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평화상·신한국인상·신지식인상 ‘실패한 정부주도 운동’으로… 훈장도 쓸데없이 많아

서울평화상, 자랑스런 신한국인상, 신지식인상….
현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권은 지배적인 국정철학을 국민들에게 전파하는 수단으로 저마다 다른 상을 제정해왔다. 정권이 내세우는 국정지표에 걸맞은 수상자들을 발굴, 표창함으로써 국민들의 행동 규범으로 삼겠다는 일종의 국민 계몽전략이다. 상이 갖는 동원 메커니즘, 즉 국민들을 동원하는 도구로 상을 활용해온 셈이다. 이렇게 상을 주고받는 관계에는 ‘치하’와 ‘복종’이라는 권위주의적 사고가 깃들어 있다. 과연 국가권력이 제정한 상들은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는가.
지난해 신지식인상 수상자 2천여명
김대중 정부가 제정한 신지식인상은 9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공모전으로 바꿔 시·도·군·구마다 뽑아 시상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별로 모범사례를 공모해 시상한 뒤 중앙으로 추천해 올려보내면 제2건국추진중앙위원회에서 심사해 표창을 하는 식이다. 제2건국추진위원회는 “신지식인상을 광범한 사회적 분위기로 확산시키기 위해 공모전을 실시하고 있다”며 “어떤 기관에서 어느 정도 숫자의 신지식인상을 수여하고 있는지는 헤아릴 수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신지식인상은 5인 이상 사업장이면 어디서든 선정해 시상할 수 있다. 지난해 공모전을 통해 신지식인상을 받은 사람은 대통령이 표창한 신지식인상 6명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2천여명에 이른다.
정부의 신지식인 확산정책으로 신지식인상 시상은 기업체로도 퍼져나가고 있다. 삼성전기는 지식을 공유하고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한 사원을 포상하는 신지식인상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삼성전기가 5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신지식인상(像)의 핵심은 자신이 가진 지식과 노하우를 남들과 공유하는 사람이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기업에서 요구하는 신지식인이 과연 뭔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상을 만들어 분기마다 13명씩 한해 54명을 뽑아 시상하고 있다”며 “상금으로 나가는 것만 연간 5700만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신지식인 열기는, 그런 정부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국민들 사이에 갈수록 잠잠해지고 있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 최은숙 간사는 “지금 신지식인운동은 한때의 거품으로 그치고 마는 쪽으로 가고 있다”며 “현 정부의 신지식인운동은 우리 사회에 별 효과도 미치지 못한 채 실패한 정부주도 운동으로 끝나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서울평화상, 노태우 정부의 허세

현재의 신지식인운동과 닮은, 김영삼 정부 때의 국가제정상은 ‘자랑스런 신한국인상’이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해마다 그해의 자랑스런 신한국인상 수상자를 청와대로 불러 시상했다. 김영삼 정부가 내건 신한국인상(像)은 “구시대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 낡은 의식을 과감히 고쳐 신한국창조에 앞장서는 사람”이었다. 이른바 ‘한국병’으로 불리던 낡은 제도와 관행을 치유하는 데 노력해온 사람을 뽑아 청와대에서 직접 상을 주고 노고를 치하한 셈이다. 신한국인상이, 이를 본받아 모든 국민이 ‘자랑스러운 신한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 그때 일깨우는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세계적인 고봉을 등정한 11살 초등학생부터 벤처기업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올해의 자랑스런 신한국인상에 선정되곤 했다. 한신대 김종엽 교수(사회학)는 “국가권력이 상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파급시키려 해도 전파력이 있는 게 있고 안 그런 게 있다”며 “신지식인상이나 자랑스런 신한국인상이나 국민들은 냉소적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며 결국 상을 타는 사람의 가족잔치로 끝난, 성공하지 못한 기획에 속한다”고 비판했다.
노태우 정부 때 88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제정된 서울평화상은 여전히 존폐시비에 휘말리는 등 뒤탈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이다. 서울평화상재단 최원식 과장은 “서울평화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현재처럼 격년이 아니라 매년 시상하는 때가 오면 확실히 뿌리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서울평화상의 권위가 떨어진 것은 애초 30만달러였던 서울평화상 상금이 더 오르기는커녕 거꾸로 20만달러로 낮아진 탓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물론 상금문제는 아니다.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인도 네루상은 상금이 10만달러, 필리핀 막사이사이상은 1만달러에 불과하다.
서울평화상 심사는 서울평화재단이 내국인 300명과 외국인 700명 등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되는 1천명의 추천인단을 구성한 뒤 이들에게 수상후보 추천을 요청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20만달러에 달하는 상금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탓일까. 정작 추천의뢰 회신을 보내오는 건 1천여명 중 80여명에 그친다. 92년 2회째는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선정됐으나 불발로 그치고 그 대타로 슐츠 전 미 국무부 장관이 수상했지만 뒷말이 많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방미 및 북방외교를 하면서 신세를 많이 진 슐츠에게 보답으로 서울평화상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서울평화상재단 관계자는 “심사위원을 외부 영향력 없이 구성해야 좋은 사람을 수상자로 선정할 수 있다”며 “서울평화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결국 서울평화상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채 엄청난 상금으로 외화만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노벨상에 버금가는 상을 제정하겠다는 애초 노태우 정부의 취지가 얼마 지나지 않아 분수에 맞지 않는 허세였던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그래서 지난 98년에는 서울평화상을 폐지하고 대신 평화상 재원인 국민체육진흥공단기금 100억원을 실업대책에 사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기도 했다.
국민적 공감 없이는 우스운 꼴 된다

