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할부원금·자급제폰(언락폰)·알뜰폰을 모른다면(궁금하면, 기사 정독을!)
② 한 달 음성통화 시간, 데이터 사용량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다거나
③ 휴대전화 매장 직원이 속사포처럼 내뱉는 어려운 단어에 위축된다면
당신은, 혹시 호갱님?
‘호구’와 ‘고객님’을 합친 말인 ‘호갱님’은 어수룩해 속이기 쉬운 손님을 뜻한다. 설 연휴였던 2월11일, 전국 삼성디지털플라자 매장에서는 KT로 번호이동하는 소비자에게 갤럭시 S3 16GB 모델을 18만4천원(출고가 약 99만원)에 팔았다. 휴대전화 관련 정보가 활발히 공유되는 인터넷 커뮤니티 뽐뿌(ppomppu.co.kr) 등을 들썩거리게 했던 일명 ‘디플 대란’. 이런 소식이 뒤늦게 알려질 때마다 수많은 호갱이들은 가슴을 쳐야 했다. 보조금 과다 지급을 이유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LG유플러스·SK텔레콤·KT는 1월7일부터 3월13일까지 차례대로 20일 안팎의 기간 동안 신규가입이나 번호이동을 통한 가입자 유치를 하지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 각 업체들은 가입자를 뺏거나, 뺏기지 않으려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소비자 몸값은 올라가야 하거늘, 너도나도 ‘나는 호갱이었다’는 한탄이 끊이지 않는다. 휴대전화 판매와 이동통신사 서비스가 어지럽게 결합된 유통 구조에서 요금제 등 서비스 이용 조건을 소비자가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어려운 상황이다. 모르면 속고, 알고도 속는다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손해를 덜 보려면 결국 열심히 정보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우선, 매장마다 휴대전화 판매 가격이 들쭉날쭉인 까닭부터 짚어보자.
이름을 밝히기 꺼린 휴대전화 판매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통사들은 제조업체에서 휴대전화를 출고가보다 싸게 대량으로 구입해 지역 영업본부→대리점→판매점으로 유통시킨다. 특정 이통사와 계약을 맺고 휴대전화 개통 업무 등을 수행하는 대리점은 보통 개통 실적에 따른 수수료를 수익원으로 삼는다. 판매점은 대리점에서 휴대전화를 공급받아 위탁판매를 하는 자영업자로, 이통 3사의 휴대전화를 모두 취급한다. 판매점의 수익은 각 휴대전화에 책정된 판매장려금(리베이트)에서 영업비용을 뺀 금액이다.
이통사가 100만원짜리 A휴대전화를 번호이동·24개월 약정·LTE 62 이상 요금제 가입 등 세부적인 조건에 맞춰 팔면 최대 70만원의 판매장려금을 준다는 정책을 세웠다고 가정하자. 판매점에 온 소비자가 A휴대전화를 출고가 그대로인 100만원에 사고, 가입비나 유심비도 본인이 다 내기로 한다면 판매장려금 70만원은 고스란히 판매점 이윤이 된다. 반대로, 판매장려금 70만원을 소비자에게 지원하면 A휴대전화 가격은 30만원이 되지만 이윤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판매자마다 판매장려금을 쓰는 폭이나 운용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매장마다 휴대전화 가격이나 가입 조건이 달라지는 것이다.
