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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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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하고픈, 멋지게 노출하고픈!

등록 2004-07-15 00:00 수정 2020-05-03 04:23

자신의 정체성 확인하려는 미니홈피의 심리학… 연출적 특성 강화된 집단 블로그의 형태로 진화할것

▣ 황상민/ 연세대 교수 · 심리학 swhang@yonsei.ac.kr

사이버 세상에 개인 미디어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는 이전의 홈페이지와 여러 가지로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마치 집을 지을 때 기초부터 지붕의 페인트칠까지 혼자 다 하는 것과 같았다면, 개인 미디어는 누군가 제공한 영구 임대아파트 같은 공통의 건물에서 각자가 알아서 멋지게 실내 디자인을 하고 고치면서 사는 방식이다. 이렇다 보니 별다른 인터넷 홈피 건축 기술이 없어도 사이버 공간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미니홈피의 확산에는 단순히 건축의 편이성만 있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집에 다른 사람이 쉽게 찾아올 수 있을 뿐 아니라, 누군가 나를 찾아오고 본다는 것 때문에 나의 집 꾸미기가 더욱 의미를 갖게 된다는 현상이다. ‘일촌 맺기’를 통해 혼자만의 사이버 공간이 사회성과 공동체를 경험하는 생활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미니홈피에 반영된 인간관계의 심리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관심, 또 타인의 관심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심리는 바로 ‘나를 너에게 노출시킨다’이다. 여기에는 ‘너를 내가 알고 싶다’는 것도 포함된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특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인간은 타인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표현하며, 또 자신을 타인에게 멋있게 보여주고 싶어한다. 자아(self)라는 말이 ‘내가 보는 나의 모습’(I)과 ‘남이 보는 나의 모습’(Me)을 모두 의미하는 것과 같다. 개인 미디어는 이것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하는 경험

대한민국은 사이버 선진국답게 개인 미디어 열풍에서도 이미 선두주자이다. 세상을 자신과 친구와 함께하는 것이라는 정서 경험은 현실세계의 생활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사용자는 홈피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올리고 다른 방문자들이 올린 글의 답글을 단다. 또 다른 사용자는 미니홈피를 통해 자기 자신을 어필한다. 자신의 신변잡기를 풀어놓는 일기장이거나 디카를 이용한 온라인 사진첩처럼 활용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타인의 미니홈피를 찾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면 싸이폐인이 되는 건 시간 문제다.

뭔가 거창한 것이 없더라도 자신의 생활과 생각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미니홈피를 꾸미는 게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일종의 사이버 관음증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이버 이웃집 탐방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남이 어떻게 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민감한 한국 사람들의 심리가 여실히 반영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해석도 하게 된다. 하지만 미니홈피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이버 공간의 자기 표현과 만남이 현실과 분명히 구분되는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인간관계는 아니다.

형식적인 사회적 접촉이 아닌 자신과 개인적인 비밀을 나누는 사람들에 대한 상상의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간다. 즉,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드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타인과 공유하는 ‘이야기하기’(스토리텔링)의 경험이다. 여기에는 사진, 음악, 이모티콘, 동영상 등 다양한 요소가 첨가되기도 하지만, 이는 단순히 자기를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 타인의 생활에 대한 은밀한 탐색 활동으로도 표현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만들기와 이야기를 공유하는 경험은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보는 변신의 경험이기도 하다.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의 문제

근대 사회의 등장과 함께 현실은 항상 사람들에게 고정된 이미지와 역할을 강요했다. 남이 보는 나의 모습은 객관적 정체성이며,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은 주관적 정체성이다. 객관적 정체성은 남이 만든 이미지이자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이다. 하지만 주관적 정체성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바뀔 수 있는 마음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을 가진다. 주관적 정체성은 자신의 고유한 특성에 근거한 정체성이자 자기 반성(reflective thinking)에 근거한 정체성이다. 객관적 정체성은 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체성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청중의 존재가 필요하다. 정체성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심리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월드와 같은 미니홈피의 경험은 주관적 정체성과 객관적 정체성의 경계와 속성을 희미하게 만든다. 남이 보는 나의 모습을 내가 나름대로 통제하고 조절할 뿐 아니라 내가 만들어내는 나의 모습에 다른 사람을 초대하게 된 것이다. 그냥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나의 모습을 더욱 인정해주고 공유하는 사람만 찾아오게 만든다. 얼짱, 몸짱 현상에서 보듯이 모두가 서로의 관객이 되며, 모두가 서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가 된다.

전통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은 가족과 사회 집단의 경계를 통해 분명하게 정해졌다. 하지만 갈수록 집단 정체성이 해체되는 추세다. 대신 개인의 주관적 경험에 기초한 정체성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런 변화는 개인에게 더 큰 심리적 혼란을 일으키면서 사람들은 더욱더 자신만의 공간 속에서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만들려고 한다. 미니홈피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연결망은 개인이 가진 객관적 정체성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의 표현이다. 이제 정체성은 실제로 내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의 문제이다.

이런 모습은 미국에서 나타난 개인 블로그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왜 다른지를 설명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미국 사회 속의 개인이란 주관적인 정체성에 기초한 개인이다. 같이 살되, 각자의 개성을 발전시키고 유지한다는 미국 사회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생활 방식은 개인의 신변잡기와 일기에 불과한 미국형의 블로그로 표현된다. 하지만 한국형 토종 블로그라 할 수 있는 미니홈피는 같이 살면서도 따로 살고 싶은 한국 사회의 개인의 갈등과 불안의 표시이다.

개인 미디어 활동이 개인 정체성뿐 아니라 집단 정체성의 노출이라는 해석은 향후 미니홈피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예측하게 한다. 개인 미디어는 뉴스나 일상의 활동을 쉽게 웹에 포스팅하는 프로그램과 더불어 유사한 주제와 내용을 연결해주는 새로운 형태의 취미나 활동의 포털로 발전할 것이다. 이것은 겉으로는 다르게 보이지만, 내용만 같다면 서로 같이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젊은 세대의 생활 방식을 반영한다.

개인 미디어, 포털 블로그로 융합된다?

싸이월드는 이런 개인들의 자기 정체성 표현이 집단적 정체성으로 노출될 수 있었기에 개개인의 힘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 문화 현상으로 발전했다. 이는 개인 미디어가 유사한 내용과 주제를 중심으로 한 포털 블로그로 융합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중요 이유이다. 동시에 미니홈피를 통해 개인이 자신을 표현하는 정체성에는 점차 연출적 요소가 더욱 부각될 것이다. 올려지는 내용이 의미를 지니기 위해 이것을 꾸미려는 노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며, 이것은 개별적인 이미지로 또는 연출적인 능력으로 표현된다. 연출적인 특성이 강화되는 미니홈피는 결국 누구와 함께 그 내용을 공유하는가에 따라 새로운 성격을 갖게 된다. 마치 인류 역사에서 연극의 변화와 유사한 이야기의 내용과 관객과의 새로운 관계가 발전하는 것이다. 미니홈피의 성격과 활동이 어떻게 발전 진화할 것인가는 결국 집단 블로그의 형태로 나타나는 미니홈피를 개인이 얼마나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도록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공감되는 정도는 이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특성을 의미하며 또 다른 인터넷 비즈니스의 역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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