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반대 주장하느라 다른 참전단체와 껄끄러운 사이 된 월남참전전우회 황명철 회장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이라크 파병은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치적 관점이나 경제적 논리로 접근할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황명철(59) 회장이 속한 월남전참전전우회는 다른 참전단체와 달리 이라크 파병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이라크 파병은 결국 베트남전처럼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 이유다.
“전쟁을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정치인이나 정부 각료들은 파병을 쉽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파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자기 나라에 무장한 군인이 들어오는 걸 좋아할 국민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라크에 추가 파병될 자이툰 부대가 민간인 학살 시비에 휘말리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지금 게릴라전 양상입니다. 게릴라와 민간인은 구분이 잘 안 되기 때문에 민간인이 다칠 수 있습니다. 이라크 무장단체가 우리 군인을 죽였다고 했을 때 우리 군은 어떻게 대응하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면 이라크 민간인들이 다치게 되고, 결국 우리 군은 이라크인들의 미움을 받게 될 겁니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민간인 학살에 휘말린 것도 게릴라전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베트남에 참전했던 사람들은 몸도 망가지고 정신도 황폐해졌습니다. 지금도 정신적 충격과 생활고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어요. 심지어 자살하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이라크에 파병될 우리 후배들도 우리가 겪은 고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텐데 어떻게 파병에 찬성할 수 있겠습니까.”
황 회장은 김선일씨가 희생된 이후에도 파병을 강행하려는 정부와 정치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정치인들한테 묻고 싶습니다. 직접 전쟁에 참가해본 적이 있는지. 전쟁을 경험했다면 그렇게 쉽게 파병 얘기를 꺼낼 수 없을 겁니다.”
황 회장은 지난 1968년 3월∼1970년 4월 2년여 동안 베트남에서 정찰병으로 ‘근무’했다. 베트남에서는 상대방을 죽여야만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지옥 같은 상황이 매일 반복됐다. 이때의 경험은 그에게 평생 악몽으로 남아 있다. 그는 최근 일부에서 일고 있는 ‘테러응징론’을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같은 군사대국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테러 응징을 어떻게 한국군이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응징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테러 위협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보복은 보복을 낳고, 더 큰 희생을 치르게 할 뿐입니다.” “언론에서 국익이나 세계 평화를 얘기하는데, 사람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습니까. 전쟁 이후에 군인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자아 상실은 또 어떻게 치유할 겁니까. 정부는 파병을 결정하기에 앞서 이런 점들을 먼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황 회장은 파병 반대를 주장하느라 최근 다른 참전단체 회장들과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인간의 목숨을 지키는 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전도 1∼2년이면 끝날 거라고 했지만 8년이나 걸렸잖아요. 이라크도 마찬가지입니다. 3천명 파병으로 안 되면 6천명이 가야 하고, 또 안 되면 1만2천명을 추가 파병해야 하고, 이러다 보면 베트남전처럼 엄청난 피해를 볼 겁니다. 파병은 정말 재고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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