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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발질’의 대행진이여…

등록 2004-06-10 00:00 수정 2020-05-03 04:23

코엘류 경질부터 메추 영입 무산까지 혼돈의 시간… 앞으로의 영입 작업은 순탄할 것인가

김창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kimck@hani.co.kr

지난 3월31일 몰디브전이 혼돈의 시작이었다.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이날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몰디브와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겼다. 의욕이나 투혼, 색깔도 찾아보기 힘든 이 경기를 지켜본 대한축구협회 수뇌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코엘류 감독의 지도력을 의심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 팀으로는 2006년 월드컵 16강 진출은커녕 아시아 지역예선 통과도 어려울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조중연 부회장이 “월드컵 4강까지 간 나라가 예선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슨 창피란 말인가”라며 칼을 빼들었고, 기술위원회 내부에서도 코엘류 감독 불신임 분위기가 물끓듯 했다. 한국과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같은 조에 편성된 레바논과 베트남이 최근 몰라볼 정도로 실력이 급성장한 것도 위기감을 부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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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후보 발표부터 불신 쌓여

압박에 밀린 코엘류 감독은 지난 4월19일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지 14개월만에 중도 하차했다. 그러나 그날부터 브뤼노 메추 새 감독 후보 영입이 완전히 무산된 6월6일까지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48일 동안 기술위원장이 두번씩 교체되는 등 협회 내부의 극심한 변동이 있었고, 사상 초유의 감독 후보 검증단이 구성돼 현지 면접까지 했지만, 대표팀 감독 자리는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다. 감독 영입을 위한 밑그림이 치밀하지 못했고, 공개와 비공개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는 행정의 미숙함이 일을 그르쳤다.

기술위원회가 지난 5월6일 10명의 외국인 감독 후보를 발표한 것부터 신뢰성을 잃게 만들었다. 기술위원회는 월드컵 16강 이상의 성적을 냈거나 대륙 선수권, 클럽 선수권 우승 경험을 선정 기준으로 10명의 후보를 공개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선수단 장악력, 성적, 세계축구 흐름에 대한 지식 및 정보 수집 능력을 기준으로 4명의 감독 후보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0명의 후보를 발표한 것은 사실상 후보를 발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무 많기 때문에 차별성이 없었다.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후보들을 나열한 것은 일종의 ‘전시행정’이었다. 애초 감독 후보 리스트를 감독 선임의 전권을 행사하는 기술위원회의 토론을 통해 거르지 않고, 국제국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것도 비판의 여지를 남겼다.

이런 논란 때문에 김진국, 조영증 두 기술위원장들이 불명예 퇴진을 했고, 5월12일 이회택 협회 부회장이 기술위원장에 지명됨으로써 감독 영입 작업은 가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프로축구 포항과 전남 감독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후배인 허정무 용인FC 총감독을 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등 기술위원회를 큰 폭으로 물갈이하면서 쇄신에 나선다. 시급한 대로 5월18일 기술위원회 회의에서는 대표팀 사령탑 선임을 위해 기존 기술위원회가 발표한 10명의 후보 가운데 브뤼노 메추 아랍에미리트연합 알 아인 감독, 루이스 필리페 스콜라리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마이클 매카시 잉글랜드 선덜랜드 감독, 셰놀 귀네슈 전 터키 대표팀 감독 등 4명을 최종 후보로 압축했다. 21일에는 이회택 기술위원장, 허정무 부위원장, 장원재 위원 3명으로 구성된 검증단이 출국하면서 대표팀 감독 공백을 줄이기 위한 행보에 탄력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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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추 감독 영입, 성급히 단정

검증단이 귀국한 5월28일 감독 후보로 메추 감독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실제 이틀 뒤인 30일 기술위원회 회의에서 메추 감독이 다른 세 후보를 제치고 한국대표팀 차기 사령탑 우선영입 후보로 공식 선정됐다. 그러나 이때부터 한국팀 사령탑 문제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여기에는 검증단의 판단 실수, 섣부른 후보자 발표, 기술위원회와 국제국의 엇박자, 메추 감독의 태도 돌변 등 복잡한 변수가 개입돼 있다.

