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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위원회의 야심!

등록 2004-09-02 00:00 수정 2020-05-03 04:23

‘법’으로 국제질서 유지하려는 국제적 헌법재판 자문기구… 우리 헌재도 정회원국 가입 준비중

▣ 석진환 기자/ 한겨레 사회부 soulfat@hani.co.kr

‘베니스위원회’를 아시나요?

유럽연합(EU)의 국제적 헌법재판 자문기구인 베니스위원회의 정식 명칭은 ‘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 for Democracy through Law)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베니스위원회는 ‘법의 지배’라는 대원칙을 통해 국제적인 민주주의 질서를 새로 짜보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미국이 힘에 의한 세계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맞서 베니스위원회를 통해 ‘힘’이 아닌 ‘법’으로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

베니스위원회는 1990년 5월 동구권의 옛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를 계기로 유럽평의회의 결의에 따라 창설됐다. 출범 당시 베니스위원회는 국내의 법치 기반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동구권 국가들을 위해 일종의 헌법재판을 대신 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차츰 베니스위원회를 통해 각국의 헌법재판 자료가 공유되고 국제적 기준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베니스위원회는 유럽연합의 중요한 기구로 발돋움하게 됐다. 특히 헌법재판제도가 유럽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의 국가적 쟁점 사항들을 헌법적 기준에서 판단하고, 헌법적 결론을 내려주는 등 ‘국제적 헌법재판기구’로 위상이 높아졌다. 예컨대 각국의 헌법재판 전문가들이 모여 이번달에는 슬로바키아의 선거제도를, 다음달에는 불가리아의 형사법을 헌법재판하는 것이다.

베니스위원회는 2002년 규약을 개정해 비유럽권 국가들도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는 유럽의 모든 국가들을 포함해 46개 정회원 국가와 1개 준회원 국가, 9개의 옵서버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 카자흐스탄이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으며, 키르기스스탄은 정회원 국가다. 국내에는 베니스위원회가 거의 소개된 일이 없지만, 우리 헌법재판소도 베니스위원회의 정회원국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지난 2000년 6월 당시 김용준 헌법재판소장이 총회 연설을 하기도 했으며, 2001년부터는 국내에 연락관을 둬 지속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위원회의 역할이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고, 3년 전부터 정부에 정회원국 자격 획득을 위해 매년 예산 신청을 하고 있지만 매번 예산 확보에 실패하고 있다. 헌재는 앞으로도 △베니스위원회 회원국 가입으로 우리나라가 국제적 헌법 문제의 판단 주체로 참여해 국가적 위상을 높일 수 있고 △외국 헌법재판의 축적된 자료와 경험을 우리 헌법재판제도에 적용할 수 있다는 논리로 정부와 국회를 설득할 계획이다. 국제적인 헌법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세계 질서 속에 빨리 자리를 잡자는 게 헌재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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