에 맡겨두면 ‘장기적으로’ 균형을 찾아간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대경제학자 케인스의 경고처럼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고 만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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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해소 원하면 좌파?</font>

<font color="darkblue">빈곤층 늘어날수록 성장 잠재력 하락…경제발전 성숙 단계에선 양극화가 악영향 </font>

경제 양극화와 성장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사회 안전망 확충 등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부 개입은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는 좌파 정책이란 공격을 받기 일쑤인데, 연구 결과는 정반대로 나와 있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이 최근에 내놓은 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빈곤층이 1%포인트 늘어날 때마다 1인당 GDP는 약 0.22%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서 빈곤층은 소득이 중간값의 절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계층이다.
이처럼 빈곤층의 비중 확대가 생산 저해로 이어지는 것은 소득 증감에 대한 상·하위층의 반응이 다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상위층의 경우 양극화로 소득이 늘어도 교육투자율(총교육비/소비지출)을 별로 늘리지 않지만, 빈곤층은 최저생계비 마련을 위해 교육투자율을 낮춰야 하기 때문에 소득분포도가 불평등해질수록 사회 전반의 교육투자율은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성장 잠재력의 하락을 뜻한다.
한은 금융경제연구원은 “양극화로 인한 인적 자본의 감소 및 경제·사회적 불안정성 증대가 연구개발 능력과 투자를 위축시키는 효과까지 감안할 경우 1인당 GDP는 더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밝힌다. 뒤집어 말하면,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력이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소득 양극화가 성장 잠재력에 끼치는 영향은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다르다. 물적 자본의 축적을 주된 성장동력으로 삼는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선 소득 양극화가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게 정설이다. 이미 부족함 없이 쓰고 있는 고소득층은 추가로 올리는 소득을 소비보다는 저축으로 돌리는 경향(한계저축성향)이 강해, 고소득층에 자원이 집중되면 사회 전체의 총저축량(최대 성장동력)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반면, 인적 자본의 축적과 기술혁신을 성장동력으로 삼는 경제발전 성숙 단계에서는 소득 양극화가 원활한 인적 자본 투자를 저해하고 나아가 기술혁신의 여건을 악화시켜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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