메추 감독이 위기의 한국팀을 구할 최상의 선장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화려한 선수 경력은 없어도 아프리카 변방을 돌아다니며 실력을 쌓은 ‘잡초과’의 메추 감독은 2002 월드컵 때 세네갈 8강 돌풍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월드컵 직후에는 알 아인 감독으로 옮겨가 2003년 팀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초대 챔피언에 앉혔고, 2004 리그 우승 등 아랍에미리트 국내 리그를 평정했다. 메추 감독을 우선 영입대상 후보로 밝히는 자리에서 허정무 부위원장은 “메추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다. 돈보다는 대표팀 감독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해 한국에 올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했다. 메추 감독 또한 “내가 한국 사령탑이 된다면 그날로 한국으로 가 한국팀이 벌이는 경기를 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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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기술위원회의 이런 발표를 바탕으로 메추 감독이 한국에 온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모든 신문은 ‘메추 한국 온다’로 제목을 뽑았고, 메추 감독을 통해 바뀔 한국팀의 미래까지 성급하게 전망했다. 그러나 메추 감독의 반응은 의외로 싸늘했다. 소속팀 알 아인과의 계약관계가 엄연히 2006년까지 돼 있는데, 마치 계약이 된 것처럼 외신에 보도되면서 소속 구단과의 관계가 매우 껄끄러워졌기 때문이다. 국제국이 부랴부랴 지난 5월31일 감독 영입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밝힌 제안서를 정식으로 보낸 것도 사전에 계약에 관한 정지작업 없이 영입 후보를 서둘러 발표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로 얻은 것도 있다

메추 감독이 한국에 올 것이라는 확신이 더욱 흔들린 것은 이웃 카타르 클럽으로의 이적 움직임이었다. 한국 대표팀의 우선 영입대상으로 확정된 날 한국 기자들로부터 수십통의 전화를 받은 메추 감독으로서는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대표팀 감독 자리에 앉게 됐을 때의 스트레스를 지레 짐작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카타르의 클럽팀이 제시한 200만달러의 연봉이 귀에 솔깃하게 들렸을 법하다. 미리 단독 후보를 발표하면서 협상의 칼자루를 메추 감독한테 빼앗긴 축구협회는 메추 감독으로부터 수락 요청을 기다리다가 메추 감독에 대한 국내 축구팬들의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자 최후통첩의 카드를 뽑았다. 축구협회는 6월4일 “메추 감독한테 연봉 100만달러 이상은 줄 수 없다. 올 테면 오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겠다”고 발표했고, 결국 협상은 깨졌다.

메추 감독 영입 불발은 한국 축구에 큰 상처를 입혔다. 새 감독을 영입하지도 못한 채 오랜 시간을 허비했고, 메추 감독 한 사람에게 ‘올인’하는 바람에 차기 감독 선정도 어렵게 꼬였다. 허정무 부위원장은 “메추 감독을 믿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스콜라리 등 다른 감독 후보와도 끈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 큰 문제는 없다”고 말한다. 또 “앞으로 숨길 것은 숨기고, 밝힐 것은 밝히면서 일을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 영입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 축구인들은 거의 없다.

코엘류 감독 이후 격변을 겪고 있는 기술위원회가 이번 사태로 얻은 것도 있다. 검증단을 구성해 현지에서 후보를 직접 면접한 것은 자칫 외국인 감독 선임 작업에서 국제국에 의존하기 쉬운 관성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일처리라는 기술위원회의 운영 방침도 축구 발전을 위해 옳은 방향이다. 축구팬들은 기술위원회가 더 이상 실수 없이 한국 축구의 키를 잡을 유능한 감독을 선임해주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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