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 시민단체에서 다시 떠오르는 철회론… 정부 파병절차도 순조롭게 진행 안 돼
김성걸 기자/ 한겨레 정치부 skkim@hani.co.kr
미군의 이라크 포로 성학대 파문이 국내에도 미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파병 반대에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서고 있으며, 지난 총선 뒤 부쩍 늘어난 진보 성향쪽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17대 국회 개원 뒤 첫 의제로 다루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병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국방부는 겉으로는 동요를 나타내지 않지만, 여론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동의절차 미루는 쿠르드족
이라크 파병에 대한 여러 갈래의 움직임이 있지만, 그래도 먼저 눈여겨봐야 할 곳은 정부쪽이다. 지금까지 정부쪽의 공식적인 반응은 “이라크 추가파병은 미국에 대한 약속이지만, 세계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따라서 파병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세계 각국에 대해 신뢰성을 저버리는 행위다”라며 파병 원칙은 물론 파병 규모의 변경 불가를 반복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파병 절차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 자이툰 부대도 쉬지 않고 반복되는 훈련에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파병지로 유력하게 검토되는 북부 에르빌주가 ‘파병 동의서’와 공항 이용 범위 허가서, 공항 주둔 허용 동의서 등을 보내지 않자, 바그다드 연합합동동맹군 사령부(CJTF-7)에 요청해 미군 관계자를 현지로 급파했다. 정부가 에르빌주의 자치를 맡고 있는 쿠르드족에게 동의서와 허가서를 요구하는 것은 파병을 하되 운영의 묘를 살려 파병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즉, 이라크 북부지역은 치안상태가 양호한데다 현지 주민인 쿠르드족이 환영한다는 서약서를 받는다면 금상첨화 격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대로 쿠르드족은 3주째 동의 절차를 미루고 있어 정부 관계자들을 애태우고 있다. 에르빌 주정부가 협소한 공항을 대형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터키 민간기업과 공항 확장공사 계약을 추진하면서 공항 안에 대규모 한국군 주둔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오는 6월 중순에 파병하려던 계획은 이미 7월 초순 이후로 밀려져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라크 파병은 현지 사정이 복잡한데다 국내 사정도 만만치 않아 양쪽의 협공을 받는 형세”라며 “파병 원칙을 관철하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다”고 토로했다.
이라크 성학대 파문으로 국내 여론이 악화되자 정치권의 동향도 심상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물론 한나라당 의원까지 가세한 파병 재검토 의견은 갈수록 세를 더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법률안과 달리 국회가 통과시킨 동의안은 수정 절차가 없어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재검토 반대론자와의 사이에 공방이 확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천정배·이해찬 의원은 “파병 전면 재검토는 어렵지만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의원은 국제관계 현실에서 정부가 파병 원칙을 철회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므로 정치권이 나서서 그 부담을 떠안는 방안을 찾는 신중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 김문수·심재철 의원 등은 “대통령이 사정 변경을 사유로 수정동의안을 제출할 경우 17대 국회가 가부를 결정할 수 있다”며 파병 재검토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정부의 책임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당론으로 파병 철회를 결정한 터여서 개원 직후 아예 파병철회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파병철회 운동을 펼쳐온 시민단체들은 이제 행동 단계에 들어섰다. 참여연대 등은 오는 5월14일 파병 철회를 위한 촛불 집회에 나설 계획이다. 그리고 온라인상으로 이라크 파병철회 서명운동에 돌입해 17대 국회에 국민청원서를 제출한다는 복안이다. 참여연대는 “미군의 팔루자 학살과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모욕과 학대 등은 미국이 이라크의 인권이나 민주적 권리를 위해 주둔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 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뜨겁게 벌어졌던 이라크 파병 논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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