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환락가', 청량리 588과 안마시술소에서 ‘비상행동수칙’강의를 듣다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취재팀의 어려움은 9월23일 ‘성매매 알선 등 처벌법’에 따라 강화된 단속 현장을 취재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서울의 청량리·용산·영등포 등 대부분의 집창촌은 단속을 피해 영업중지 상태여서 가본들 그곳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은밀하게 성매매를 하는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증기탕·안마시술소·퇴폐이발소·휴게텔 등은 종류가 다양해 어디를 가서 어떻게 취재할지 난감했다. 특히 기자임을 미리 밝히고서는 정상적인 취재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PC방에 ‘죽치고 있는’ 아가씨들
10월8일 저녁 서울의 대표적인 집창촌인 ‘청량리 588’부터 가보기로 했다. 청량리역 광장 옆 롯데백화점을 끼고 좁은 길로 들어서니 말 그대로 암흑가였다. 불이 켜진 집도 성매매 업소가 아니라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조그만 가게와 포장마차들뿐이었다. 이마저도 없는 길모퉁이에는 업소의 조명이 가로등을 대신하고 있었다. 삭막해진 거리 풍경을 찍으려 하자 삼삼오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던 가게 주인들이 와서 푸념을 했다. “오늘 담배 한갑도 못 팔았소. 이러다 우리 다 죽겄소. 불 꺼졌는데 사진은 찍어서 뭐한다요.” 한때 화려한 조명 아래서 더 화려한 화장을 한 ‘아가씨’들이 손님을 유혹하고 그 거리에 풀린 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거리가 죽어간다고, 우리도 죽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집창촌을 벗어나 100여m를 가니 대로변에 집창촌 업주와 상인 모임 성격의 ‘자율정화위원회’ 사무실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전날 성매매 종사자들의 시위에 관한 언론 보도에 불만부터 터뜨렸다. ‘아가씨’들이 얼추 4천명은 됐는데 2천여명으로 보도됐고 자신들의 생존권 보장 주장에 비해 지속적인 단속을 촉구하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크게 부각됐다는 내용이었다. ‘업주들의 시위 종용’ 의혹에 대해서도 억울함을 표시했다. “아가씨 아무나 잡고 물어봐라. 우리가 현장에 간 것은 알몸시위 같은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일률적인 모자나 현수막을 보고 뭐라 하는데 그것도 부근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협찬했다”고 주장했다.
영업을 못하면 아가씨들은 다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떠난 아가씨들도 있고 남은 아가씨들은 이 시간쯤엔 PC방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PC방에 들어서자 20대 여성 30여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 고스톱이나 포커 같은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PC방 관리인인 듯한 20대 초반의 한 남자가 처음엔 “당신들 뭔데 함부로 사진을 찍느냐”고 험악하게 굴었지만, 위원회쪽 사람이 한마디 하자 고분고분해졌다. 그는 “주로 누나들이 단골인데 단속 전에는 일 마치고 새벽녘에 와서 놀았다. 요새는 한창 일할 시간에 여기서 이러고 있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보리라는 가명을 쓰는 29살 여성을 만났다. 집에서 출퇴근한다는 그는 “한달에 200만~300만원은 벌었는데 집세를 걱정할 처지가 됐다. 요새는 단골 손님을 바깥에서 만나거나 인터넷을 이용한다. 돈이 없으니까 나가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게임방에서 죽치고 산다”며 “여성단체나 정부는 도와주겠다지만 도움을 청하기도 싫고 실질적인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리씨는 전날 시위에 대해 “요새 같은 시국에 누가 강요한다고 나가겠느냐”며 모두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했다. PC방에 있는 여성들 중에 애완견을 안고 있는 이도 있었는데 “내 뒷모습은 괜찮지만 얘가 나오면 집에서 알아볼 수도 있다”며 품에 꼭 안아 가렸다.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친구 여동생 같은 그 얼굴들…
PC방을 나와 다음 취재지로 향하는 동안 그 얼굴들이 잊혀지질 않았다. 예전 표현을 빌리면 ‘윤락녀’라고 해서 무슨 표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친구 여동생 같은 그 얼굴들이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다른 여성들의 얼굴과 자꾸 겹쳐졌다.
