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위기관리 맡은 부서가 김선일씨 사태에 우왕좌왕…관련부처 팀워크 재정립해야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노무현 정부의 외교력, 정보력, 협상력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분단 이후 가장 수치스러운 외교 참사라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특히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한 가나무역 김선일씨의 살해 사건은 노무현 정부의 총체적인 위기관리 능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번 참사는 오랜 기간의 이라크 파병 준비과정에서 사전에 감지하고 빈틈없는 예방 조처를 취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어떤 거친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김씨가 5월31일 실종된 이후 살해되기까지의 정부 대응은 안이함과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전 예방’은 물론 ‘사후 대처’도 모두 엉망이었던 셈이다. 한국 정부가 이라크 추가 파병을 추진하면서 시민단체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라크 저항단체의 한국인 테러 표적 가능성을 여러 차례 경고했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인 납치 2건과 피격 1건이 발생한 바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그저 이라크 방문 자제를 권고하면서, 한국군 파병은 이라크 재건과 인도적 지원을 위한 만큼 별일 없을 거라고 주장해왔다.
위기관리센터 만들면 뭐하나
사실 이번 참사는 외교부 등 특정 부처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 교민 보기를 돌같이 하는 외교부 해외공관의 행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외교부의 안이한 대응이 문제를 키운 측면은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이번 사건은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조기에 해결했어야 할 ‘국가적 위기’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국가위기 관리 능력이라는 더 큰 틀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국가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놓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의 확대·재편이 이를 입증한다. 사무처에는 무려 78명이 근무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2003년 3월18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국정원·국방부·통일부·외교부로부터 전체 안보 상황에 대한 중요한 국가정보들을 접수받아 대응책을 마련하고, 각 부처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NSC를 확대, 강화했다”고 말했다. NSC는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세계화와 정보화의 진전, 국제 테러나 대량살상 무기 확산 등 새로운 위협과 안보 문제가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확대되는 안보환경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확대 재편됐다. 즉 NSC는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에 따라 사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테러리스트에 의한 김선일씨 납치 같은 미묘하고 복잡한 사건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라고 존재하는 셈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NSC 사령탑의 눈부신 활약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NSC가 제구실을 한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NSC는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평화번영과 국가안보’ 책자에서 밝히고 있듯이, 안보 관련 정보를 종합하고 정보처 체계를 관리하며, 특히 국가위기의 예방 관리 대책을 기획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NSC는 이런 과정을 통해 통일·외교·국방 등 분야별 안보 정책의 유기적 연계성을 높이고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과 위기대처 능력을 전개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노 대통령도 NSC 위기관리센터 개소식에서 “대통령과 정부의 주요 책무인 국가위기 관리 대상에는 ‘포괄안보’ 개념에 의해 전쟁 등 군사적 충돌뿐 아니라 대형 재난재해, 국가기능 마비 등 다양한 위기관리 유형들이 있다”며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예방과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전반적인 국가위기 관리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NSC는 정부는 각종 국가적 위협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 안보와 경제 안정을 확보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거들었다. 그러면서 증대되는 국가위기 관리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그동안 정부부처·기관이 산발적으로 운영해오던 위기관리 체계를 종합적으로 정비·개선해왔다고 밝혔다. 그래서 나온 게 NSC 사무처이고, 그 안에 ‘위기관리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번 김씨의 비극적인 죽음은 NSC 사무처의 이런 존재 의의를 무색케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NSC의 주장대로 그동안 정부 각 부처의 위기관리 업무의 미비점을 지속적으로 발굴·개선해 부처별 위기관리 능력을 향상시켜왔는데도, 어떻게 이번 사태와 같은 외교부나 국정원의 허술하고 무책임한 대응이 나올 수 있었는지 반문하고 있다.
대통령 웃음거리로 만든 상황 판단
NSC는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막강한 정보력을 보유하고 있다. NSC 사무처 안 정보관리실은 안보 관련 국가정보 능력의 개선과 정보의 종합·판단, 안보 관련 정보의 전파·공유 활성화 추진, 정세평가회의 운영, 안보 관련 정보의 수립·평가·공유에 관한 조사·연구 등을 수행한다. 국정원이 올리는 웬만한 고급 정보는 모두 여기를 거쳐서 대통령에게 올라간다. 이번 김씨 사건과 관련해서도 가장 많은 정보를 손에 쥐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노 대통령은 NSC 사무처를 거치지 않는 정보는 따로 보고받지 않겠다고 밝힌 터라 개별 부처 차원의 정보 독점은 상상하기 어렵다.
정부가 김씨 피살 직전까지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정황은 정보력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NSC 서훈 정보관리실장은 6월22일 열린 열린우리당 국방·통외통 분과 연속간담회에서 “김씨의 석방을 위해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최악의 경우 불행한 사태에 대비한 수습책도 준비하고 있다”며 정부의 보상 대책을 언급했다가 호된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는 일찌감치 김씨를 구할 자신이 없음을 내보인 것이며, 사망시의 엄청난 파장을 세심히 고려하지 못한 조처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또 NSC 사무처는 국가적 위기시 대통령이 정확하면서도 종합적인 상황 판단과 정책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1월 한 비공식 기자간담회에서 “NSC 보고서는 한순간도 놓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중요하다. NSC가 일정표를 관리해주는데, 이는 다른 부처 장관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신뢰감을 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그간 나온 노 대통령의 발언을 유추해보면 NSC 사무처가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했다고 보기 어려운 구석이 적지않다. 노 대통령은 22일 밤 10시 외교통상부를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최영진 외교통상부 차관은 이 자리에서 납치범들이 김씨의 억류 시한을 연장했다는 아랍어 위성방송 보도에 대해 “현지 공관에 알아보니 방향이 그쪽이라고 하더라”며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 보고를 들은 뒤 불과 2시간여 뒤에 김씨가 살해됐다는 완전히 다른 보고를 받았다. 외교부 등 관계부처의 잘못된 상황 판단이 대통령을 국제적인 웃음거리로 만든 셈이다. 대통령의 동선을 관리하는 NSC 사무처는 ‘사태의 유동성’을 감안해 대통령의 심야 외교부 방문을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한다.
책임자 몇명 교체해서 될 일 아니다
물론 이런 총체적인 무능을 NSC 사무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구조적으로 NSC 사무처의 부실은 외교부나 국정원 등 관련 부처의 무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NSC가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관련 부처가 얼마나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면서 NSC의 종합적인 판단과 정책 조율을 돕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노무현 정부 초기부터 존재해온 NSC 사무처와 관련 부처 사이의 불협화음, NSC에의 과도한 권한 집중 등을 최대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외교부나 국정원 개혁과 동시에 NSC의 인적 쇄신과 기능도 제대로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지금의 난맥상은 외교부나 국정원의 책임자 몇 사람을 교체해서 될 일은 아닌 듯싶다. NSC의 위상과 NSC-관련 부처 사이의 팀워크가 근본적으로 재정립돼야 또 다른 외교 참사를 피할 수 있다. 권한이 적절히 분산되어 각 주체가 경쟁적으로 국익을 위해 충성을 바치는 인적·물적 기반의 마련이 시급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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