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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지선다형, 부시냐 반부시냐

등록 2004-08-06 00:00 수정 2020-05-03 04:23

미 유권자들의 표심은 어디에… 변변찮은 정책대결, 오직 부시 지지와 혐오로 엇갈려

▣ 로스앤젤레스= 신복례 전문위원 boreshin@hanmail.net

민주당의 ‘미국에 대한 믿음’(Believe in America)이냐, 공화당의 ‘미국의 마음과 영혼’(Heart and soul of America)이냐.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을 향한 벼랑 혈투가 서막을 올렸다. 지난주 민주당은 보스턴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존 케리-존 에드워즈의 ‘존-존 커플’을 후보로 선정했다. 오는 8월30일 뉴욕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이 후보로 결정되면 11월2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건곤일척의 맞대결이 펼쳐지게 된다. 관전자들에게 이번 선거만큼 재미없는 싸움은 없을 것 같다. 인물도 변변찮고 무기도 신통찮다. 거창하게 내건 명분도 고리타분하기만 하다. 주인공인 유권자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도대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고 불평한다. 귀를 혹하게 하는 공약조차 없다.

‘안보’만이 문제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이번 대통령 선거만큼 중요한 선거는 없었다. 벌어질 대로 벌어진 빈부격차와 갈라질 대로 갈라진 국론으로 미국은 현재 중병을 앓고 있다. 다음 4년간 병이 깊어진다면 더 이상 치유할 길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결과에 따라 미국의 앞길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은 근심과 초조함으로 판세를 지켜보고 있다.

이번 선거전의 특징은 답이 나와 있는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다. 선거전의 테마는 이미 정해져 있다. 바로 ‘안보’다. 현재 미국은 9·11 이후 테러전쟁과 그에 이어진 이라크 전쟁의 와중에 있다. 애국심이 뼈 속에 박혀 있는 미국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또다시 9·11 같은 끔찍한 테러가 일어날 것이냐는 데 쏠려 있다. 더구나 이미 더러운 전쟁이 돼버린 이라크에서 수많은 자국 군인들이 희생되고 미국이 지구촌의 공적이 되면서 안보 불안감은 더욱 높아졌다.

선거전에서 안보 테마의 위력은 한국의 유권자들이 가장 잘 안다. 폭발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어떤 반대 주제도 먹히지 않는다. 목숨과 재산이 날아갈 위기감 앞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단 하나밖에 없다. 갖은 실정과 심각한 이라크 전쟁 후유증에도 부시가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이유는 미국의 심장 뉴욕을 강타한 9·11을 경험한 미국인들이 충격을 잊지 않은 덕분이다. 지난 1992년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에서 승리했음에도 시골뜨기 빌 클린턴에게 참패한 것과 지금은 분명히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도 미국 경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실업자들은 넘치고 각 지역을 지탱해온 전통 제조업체들은 망한 지 오래다. 경제지표들은 그럭저럭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바닥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빈부격차가 커져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가구 수가 전국적으로 300만 가구가 넘는다. 그러나 이런 경제 문제는 이번 선거전에서 2순위로 밀려났다. 전통적으로 미국을 떠받쳐온 중산층 유권자들은 수입보다 많은 고지서들을 손에 들고서도 ‘안보’를 더 실감나게 느끼고 있다.

케리 진영과 민주당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어차피 부시 진영의 선거전략은 ‘힘의 미국’을 앞세운 안보논리다. 미국 내에서도 ‘악당’으로 공인된 부시는 다른 전략은 고려도 않고 있다. 그에 차별화하려면 힘만 믿고 날뛰는 지도자가 아니라 든든하면서도 유능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케리 후보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고작 상원 외교안보위원회 경력뿐이다. 유권자들에게 안보를 믿고 맡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게 케리 진영의 최대 숙제다. 하지만 이라크전 파병안에 찬성한 업보가 계속 발목을 잡고 있다. 부시쪽의 ‘줏대 없는 기회주의자’ 비난이 상당 부분 먹혀들었다. 부동층 유권자들은 케리에게 안보를 맡겨도 좋은지 반신반의하고 있다.