강남구 청담동 어느 아파트 옆 한적한 거리의 안마시술소가 다음 취재 예정지였다. 이곳은 지인에게서 성매매가 이뤄지는, 이른바 “물 좋은” 업소라고 소개받았다. 입구에서 주인인 듯한 중년 여성이 1인당 18만원을 내라고 했다. 안마를 받는데 뭐가 그리 비싸냐고 물으면서 이것저것 캐묻자 “이런 데 처음이신가 보네. 여기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라며 웃음을 흘렸다. 10만원짜리 수표로 계산했다. 이서를 요구하지 않았다. 신분 노출을 꺼리는 손님에 대한 배려인 듯했다.
조그만 방에서 30분 정도 기다리자 욕실이 딸린 침대방으로 데려갔다. 잠시 뒤에 동이(가명·22)라는 ‘아가씨’가 들어왔다. 그는 경찰이 들어닥칠 때를 대비한 "비상시 행동수칙 강의’를 시작했다.
“언니가 그러는데 오빠 초짜 같다면서 확실히 말해주래. 요새 걸리면 남자도 처벌받는 거 알지? 오빠는 TV도 안 봐? 일단 단속이 뜨면 저기 벽에 빨간 불이 들어와. 그러면 뭘 하고 있든 무조건 옷부터 입어야 돼. 옷 입고 있으면 내가 그냥 심부름 왔다고 하면 되거든. 누가 벗은 상태에서 걸리면 곤란해. 전에는 같이 벗고 샤워부터 했는데 난 연애(성행위를 의미함)할 때만 잠깐 벗을 거야. 다 오빠를 위해서야.”
겁나서 뭘 할 수 있겠느냐면서 그냥 누워서 얘기나 하다 시간 되면 가라고 했다. “오빠들이 무섭긴 무서운가봐. 풀로 서비스하면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요새는 들어오자마자 옷도 안 벗고 후딱 해치우고 가는 오빠들도 많아. 내가 2년 정도 있었는데 우리 업소는 한번도 맞은 적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둘이 섹스를 하다 걸려도 잡아떼면 무슨 수로 처벌을 하냐고 묻자, 증거물인 콘돔이 나오면 “벌금 3천만원에 징역 2년”이지만 없으면 구류 36시간이라고 했다. 그래서 ‘연애’하기 전에 전화로 콘돔을 부르고 끝나면 바로 내보내 물증 체류시간을 최대한 줄인다고 했다. 나중에 법을 뒤져보니 성매매 행위자는 1년 이하 징역, 300만원 이하 벌금, 구류 또는 과료 처분이었다. 이 업소는 경찰의 단속이 강화된 뒤에도 성매매를 하고 있었지만 나름대로 피해갈 방도를 짜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서울경찰청 국정감사 덕분에…
단속이 강화된 뒤 뭐가 변했는지 궁금했다. “여기 아가씨가 40명이었는데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다 쉰다고 안 나오고 먹고 자는 아가씨 3명만 일해. 하루 손님이 150명 정도 됐었는데 요새는 팍 줄었어. 한 보름 쉬었다가 오늘 처음 일하는 거야. 계속 이런 분위기로 가면 텐프로(이른바 ‘2차’라고 부르는 성매매 없이 업소에서 술시중만 하는 룸살롱을 칭하는 은어)로 옮길까봐. 아는 언니들 중에는 1천만~2천만원 정도 들여 아예 외국으로 갈까 고민하는 언니들도 있고.”
경찰의 단속이 눈에 띄는 집창촌에 집중되는 동안 은밀히 성을 사고파는 업소들은 조심스럽게 영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유사 성매매 행위에 대한 단속이 검경의 뚜렷한 기준이 확정될 때까지 미뤄진 탓도 있는 것 같다. 안마시술소에 있는 동안 경찰의 단속에 신경이 쓰여 좌불안석이었다. 취재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잘못하면 망신살이 뻗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날 단속은 없었다. 이 업소뿐만 아니라 서울 전역 거의 모든 업소에 단속이 없었다. 성매매 신고 전화에 의해 출동하는 경찰청의 단속반은 이날 국회의 서울경찰청 국정감사 준비를 이유로 움직이지 않았다. 서울청의 국정감사에 참석하는 주요 간부들과 현장 단속에 나서는 이들이 거의 겹치지 않을 텐데 단속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기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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