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재선에 대한 국제 사회의 다양한 반응… 아프리카는 원조에 대한 기대감 높아
▣ 파리·런던·델리=이선주, 조임숙·줄리언 체인, 우명주 전문위원, 임을출 기자
국제사회는 이번 미 대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국제질서의 물줄기는 어디로 흘러갈까.
◇ 영국 이번 미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 현 대통령이 상당한 표차로 케리 민주당 후보를 따돌린 것을 두고 영국 대부분의 정치가나 논객들은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의 조너선 프리던은 “이는 과거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시기로 접어드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썼다. ‘테러와의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동성간의 결혼이나 낙태 반대 등 이른바 ‘전통적 도덕’의 회복을 부르짖은 것이 부시 승리의 요체인 것 같다. 이런 보수주의에 부응한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 진영이 조직적으로 선거를 지원한 것이 부시 낙승에 단단히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영국 신문들은 이를 두고 미국은 이제 문화적 분열에 직면해 있다고 본다.
새로운 유럽주의 부흥할 수도
녹색 진영은 미 선거 결과에 대해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녹색당의 스펜스 피츠기븐은 부시의 재선을 ‘지속 가능성과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대부분의 노동당 인사들은 물론이거니와 보수 정치가들조차 내심 그다지 부시의 재선을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심지어 보수지인 조차 “부시는 지난날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을 것인가”라며 부시의 맹목성에 대해 회의를 표시하고 있다. 는 “우리는 이미 미국에 너무 많이 봉사하고 있다”며 미국의 전쟁에 마냥 끌려다니는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영국은 이제 이라크에서 적당히 선을 긋고 빠져나오기 어렵게 되었고, 전쟁의 수렁으로 마냥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나타나고 있다.
미 행정부에 신보수주의 바람이 더욱 거세질 것이고, 국내적으로 사회보장제도의 사유화가 진행되며 국제적으로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처가 갈수록 절박해지는데도 ‘교토협약’을 무시하는 정책을 계속 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노골적 이기주의와 일방주의에 대해 전세계적으로 반미 감정이 고조될 것은 자명하다. 이미 유럽에서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감이 널리 확산된 터라 진보지 의 재키 애슐리는 “부시에게 절망한 나머지 새로운 유럽주의가 부흥할 수도 있다”라고 썼다. 중동정책은 지난날과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즉, 부시는 말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철수를 떠들지 몰라도 실제로 이스라엘 샤론 총리에게 압력을 넣어 뭔가 중동평화에 결실을 보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의 논객 막스 메이스팅스를 위시한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격을 예상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매체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 경제 전망에서는 무역과 재정적자의 어려움을 대부분의 언론이 지적하고 있다. 는 미국의 달러가 붕괴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카우보이식 세계전략에 제동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 프랑스 그렇다면 유럽과 미국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러시아는 용서해주고, 독일은 무시하고, 프랑스는 처벌한다.” 지난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반전 노선을 고수하는 와중에 이라크 전쟁을 강행하면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던진 말이다. 라이스의 발언은 이라크 전쟁 전후로 미국편에 서지 않은 프랑스가 미국 행정부와 언론, 국민들로부터 들었던 수많은 비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처럼 프랑스와 미국 사이에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시의 재선은 프랑스쪽을 적지 않게 좌불안석으로 만들고 있다. 프랑스 언론들은 일찌감치 망설임 없이 ‘반부시, 친케리’ 논조를 유지해왔다. 지난 10월28일 보수언론지 는 ‘프랑스인들, 케리에 투표하다’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인들의 미 대선 후보 여론조사 결과를 1면에 큼지막하게 싣기도 했다. 반부시 표는 무려 71%에 달했다. 응답자의 82%는 “테러의 국제질서 위험의 증가 책임은 부시에게 있다”고 답변했다. 66%는 “케리의 당선으로 미-프간 외교관계의 변화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라크 사태는 프랑스 정부와 국민, 언론을 보기 드물게 한목소리로 묶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제국이 더 악독해진다”
11월4일치 는 부시 당선 확정 뒤 ‘제국이 더 악독해진다’라는 씁쓸한 어조의 제목으로 1면을 우울하게 장식했다. 진보언론 은 사설에서 한발 나아가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을 통렬히 비난했다. “텍사스 입양인을 선택한 것은 바로 미국이다. 근본적으로 국가주의적이며, 대부분 시골과 교외에 자리하고 있는 대중적인 또 하나의 미국. 안전 문제에 가장 관심을 갖고 기독교의 근본주의적 가치들에 포위돼 있는 미국. 다른 나라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도 없는 대륙의 미국. 게다가 반세기 동안 이뤄진 문화개혁에 대한 톨레랑스조차 싫어하는 미국.”
지난 4년간 부시를 익히 보았고, 세계의 어느 정부보다도 외교적으로 미국과 충돌이 심했던 프랑스 정계는 부시의 재선에 대해 좌우익을 막론하고 반기는 이가 없는 분위기다. 대신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부시를 만들어낸 이 아리송한 미국에 맞서는 ‘강력한 유럽 만들기’을 다짐하고 있다. ‘강력한 유럽’을 외치는 중심인물인 시라크 대통령은 다소 의례적인 당선 축하 편지에서 ‘대화’와 ‘협조’를 강조하며 ‘민주주의’와 ‘자유’를 장려하자고 썼다. 하지만 대화와 협조가 이뤄지려면 다자주의를 외치는 유럽이 아닌, 일방주의를 고집하는 부시 정권의 태도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프랑스와 미국이 얼마나 사이좋게 지낼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한다.