호남 지역의 한 판매점주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고 오는 소비자는 정책이 좋을 때(판매보조금이 많이 나올 때) 대폭 낮아진 휴대전화 가격으로 팔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유치하려면 이윤이 거의 남지 않더라도 판매장려금을 많이 쓰게 된다. 판매점이 늘어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통신요금 구조를 잘 모르는 소비자가 오면 우리도 이윤을 내야 하니 판매장려금을 안 쓰려 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판매장려금은 대개 이통사 보조금과 해당 제조업체에서 내는 돈으로 조성된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2008~2010년 이통 3사와 제조 3사가 서로 짜고 44개 휴대전화 모델에 대해 실제 공급받은 가격보다 출고가를 평균 22만5천원 부풀렸으며, 그 차액으로 마치 소비자에게 보조금 혜택을 주는 것처럼 악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판매장려금은 시장 상황에 따라 자주 변한다. 최근엔 방통위의 보조금 단속(상한 27만원)이 뜬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정책’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렇게 정책이 바뀌면 휴대전화 가격도 출렁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모두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에서 휴대전화를 사는 게 더 싸다고 입을 모은다. 이통 3사는 사외 경쟁 외에 사내에서의 실적 경쟁도 치열하다. 목표한 실적을 내야 하는 월말 즈음에 저렴한 휴대전화를 인터넷 등을 통해 ‘반짝’ 판매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font size="3"><font color="#1153A4">호갱 탈출 초보</font> 약정하면 요금 할인해주는 거거든</font>현재 다수의 소비자가 이용하는 스마트폰·LTE폰의 요금 구조는 단말기 할부, 약정 계약과 맞물려 돌아간다. 최신형 단말기를 싸게 사고 싶어 하는 소비자의 욕구와 가입자를 오래 잡아두려는 이통사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24개월이나 12개월 등 일정 기간 가입 유지를 약속하면 요금제에 따라 매월 일정한 금액을 할인해준다. 기본료가 비싼 요금제가 더 많은 할인을 받는다. 만약 매월 부담하는 단말기 할부금과 약정 계약으로 인해 매달 제공받는 할인 요금이 비슷하면 휴대전화 가격을 따로 내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를 이용해 어떤 요금제만 쓰면 휴대전화가 공짜라는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약정 계약에 따른 요금 할인을 해주는 것이지 따로 휴대전화 가격을 지원해주는 게 아니다. 이 경우 비싼 휴대전화 가격을 긴 기간 할부로 지불하는 셈이다. 그래서 휴대전화가 ‘무료’라는 말을 믿기보다 휴대전화 ‘할부원금’(휴대전화 출고가에서 기기 할인금, 즉 보조금을 뺀 금액으로 순수 기계 가격)을 꼭 확인해야 한다. 할부원금이 출고가와 같다면 기계값을 할인받지 못한 것이다.
휴대전화 할부에 따른 수수료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 대리점이나 판매점도 있다. 간혹 매월 부담해야 하는 통신비가 적은 것처럼 보이려고 단말기 할부 기간을 길게 늘리는 경우도 있다. 한 판매점주는 “이통사는 소비자가 휴대전화를 살 때 특정한 부가서비스나 요금제에 가입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는 판매장려금(리베이트)을 깎는다. 이 때문에 소비자가 부가서비스나 특정한 요금제를 이용하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font size="3"><font color="#1153A4">호갱 탈출 중급</font> LTE 요금제밖에 가입 못한다굽쇼</font>이리저리 머리 굴려 최신 휴대전화를 저렴하게 산다고 해서 호갱님 생활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설 연휴 동안 서울 시내 매장 서너 곳을 돌아본 기자는 LTE 요금을 신청해야 휴대전화를 살 수 있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LTE폰밖에 제품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LTE를 이용하려는 소비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LTE 시장을 만든 것이 다수 소비자들의 욕구였을까? LTE 가입자들은 3G 스마트폰 가입자보다 월 평균 1만원가량 요금을 더 내고 있다. 이통사 처지에서는 더 많은 매출을 거둘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인 셈이다. 그렇기에 LTE폰에 판매장려금을 많이 붙여 판매점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유통에 나서게 하고, 소비자도 최신폰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외면하지 못하고 LTE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
휴대전화를 바꿔도 계속 3G 요금제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중고폰을 사서 기기변경을 하거나, 이른바 자급제폰(언락폰·Unlock Phone)을 사는 것이다. 자급제폰이란, 통신사와 관계없이 개별적으로 판매되는 단말기를 말한다. 이 단말기를 가지고 있으면 소비자가 스스로 통신사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데, 각 통신사는 자급제폰 사용자가 약정 계약을 할 경우 요금 할인을 해주고 있다. 아이폰5의 경우 통신사 유통망에서 구입하면 LTE 요금제 가입만 가능하지만, 따로 출시된 아이폰5 자급제폰을 사게 되면 3G 요금 가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단말기를 구매할 경우 보조금을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부딪히게 된다. 최신 LTE폰에 기존에 사용하던 3G 스마트폰 유심을 꽂아 쓰는 유심 변경도 가능하지만, 이 역시 보조금을 포기해야 한다.