정권에 따라 제정되는 상 외에 국가가 법으로 제정한 제도화된 상으로는 정부포상이 있다. 정부포상은 정부서훈(훈장 및 포장)과 정부표창(대통령, 국무총리, 중앙행정기관장 및 각급 기관장 표창)으로 나뉜다. 서열은 훈장이 가장 높고 포장, 표창 순이다. 훈·포장은 무궁화대훈장, 건국훈·포장, 국민훈·포장, 무공훈·포장, 근정훈·포장, 보국훈·포장, 예비군포장, 수교훈·포장, 산업훈·포장, 새마을훈·포장, 문화훈·포장, 체육훈·포장, 과학기술훈·포장 등 12가지로 공적 내용에 따라 각기 5등급으로 나뉜다. 지난해 수여된 훈·포장은 1만9천여명, 대통령 및 국무총리표창은 1만2천여명으로 모두 3만1천여명에게 포상이 수여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훈장이 많은 나라도 별로 없다. 프랑스는 ‘영광의 군단’이란 뜻을 가진 레지옹 도뇌르훈장 한 가지만 있고, 브라질처럼 자국민에게 주는 훈장이 아예 없는 나라도 있다.
훈·포장의 권위는, 많은 상이 그렇듯, 상 자체가 지닌 권력으로부터 나온다. 이는 “국가가 주는 훈장은 탈 수 있을 뿐 되돌려줄 수는 없다”는 말로 대표된다. 지난 99년 경기도 화성 씨랜드수련원 화재참사 때 아들을 잃은 전 국가대표 하키선수 김순덕씨가 국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훈장반납으로 터뜨렸지만 정부는 반납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행정자치부 상훈과는 “김씨의 훈장은 언제든 다시 가져갈 수 있도록 우리가 보존하고 있을 뿐 반납된 것은 아니다”며 “국무회의 및 대통령재가를 받아 주는 훈장은 반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상훈법은 국경일, 시무식, 종무식, 입학·졸업식 등 공식행사 때 반드시 훈·포장을 패용하도록 의무화해 훈장의 권위를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상이란 주는 쪽의 권위와 받는 사람의 명예가 어우러져야 그 가치가 인정된다. 지난 96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이효재(77·전 이화여대 교수)씨는 정부가 여성지위향상 유공자에게 주기로 한 국민훈장 석류장을 사양했다. 이씨는 당시 “이번 포상자 중에 전두환씨를 위대한 지도자로, 5공의 대통령으로 추대했던 5공 세력의 대표적 여성인물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고귀한 국민훈장의 명예와 권위를 실추시키는 무원칙한 선정으로 생각된다”고 수상거부 이유를 밝혔다. 지난 96년에는 월간 발행인이었던 고 장준하씨와 지난해 작고한 소설가 황순원씨에게 정부가 은관문화훈장을 주려다 장씨 유족과 황씨 본인의 수상거부를 불러오기도 했다. 역대 정권이 제정한 상이든 법에 정해진 정부포상이든 ‘국민적 공감과 동의 부재’에서는 권가권력이 주는 상의 권위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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