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 폭력의 제1 피해자는 조선학교 여학생들… 중급학교 여학생 48.3%가 피해 경험
얼마 전 오사카에서 있었던 일이다. 재일동포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 사이에 축구시합이 열렸다. 재일동포 학생들의 승리가 굳혀지는 듯하자 일본쪽 응원석에서 한꺼번에 함성이 들렸다. “납치, 납치, 납치.”
‘한도징’ ‘조센징’ 용어도 되살아나
재일동포 학생들이 얼마나 주눅이 들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법하다.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 사회의 공격이 문제될 때마다 가장 먼저 표적이 되는 것은 학생들이다. 학생들 가운데서도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니는 조선학교 여학생들이 공격의 제1대상이 돼왔다. 이번에도 이같은 역사는 되풀이되었다.

지난해 9월17일 평양회담 이후 등교 중이던 도쿄 북구 주조에 있는 조선 중·고급학교 고급부(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의 치마가 칼로 찢긴 이후 연일 일어난 조선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한 폭언·폭행 사건(일본말로 ‘이아가라세’로 부름)은 이 학교에만도 3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멈춰 있는 전철에서 학생을 밀어 넘어뜨린 사례도 보고됐다.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폭언·폭행 사건이 계속되는 가운데 오사카에 위치한 재일조선인인권협의회 긴키지방본부는 9·17 이후 8개월 동안 오사카 소재 조선학교 12곳에 다니는 학생 1768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 학생 가운데 23.5%에 이르는 416명의 학생이 일본인들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피해자들 가운데 특히 중급학교(중학교) 여학생들의 비율은 48.3%로 나타났다. 두명 가운데 한명은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 경험을 갖고 있는 것이다.
8월9일 오사카 시내에 위치한 히가시오사카 조선중급학교를 찾았을 때 학생들은 여름방학 중의 소조활동을 하고 있었다. 무용부, 민족기악부, 축구부 등으로 나뉜 남·녀 학생들이 더운 날씨에도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한 부영욱 교장은 “한마디로 비상사태”라고 말했다. “이전에 조국과 일본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1년 가까이 계속되는 경우는 없었다. 일본인들이 쓰는 용어도 ‘한도징’(반도놈)이라거나 ‘조센징’(조선놈)처럼 일제시대 때 우리 민족을 비하해 부르는 용어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학교의 경우 자체 조사 결과 전체 학생 432명 가운데 9·17 이후 폭언·폭행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모두 14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역시 남학생보다는 여학생, 고학년보다는 저학년에 피해자가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폭언으로는 “너희들도 납치해가겠다”거나 “조선학교, 죽어라”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욕이 가장 일반적이다. 폭행의 유형도 다양해서 미행을 당하거나 걷어차이거나 맞거나 밀쳐지거나 일본인이 뱉는 침을 맞는 등으로 조사됐다. 주목할 점은 일본인 가해자의 76.3%가 10대인 중·고등학생들로 나타났다. 또 가해자가 3명 이상의 집단인 경우가 남학생은 66.6%, 여학생은 50.0%로 무척 높게 나타난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치마저고리’를 입지 못하게 했지만…

일부 일본인들은 사고 예방을 위해 치마저고리를 입지 않고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에게 다가가 “너희들이 치마저고리 안 입어도 우리는 안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학교 학생들이 입는 운동복은 바지에 우리말 이름을 새겨넣기 때문에 티가 나 치마저고리가 아니라도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휴식시간에 만난 3학년 여학생들은 말을 아꼈다. 의 배용준과 의 조인성을 안다는 김리향(15·무용부)양은 학교에서 치마저고리를 입지 못하게 했지만 3학년 학생들은 며칠 만에 다시 입었다면서 그 이유를 털어놨다. “1·2학년 동무들은 다른 교복을 입었지만 우리들까지 그걸 입으면 우리 학교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 문제(납치 문제)와 우리가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니는 것이 별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서 치마저고리를 계속 입고 다녔다”고 털어놨다. 리유이(15·민족기악부)양은 최근의 일본 사회 분위기에 대해 “무섭기도 하지만 화가 난다”고 말했다. 8월7일 오후 니가타현에서 방학 중 소조활동을 하던 중 만난 조선학교 학생들도 “화가 난다”는 말을 거듭했었다. 간단한 표현 속에는 억울한 감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현재 총련이 운영하는 조선학교는 일본 전국에 120개 안팎이며 학생 수는 1만7천여명에 이른다. 이에 비해 민단쪽 한국학교는 도쿄와 오사카, 교토 3곳에 4군데뿐이다. 그나마 40% 안팎의 학생들은 한국에서 몇년 동안 일본으로 건너가 근무하는 직장인과 외교관의 자녀들이다.
이 때문에 재일동포 자녀들에 대한 우리말과 우리역사 등의 민족교육은 전적으로 조선학교에 기대온 게 사실이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재일동포의 민족교육에 관심을 두고 조선학교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해왔다. 최근에는 총련과 조선학교 커리큐럼의 변화 등으로 조선학교 학생의 30% 안팎은 한국 국적을 지녔거나 일본 국적을 지닌 동포 자녀들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학교와 한국학교는 아직까지 일본 국내법상 ‘각종학교’로 분류된다. 최근 일본 문부과학성은 외국인학교 중에서도 조선학교 출신 학생 개개인의 국립대학 입학시험 자격 여부를 각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고 결정했다. 노골적인 차별인 것이다.
“더러운 것들!!”
“안네 프랑크의 책을 가진 선생님에게 달려가서 ‘보여주세요’ 하고 말했더니 ‘더럽다’고 했다. 순간 ‘보기 좋은 옷은 아니지만 목욕은 항상 하는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뜻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치에 의해 박해받은 유대인 소녀에게는 동정과 관심이 가지만 조선인은 더럽다고 말하는, 예전에 독일 동맹국이던 일본이라는 나라 교사들의 모습이 정말 이상해보였다.” 한 재일동포 작가의 자기고백은 조국에서 일으킨 ‘국가범죄’가 재일동포 학생들에게 어떤 상처를 줄지 상상하게 해준다.
야만적 일본 사회의 국가주의적 폭력 앞에 고스란히 놓여 있는 조선학교 학생들이야말로 움직일 때마다 비늘이 벗겨지고 피가 흐르는,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한 재일동포 3세 작가의 책제목)인지도 모른다.
니가타·오사카=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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