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출입 여기자가 그녀에게 ‘여성 대표성을 가진 정치적 리더’의 지위를 부여하기 힘든 이유
김소희 기자/ 한겨레 정치부 sohee@hani.co.kr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여성이다. 그것도 대한민국 최초의 원내1당 대표로 ‘파국’에 처했던 한나라당의 총선을 최일선에서 ‘극복한’ 여성 정치인이다.
박 대표가 총선 때 부여받은 임무는 실제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만신창이가 돼버린 한나라당의 당권을, 정확하게 말하면 총선용 당권을 남성들로부터 건네받아 ‘차떼기’와 ‘탈옥’으로 상징되는 부정적 이미지를 뒷설거지하고 탄핵 폭풍으로 흩어진 표를 그러모으는 것이었다.
만신창이 한나라당 구한 ‘브랜드 효과’
이를 위한 유일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당도 알고 박 대표 본인도 알았다.
그는 싸우지 않는 정치, 깨끗한 정치를 외치며 거리를 누볐다. 그러나 정작 그를 보러 몰려온 사람들은 ‘박정희와 육영수의 딸’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나라당의 새 리더를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득표로 연결됐다. 그는 대구·경북을 진앙지로 바람을 일으키며 바닥까지 추락했던 당 지지율을 끌어올려 주어진 임무를 성공리에 마쳤다. 박정희를 아버지로 둔 태생적 카리스마와 그 누구도 위협하지 않을 부드러운 이미지를 결합해서 최고의 브랜드 효과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여성 정치인’ 박근혜의 비극이 시작된다.
“지금 쓰러지면 안 되는데, 막판에 쓰러져야 표가 되는데….” 박 대표가 선거 초반에 지역 유세 강행군을 할 때, 한 한나라당 당직자가 ‘노골적으로’ 내뱉은 말이다. 잇따른 악수에 손독이 올라 붕대까지 감고 다닐 지경이 된 ‘마님’이 쓰러지면 백성들이 봉기라도 하기를 기대한 것일까. 선거 중반 경북 지역의 한 유세에서 사회자는 박 대표를 이렇게 소개했다. “외롭게 자란 박근혜 대표님이 오십니다. 체구도 작고 목소리도 가냘프지만 우리 후보를 도와주러 오셨습니다.” 이번에는 영락없는 ‘고아소녀’ 버전이다.
이쯤 되면 고귀한 향기를 풍기면서도 가냘프기까지 한, 수구적 남성 판타지에 철저히 복무하는 여성상이다. 한국 정치사 속에서 타고난 자질과 갈고닦은 능력과는 무관하게 ‘쌈닭’ 아니면 ‘무수리’라는 양극단에 줄세워졌던 수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감히 꿈도 못 꾸는 정치적 후광이기도 하다.
그는 여기서 대다수 여성 정치인들과 다른 유니크한 ‘정치적 덕목’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 시대 최고의 박정희 전문가답게, 박정희 향수를 직접 자극하지 않으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거두는 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것이다. 이는 오랜 절치부심 끝에 얻은 학습능력과 청와대에서 연마한 기초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결과 박 대표는 박정희라는 과거와 여성 정치라는 미래 속에서 외줄타기를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적 지분을 최대한 증폭시키는 효과를 거뒀다. ‘박정희의 딸’이 누리는 기득권을 정확히 읽어내 표로 지켜낸 것이다.
그러나 정작 박 대표가 놓친 것이 있다. 최고 정점을 향해 치닫는 게 정치의 속성이라면, 한국 정치의 주류는 백성들의 악수 세례로 손독이 오르는 ‘고귀한 별당 아씨’나 ‘고아소녀’에게 절대로 권력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내 옆의 사람’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한나라당을 살리는 일이 나라를 살리는 일이라고 믿는 그의 “속죄하는 마음으로 거듭나겠다.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호소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노회한 여느 정치인들과는 달리 비교적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또 사심을 갖고 권력다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직’과 ‘진심’에 파묻혀, 자신에게 한시적으로 총선용 지휘봉이 주어졌다는 냉혹한 사실을 잊은 것 같다.
그는 이번 총선 때 가장 바빴으나 가장 밀려나 있었다. 비례대표 후보 선정에서부터 총선 공약 개발까지 어느 것에도 자신의 ‘입김’을 발휘하지 못했다.
선거 막바지인 4월11일 그가 상위권 여성 비례대표 후보들을 옆에 세워두고 여성정책 공약을 발표할 때였다. 그는 자신이 공동으로 대표발의하고 대표 취임 뒤 총선 공약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던 호주제 폐지 공약을 끝내 밀어붙이지 못했다. 그는 “(호주제 폐지라는) 내 입장에는 변화가 없으나, 당내 논의를 거쳐 (총선 뒤에는) 그렇게 되도록 하겠다”고만 말했다. 지지층의 분산이나 내부 논의 부족이라는 ‘뻔한’ 정치적 수사조차 달지 않는 이런 태도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자세라고 평가해야 할까?
총선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없는 정책도 쏟아지는 판국에, 전국의 모든 후보들이 단 한번만 자기 지역을 방문해달라며 애걸복걸하는 마당에, 당내 최고 실권을 쥐고 있는 박 대표 자신이 안 하면 대체 누가 해줄 것인가. 박 대표는 멀쩡한 당사를 놔두고 천막으로 옮기는 ‘새마을 운동식’ 뚝심은 있어도 자신의 소신을 ‘합리적 논의를 거쳐’ 공약화할 용단은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박 대표가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겠다며 한나라당을 뛰쳐나갔을 때 단 한명의 의원이나 당직자도 끌고 나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패거리 정치의 미덕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당장 ‘내 옆의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하는 답답함 때문이다.
그는 불행히도 박정희의 프레임 안에서 고도의 정치기술을 보였을 뿐, 그 프레임을 벗어나서는 정치력과 리더십을 보여준 적이 없다. 나는 그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나섰을 때, 대한민국 선거운동 역사에서 단 한번도 여성이 특정 정치세력을 대표해 집중 조명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되새겼다. 그가 받는 조명은 여성 리더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 정치에서 여성 정치의 교본을 골백번 외우게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산체험’이다. 박 대표 자신에게도 쉽게 오지 않는 정치적 성장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쉽게 타협했다.
박 대표는 사석에서 “총선 뒤 당권에는 관심이 없고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오로지 한나라당을 살려야겠다는 각오 속에 굳은 결심을 하고 나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다는 뜻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의 ‘정직한’ 습관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총선 뒤 그 숙제를 한꺼번에 풀어야 할 수도
한나라당을 출입하는 여자 기자로서 그가 고뇌하고 노력한 것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했음에도, 나는 그에게 한국 정치를 한 단계 성숙시킬 ‘여성 대표성을 가진 정치적 리더’의 지위를 부여하는 데 망설이게 된다. 그는 박정희의 정치를 했을 뿐, 박근혜 자신의 정치를 하지 않았다. 박 대표는 아마 총선 뒤 그 밀린 시험을 한꺼번에 치러야 할 것이다. 성적은 장담하기 어렵다. 이는 여성계의 오랜 투쟁으로 비례대표 절반을 할당받은 영입 여성의원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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