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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위축’ 걱정은 엄살이다

등록 2004-10-14 00:00 수정 2020-05-03 04:23

성매매 단속에 따른 경제적 파장 과장하지 말아야…장기적으로는 기업 경쟁력 강해질 것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성매매 단속에 따른 파장은 성매매업소 여성 종사자들의 생존권이란 미시경제적 주제를 넘어 거시경제 사안으로도 연결된다. 국내 성매매 시장 규모가 적게 잡아도 20조~30조원에 이를 정도로 하나의 거대한 산업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다. 수십조원대에 이르는 성매매 시장의 중심부에 대한 타격은 경제 전반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30조 안팎의 초거대 지하경제

지하경제 영역이라는 특성 탓에 성매매 시장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만, 어느 정도 추정해볼 실마리는 제공돼 있다.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2월 내놓은 ‘성산업 규모와 성매매 실태에 관한 전국 조사’가 그것이다. 2002년 11월 서울과 전국 6개 도시에 있는 주점과 이발소, 마사지업소 등 5403개 유흥업소를 대상으로 한 이 조사 결과는 국내 성매매 시장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로는 거의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형사정책연구원은 당시 조사를 통해 “최소 33만명의 여성이 전문적으로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으며, 성매매 거래 규모는 2002년 기준으로 24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그렇지만 이 수치는 최소 규모로 여겨진다. 일정 기간 업소에 소속돼 성매매에 종사하는 이들만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당시 공동 실태조사에 참여했던 김성언 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예컨대 ‘보도방’을 통해 공급되는 여성들이라고 하더라도 뜨내기식으로 옮겨다니는 경우 대상에서 빼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매매춘 근절과 윤락여성 지원을 위한 ‘한소리회’나 ‘새움터’ 등 여성 단체들은 2002년 말 기준 윤락 여성의 규모를 118만명으로 추정한 바 있다.

2002년을 기준으로 삼은 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 뒤 2년가량 시일이 흘러 경제 단위가 커졌다는 점,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불거진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 등 신종 수법의 등장을 감안하면 시장 규모는 훨씬 커진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으로 잡더라도 국내총생산(GDP)의 4~5% 수준인 30조원 안팎의 초거대 시장인 셈이다.

성매매 단속 뒤 이 시장에는 다양한 경제적 파장이 일고 있다. 집중 단속 대상인 집창촌은 물론, 식당·미용실·옷가게 등 인근 상권이 위축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3개월 뒤인 내년 1월께 여성 신용불량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농담 같은 전망도 있다. 소득원을 잃은 성매매 업소의 여성들이 ‘30만원 이상 3개월 연체’로 신용불량제도의 덫에 빠질 것이란 설명이다. 한때 초호황을 누렸던 러브호텔에 꿔준 돈을 떼일까 전전긍긍하는 금융기관도 상당수에 이른다는 얘기도 들린다. 소액대출을 담당하는 국민은행 소호팀 관계자는 “성매매 시장의 주변 가게나 점포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단편적인 사실 또는 추정은 성매매 시장 전반과 나아가 경제 전반을 위축시킬 것이란 관측으로 이어지는데, 성매매 단속이 시장을 되레 키울 것이란 정반대 분석도 있다. 규제가 강화되면 거래량은 줄어드는 반면, 더 음성화하면서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2002년 형사정책연구원의 실태 조사에 같이 참여했던 최성호 경기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수요(성 매수자) 측면에 대한 대책- 교육·사회적인 운동 등- 없이 규제로만 줄이려 하면 파행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거래량 감소 이상으로 음성적인 가격이 높아져 시장이 더 커질 가능성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번 단속에 따라 대체로 성매매 시장 규모는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많은 듯하다. 특별 단속에 따라 당장 싸늘해진 분위기를 제쳐두고라도 이 시장의 속성으로 보아 수요 측면에서 상당한 감소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다.

“(성매매 업소를 통한 성 구매 행위를) 여태까지는 불법이지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이젠 ‘절대 안 된다’는 메시지가 전달돼 무심코 업소를 이용하는 이들이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음성화해 비용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사문화됐던 법이 실제 적용되면서 업소를 거점으로 한 행태는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봅니다.”(황정임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원)

이런 관측대로 성매매 산업의 규모가 축소된다면 이는 경제적 손실일까?

성매매 업소 불경기로 이미 위축

김성언 부연구위원은 “성매매 시장에서도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부가가치가 있긴 하나, 이는 국민 경제에 이바지하는 긍정적인 의미의 부가가치와는 차원이 다르다”라고 말한다. 김 위원은 “(성매매 시장에서 창출된 부가가치) 그 자체가 갖는 부정적인 측면이 강할 뿐 아니라 생산적인 부문으로 돌려져야 할 몫이었다는 점을 아울러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성매매 시장에서 생긴 부가가치 ‘공백’이 생산적인 부문에서 곧바로 채워지지 않더라도 이를 경제적 손실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성매매 업소를 비롯한 유흥업소에서 쓰이는 돈의 출처이다. 이런 성격의 돈이 제 주머니에서 나온 것일 리 없고, 대부분은 회사 접대비이며 이는 곧 기업 경쟁력 상실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뒤집어 말하면 성매매 시장의 위축은 경제의 건강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경제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성매매 단속에 따른 경제적 파장을 과장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성매매 업소 인근 상권의 위축세는 전반적인 불경기로 이미 현실화되고 있던 것으로, 성매매 단속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경기도 분당에서 남편과 함께 러브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박아무개씨는 “매출 감소세는 맞지만, 성매매 특별법의 직격탄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경기침체로 지난해부터 꾸준히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업소 종사자들의 자활 대책이란 미시경제 ‘처방’이 필요한 것이지, 성매매 단속으로 쪼그라든 경기가 더 위축된다는 식의 거시경제적 ‘엄살’을 부릴 계제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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