지난 30일(한국시간) 케리 후보는 50분간의 수락 연설에서 그동안의 유약한 이미지와는 달리 단호하고도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연설 직후 비공식 여론조사에서 2%포인트의 상승 효과를 봤다. 그러나 효력은 아직 미지수다. 전당대회 다음날 전통적 민주당 지지인 는 1면 톱기사에 “케리 연설은 부동층을 흔들었으나 매혹시키지는 못했다”는 제목을 뽑았다.

지난 20일치 은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이 고소득층에 지극히 편중됐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1면 머리로 올렸다. 5월 둘째 주 도 ‘일하는 빈민층(Working Poor)’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부부는 물론 온 가족이 일을 하지만 대부분은 의료보험도 없고 자녀가 대학교육을 받을 기회도 갈수록 줄어든다는 게 요지다. 결국 빈민층들에겐 미래가 없는, 가난의 대물림이 불가피하다는 암시를 던졌다.

미국 언론 중 가장 보수적인 두 매체의 기사는 미국의 현주소를 잘 나타낸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는 사설에서 “선거전이 정책대결 양상을 넘어 화해될 수 없는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사설처럼 선거전의 표심은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시와 케리 후보는 46~48%의 고정표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같은 지지가 인물과 정책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부시 지지’와 ‘부시 혐오’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 부시의 기반인 중산층 이상 백인 유권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요지부동이다. 오로지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화당과 부시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동층 노린 네거티브 전략 득세

케리 지지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 외에 대다수 유권자는 ‘부시 반대자’들이다. 부시와 공화당 정권의 독선과 아집에 질린 사람들이다. 특히 4년 동안의 정책으로 고통받아온 저소득층과 소수계는 ‘부시가 싫어서’ 무조건 민주당에 표심을 내준 상태다.

이같은 경향은 선거전에서는 최악의 신호다. 결국 승패는 부동층이 가르기 때문에 이들을 자극하기 위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이후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주요 방송 전파를 타고 있는 부시쪽의 ‘케리 비난 광고’가 먹혀든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나오는 연사마다 부시를 강력하게 비난한 것도 같은 전략이다. 현재 부동층은 전체 유권자의 7% 정도로 추산된다. 750만명이 넘는다. 부시는 싫지만 케리도 미덥지 못하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국 민주당의 운명은 이들에게 달린 셈이다.

사실 느닷없이 대통령 후보가 된 케리 진영의 최대 고민은 아직 그를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2400만명이 지켜본 것으로 집계된 전당대회 후보 수락연설로 많이 알려진 게 그나마 다행이다. 바로 다음날부터 전국 21개 주 버스 투어에 나섰다. 강행군을 하면서 유세 바람몰이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어차피 부동층의 향배에 승패가 걸린 만큼 판세가 백중세인 지역을 가장 우선적으로 찾아다니며 파고든다는 계산이다.

케리 진영은 경제와 세금, 의료보장, 에너지 자급자족, 안보 등 4개 테마로 공약을 잡고 부동층을 공략할 계획이다. 하지만 공약은 두루뭉술하게 짜였다. 사실 내놓을 정책도 딱히 뚜렷한 게 없는 형편이다. 경제 회생에는 묘안이 없고 세금은 부시가 감세 법안으로 선점한 지 오래다. 그나마 저소득층 의료보장이 관심사지만 연방정부의 적자투성이 재정 상태로 획기적인 정책을 세운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 케리쪽은 라틴계를 사로잡을 이민법 개혁에 기대를 걸고 있다.

케리는 정답을 찍을 수 있을까

결국 정책보다는 이미지 싸움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어차피 현 판세라면 지난 4년 전 대선처럼 득표율엔 앞서고 선거에선 질 가능성이 높다. 골수 지지층을 확보한 부시 진영에 비해 케리 지지층은 결속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일단 케리쪽은 공격 전술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정권의 실정과 이라크전 실패를 물고 늘어져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네거티브 캠페인이다. 또 에드워즈 부통령 후보를 비롯해 힐러리 클린턴, 하워드 딘 등 인기 있는 당의 스타들을 총동원해 바람몰이를 할 계획이다. 하지만 케리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전쟁 상황에서 지나친 공격은 역풍을 맞을 공산이 크다. 또 경제든 의료보장이든 가슴에 와닿는 공약이 없이 부동층 유권자들이 표심을 내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케리 캠프는 더욱 수읽기가 복잡하다. 케리가 이미 나와 있는 모범답안 중에서 단 하나의 ‘정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번 미국 대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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