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 변론 맡았던 김형태 변호사 기고… 누가 감히 ‘해피앤드’를 말하나

“이런 엉터리 재판으로 억울하게 죽느니 차라리 외국으로 도망가라.” 5년 전 나는 잠시 변호사의 본분을 잊고 이도행에게 도주를 권유했다. 대법원이 고등법원의 무죄판결을 뒤집었을 때다. 너무 당연히 무죄가 확정될 것을 기대한 나는 현실의 불합리·부조리를 견딜 수 없었다. 살인의 증거 없어 무죄인 것을 넘어서서 범인이 아님을 적극적으로 충분히 입증했다고 믿은 터였다.
‘감’으로 수사를 진행한 경찰
그때 이도행은 나에게 이랬다. “국가가 나더러 죽으라면 죽겠어요. 도망은 안 가요.” 이 말을 하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더 이상 할말을 잃고 같이 눈물을 흘릴밖에.
8년의 지루한 재판이 ‘해피엔드’로 끝났다. 이 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여겨지는 영화 는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는 처를 죽이고도 수사망을 벗어나 어린 딸에게 우유를 먹이는 해피엔드로 끝난다.
이도행도 사형과 무죄 사이를 오가다 결국 무죄로 끝났으니 해피엔드일까.

1995년 6월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 보도를 기억한다. 처와 딸을 치과용 치실로 목졸라 죽이고 욕조에 담근 뒤 불을 지르고 치실 등은 쓰레기장에 버렸다는 엽기적 내용이었다. 저런 잔인한 인간이 다 있나, 그때 나도 그랬다. 8년이 지나 법원이 세번씩 무죄를 선고해도 연합뉴스 초판에 뜬 제목은 ‘한국판 오제이 심슨’ 운운이었다. 백인 아내를 죽인 흑인 심슨이 수억원의 돈으로 법기술자들을 사서 무죄를 받았다. 그럼 이도행은 여전히 범인이 맞다 나도, 법원도 법기술자 수만쪽 분량의 재판기록, 공부 열심히 한 외국 법의학자들, 화재전문가들의 노력은
이도행이 무죄를 받았어도 그가 겪은 지난 8년의 고초는 보상될 길이 없다. 진범이 잡히지 않는 한 그는 평생 범인의 의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처도 죽고 돌배기 딸도 죽고 의사로 첫 출발하던 날 사건이 터졌으니 그의 삶은 이미 사형집행을 당한 것과 진배없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첫째는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이다.
이 사건에는 목격자도 범행수단도 지문도 혈흔이나 정액도 직접증거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도행이 출근한 아침 7시 이전에 죽었으면 남편이 범인, 그 이후면 제3자. 초동수사를 맡은 경찰은 ‘감’으로 수사를 했다.
수사단계에서의 잘못된 법의학적 견해

사람이 죽었을 때 시신이 굳는 정도, 시신 아래쪽에 생기는 검붉은 반점, 위에 남아 있는 음식물을 보고 대략 언제쯤 죽었느냐를 살피는 법의학적 사망시각 추정과 현장의 화재가 언제 일어난 것인지.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은 경찰이 아닌 법의학자·화재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경찰은 이렇게 물어야 했다. “화재가 몇시에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지.” 경찰은 이리 물었다. “7시 이전에 발화할 가능성이 있는가” 1%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그렇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답변이 실제 그랬다. “7시 이전에 발화될 가능성도 있음.” 그렇다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고, 실제로 감정인은 법정에서 “그것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고 그런 질문이 없었다면 발화시간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답했다. 두 번째 고등법원심리에서 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모의화재 실험결과 법원은 “08:30~08:40께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피고인이 출근하기 전에 발생했다기보다는 그 이후 제3자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봄이 더 합리적”이라 결론을 맺었다.
법의학자들에 대한 질문 역시 그랬다.
사체가 더운물에 담겨 있었으므로 이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수집하고 사망시각 추정의 기본인 직장 내 온도측정을 해야 함에도 이것 없이 오히려 남편이 범인인 듯한 정황들만 제시해 선입견을 가진 상태에서 감정을 했다.
저명한 외국의 법의학자들은 이 사건 수사단계에서의 잘못된 법의학적 견해는 법원을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어갔다고 평했다.

둘째는 국내의 열악한 법의학적 체계가 문제다.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적은 수에 초동수사 과정에서 권한이 별로 없다. 외국의 경우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현장을 장악하고 과학적 판단의 기초정보들을 채취하는 권한이 법의학자들에게 주어져 있다. 우리의 경우 조금 과장하면 법의학은 ‘베테랑’ 형사, 검사가 현장에서 ‘감’으로 내린 결론에 맞도록 합리화해주는 역할 정도다. 실정이 이러니 처우도 낮고 지원자도 적다. 고작 몇명 수준에 지나지 않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일본 수준 정도로 맞추려면 100여명 이상의 법의학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이런 상태에서 높은 수준의 연구나 감정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제2, 제3의 이도행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은 뻔하다.
검사에게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말들
셋째는 인권옹호의 책무를 진 검사의 잘못을 들고 싶다.
검사는 상고이유에서 이렇게 적었다. “법원이 감정결과에 이르게 된 논리적·과학적 추론과정을 모두 이해해야 합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검사의 입장에서도 전문지식이 부족해 일일이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이 있습니다.”
모르면 감정인들에게 배워가며 그들의 추론과정이 맞는지 검증해야 할 검사에게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일일이 무슨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그 결과를 가지고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
이도행은 언론의 선정적 보도, 초동수사의 실패, 검찰의 편견과 억지, 권한도 정보도 부족한 법의학계에 의해 이미 사형을 집행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처자를 죽인 범인을 놓치고 오히려 자신이 8년의 세월을 사형대 올가미에 반쯤 목을 걸치고 살았고, 앞으로도 ‘증거 없어 무죄인 O. J. 심슨’의 의혹을 떨치기 어려우니 우리의 지난 8년의 결말은 결코 ‘해피엔드’가 못 된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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