삼성·LG전자 등 제조업체들이 자급제폰을 내놓고 있지만, 선택의 폭이 좁고 사양 대비 가격도 높다. 이 때문에 일부 소비자들은 해외구매 사이트 등에서 자급제폰인 20만원대 보급형 스마트폰을 사 국내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해외구매 대행 사이트 ‘익스팬시스코리아’ 마케팅 담당 박선미 부장은 “얼리어답터 성향이 있는 분들은 이통사 약정에 묶이는 데 불만이 있어 자연스럽게 ‘언락폰’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LTE폰으로만 팔리는 ‘갤럭시노트 2’의 경우 해외에서는 3G용으로 출시됐고, 가격도 국내보다 저렴하다. 최근에는 편의점에서 5만원 안팎의 저가 자급제폰을 내놓고 있다. 세븐일레븐·CU 등 편의점 업체에서는 매장에 진열된 적 있는 저가 스마트폰과 중고 휴대전화를 재가공한 재생폰 판매에 나섰다.
이통 3사의 음성통화+문자+데이터 사용이 묶인 3G 스마트폰 요금제의 최저 기본료는 3만4천원이다. 약정 기간이 끝난데다 무료 음성통화를 늘 다 쓰지 못한다면 ‘알뜰폰’으로 불리는 이동통신재판매(MVNO) 사업자 운영 상품 가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통 3사에서 망을 빌려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업체들은 실제 사용한 만큼 돈을 낼 수 있게 다양한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경남 창원에 사는 회사원 서정민(32)씨는 요금 약정 기간이 끝난 뒤, 기본료가 저렴한 상품을 찾다가 KT 망을 빌려쓰는 이동통신재판매 사업자 서비스에 가입했다. 그가 이용하는 상품은 한 달에 1만원을 내면 500MB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해주고, 음성통화는 사용한 만큼 내는 구조다. 한 달 30분가량 통화를 했더니 약 1만5천원의 요금이 나왔다. 서씨는 이통 3사에 비해 고객센터도 적고 승인이 나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비용 절감이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font size="3"><font color="#1153A4">호갱 탈출 고급</font> 요금 산정 기준이 뭐야</font>자급제폰과 이동통신재판매 사업자들이 시장에 등장했지만 여전히 소비자의 선택 폭은 크지 않다.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도 삼성전자가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경쟁사도 몇 곳 없다 보니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이통 3사는 거의 비슷한 요금제를 제시하고 있다. 자잘한 꼼수를 피하려고 이통사 대리점·판매점 직원들과 입씨름을 하다보면 소비자를 ‘호갱이’로 만드는 큰손인 이통사와 제조업체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 국민이 이동통신 요금을 내고 있음에도, 요금이 어떻게 산정되는지 적정한 수준인지 아는 소비자가 별로 없다. 지난해 9월 서울행정법원은 참여연대가 방통위를 상대로 낸 이동통신 요금 산정 관련 정보공개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일부 항목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방통위는 요금인가신청서와 통신요금 TF팀 민간전문가 명단 등은 공개할 수 없다며 항소한 상태다. 두 자료가 공개될 경우 사업자 영업기밀 유출, 개인의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는 “이통사는 2G에서 3G, 다시 LTE 요금제를 만들 때마다 요금을 인상했는데, 요금인가신청서에 바로 그 인상 이유가 적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모르면, 모를수록 호갱이가 될 확률은 높다. 완전한 호갱 탈출로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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