◇ 인도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도 언론 역시 부시 대통령 재선의 의미와 인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많은 인도인들은 파키스탄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부시에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경제정책에 주안점을 둔 케리 후보가 보호무역론으로 돌아갈 가능성 때문에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반기는 분위기다. 지난 클린턴 정부가 파키스탄의 반인도 테러, 카슈미르 문제, 기술 이전 등에서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기억은 인도가 부시의 재선을 환영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조속한 시일 내에 그를 초청하고 싶다고 밝혔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인도 언론 또한 부시의 승리가 3G, 즉 신(God), 게이(Gay), 총(Gun)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 3G 가운데 인도가 가장 많은 관심을 쏟은 대목은 당연히 신(God)이다. 존 케리가 이라크·보건·경제 문제 등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 부시 진영은 도덕적 문제들을 부각시킴으로써 많은 표를 끌어들였다. 경제 문제가 주요 쟁점이었던 인도의 선거와는 반대로 미국의 유권자들은 개혁주의자들의 동성결혼권 주장 같은 문제들을 더 우려한 결과라고 인도의 신문들은 분석한다. 민주당의 승리는 결국 동성결혼 허용, 줄기세포 연구, 그리고 낙태금지법 폐지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공화당 보수주의자들이 더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부시는 종교 때문에 승리했다”라는 인도 영자신문의 한 칼럼은 미 중산층들은 점점 종교·윤리적 문제에 영향을 받고 있고 미국이 유대-기독교 가치에서 선한 것들은 보호하고 발전시켜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고 언급했다. 부시가 두 번째 임기에서 가족과 신념의 가장 깊은 가치를 떠받칠 것이라고 맹세한 것은 이 유권자들의 명령을 인정한 것이라고 칼럼은 분석했다.
인도는 경제적 이유로 재선 반겨
또 “부시의 승리는 오늘날 미국의 여러 가지 분명한 현실들을 반영한다”라고 인도 언론들은 지적한다.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에게 알카에다 같은 조직들이 자행한 테러 위협에 대한 우려와 불안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도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9·11 테러에 대한 기억과 함께 미국인들은 부시가 말한 국제 테러와의 전쟁 한가운데서 대통령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케리 후보는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지적했지만 대다수 유권자들은 개인과 국가의 안보에 대한 확신을 위해서라면 생계 문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소홀을 눈감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 또 비록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의로 역정보를 이용한 것 등은 잘못됐을 수도 있고 이라크 국민들의 무장 저항 등으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락시키고 이라크와 석유 자원을 미국의 지배 아래 둔다는 부시의 목표는 옳은 것이라는 생각이 미국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고 언론은 분석했다.
그러나 인도의 분석가들은 선거에서 승리한 부시의 행복감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빈 라덴이 생존해 있고, 다른 국제 테러조직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으로서 벌써 2년째에 접어들었고, 약 1100명의 미국인들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수천명의 이라크인들을 희생시켰다. 이라크 전쟁의 만족할 만한 결말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는다. 선거기간 중 부시와 그의 참모들은 이라크 전후 안정과 관련한 어떤 새로운 비전이나 전략도 내놓지 못했다. 부시 행정부는 만약 어떻게든 저항단체의 본거지인 팔루자가 진압되고 이라크에서 선거가 예정대로 1월에 실시된다면 여러 문제들이 끝날 것이라는 믿고 있는 것 같다.
중국, 대만 문제에 촉각 곤두세워
◇ 중국 중국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시의 재선으로 그동안의 미-중 관계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은 없다고 낙관하는 분위기다. 대만 문제가 뜨거운 감자이긴 하나 두개의 중국 입장을 확실히 취해온 부시 정부가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고, 무역분쟁이 또 다른 불씨이기는 하나 이 역시 슬기롭게 넘길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지만 역시 대만 문제는 앞으로 언제든 미-중 관계를 흔들 수 있는 뇌관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이라크 침공을 강행한 미국이 앞으로 대만 독립을 부추길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많이 나왔던 터라 적지 않은 중국인들은 부시 재집권을 ‘재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국제사회가 반기지 않는 부시의 재선을 중국이라고 특별히 반길 이유는 없다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아프리카 아프리카 나라들은 다소 상이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부시 재선으로 미국의 경제 및 인도주의적 원조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는 9·11 테러 이후 부시가 지구적인 테러 전선을 펼치면서 아프리카 나라들의 지지와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뿌렸기 때문이다. 부시는 지난 4년 동안 아프리카에 에이즈와 말라리아 퇴치기금 150억달러를 지원하는가 하면, 개발지원금 규모도 크게 늘려왔다. 전통적으로 아프리카 나라들은 미국 민주당 정권을 지지해왔으나 9·11 테러가 이를 확 바꿔놓은 셈이다. 그러나 많은 지식인들은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에 공조한 대가로 아프리카의 적지 않은 독재 정권들을 비호할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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