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분쟁 | 카슈미르]
믿을 만한 선거 치른 뒤 대화 분위기 숙성… 인디아-파키스탄의 불법행위 중지가 첫 단추
1년 전, 잠무 카슈미르에서는 1977년 이후 처음으로 믿을 만한 주의회 선거를 치렀다. 카슈미르 시민들은 지난 13년 동안 폭동과 파괴로 얼룩졌던 죽음의 터널을 벗어나 머잖아 빛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여겼고, 시민들은 전쟁공포에 찌든 카슈미르 계곡의 상처를 치료하겠다고 약속했던 의회당(Congress Party)과 지역의 인민민주당(PDP)이 카슈미르주 연립정부를 구성하자 현실로 다가온 희망을 노래했다.
4만명이 목숨 잃은 아름다운 계곡
5개월 전, 그 희망은 바지파이 총리가 카슈미르 수도에서 파키스탄에게 우정의 손을 내밀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파키스탄과 인디아는 지난 2001년 12월 인디아 의사당 테러사건 이후 단절되었던 관계를 조심스레 회복시켜나갈 의지를 밝혔고, 카슈미르 사안을 놓고 대화하겠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주고받았다.

오늘, 그 희망은 기로에 서 있다. 만약 그 희망이 꺼져버린다면, 인디아와 파키스탄은 국경에서 상호 적대행위를 재개할 것이고, 결국 남아시아는 다시 전략적 불안정과 핵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카슈미르가 세계 최대 핵분쟁 예상 발화점이란 걸 염두에 둔다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카슈미르를 낀 논쟁은 무엇이며, 카슈미르와 인디아 그리고 파키스탄은 무엇을 원했던가? 힌두 왕이 지배했던 무슬림 주류사회인 잠무 카슈미르는 1947년 8월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떠나면서 인디아와 파키스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거룩한’ 기회를 얻었다. 두달 동안 망설이던 왕은 파키스탄 부족의 공격을 받자 결국 인디아를 선택했다. 그렇게 제1차 인디아-파키스탄 전쟁이 끝나자 파키스탄은 잠무 카슈미르의 3분의 1을 점령했고, 인디아는 파키스탄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카슈미르 계곡을 차지했다.
그로부터 카슈미르의 정치적 환경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다. 초창기 대다수 시민들은 자무와 카슈미르의 예외적인 자치 조건 아래 인디아와의 합병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인디아는 성실하게 그 신의를 지키지도 않았고 또 카슈미르 지도자들을 압박하며 어설프게 카슈미르 사안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인디아는 중무장 군대를 동원해 임시변통 선거를 치르게 하면서 정치판을 뒤집어놓았다. 결국 1989년 카슈미르의 분노가 폭발했고, 인디아는 카슈미르의 대중적 결심인 ‘아자아디’(모든 것을 자치에서 완전한 국가로)를 중무장 병력으로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런 가운데 25년 동안 카슈미르를 잊고 살았던 파키스탄이 다시 깨어나 카슈미르 분리를 주장하는 무장단체들을 훈련시키고 돈줄을 제공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카슈미르에서 4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사이 카슈미르는 인디아 정부의 압박과 무장투쟁 단체들의 테러로 지칠 대로 지쳤다. 지난해 카슈미르 시민들은 일종의 정상적인 선거를 치렀다. 그렇다고 그 투표가 인디아의 정책과 아자아디의 거부에 동의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카슈미르 시민들의 투표는 부패하고 둔감한 현 주정부를 몰아내기 위한 성토였다. 이건 인디아와 완전한 통합을 위한 선거가 아니었다. 카슈미르 시민들은 다원적이고 관용적인 사회 그리고 뉴델리로부터 직접 조종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주정부를 원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카슈미르의 대다수 시민들은 위기만 남은 실패한 국가로 여기는 파키스탄으로의 합병을 원하지도 모색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얄궂게 인디아와 파키스탄은 모두 카슈미르에 숙명처럼 개입했다.

양쪽 정부의 접근은 무모하고 모호했다
하지만 인디아와 파키스탄 양쪽 정부의 무모하고 모호한 접근이 카슈미르의 화를 키웠다.
카슈미르는 사고팔 수 있는 부동산이 아니다. 이건 카슈미르 시민을 두 나라가 각각 자국 국민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파키스탄쪽은 아직 카슈미르의 분할안이 끝나지 않은 상태임을, 그리고 인디아쪽은 아직 카슈미르 통합이 비종교주의 정치의 시험 상태임을 각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재 카슈미르에서 벌이고 있는 인디아와 파키스탄의 불법행위를 멈추게 하는 일이 카슈미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될 수밖에 없다. 인디아는 카슈미르에서 인권유린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하고, 파키스탄은 다원적인 인식과 종교적 자유를 가로막는 편협한 이슬람의 이름 아래 카슈미르 해방을 외치는 테러리스트 지원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즉각 두개의 대화 채널을 개방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하나는 인디아쪽 카슈미르 내부에, 다른 하나는 델리와 이슬라마바드 사이다. 인디아는 카슈미르의 가장 큰 자생적인 무장항쟁 단체와 두 차례 휴전협정을 맺은 적이 있지만, 여전히 다른 정치조직들과 마주 앉는 일에는 대담성이 부족했다. 지금이 바로 모든 정파들과 말문을 터야 할 때다. 인디아와 파키스탄 사이도 마찬가지다. 인디아는 파키스탄과 기꺼이 대화하겠다고 말했지만 카슈미르를 복합적인 대화의 일부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반대쪽 파키스탄도 인디아와 기꺼이 대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카슈미르를 두 나라 사이의 핵심 사안으로 삼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이 바로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서로 대화를 나눌 시간이다.
두 나라가 숨기고 있는 군사적 해결책은 핵분쟁을 통한 종말을 예약하는 일일 뿐이다.
2001년 9월11일부터 인디아와 파키스탄 두 정부의 카슈미르 계산법을 곰곰이 뜯어보면 모두 외부적 요인이라는 ‘비굴감’이 깃들어 있다. 파키스탄은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 속에서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조건을 내밀고 ‘자본잡기’에 혈안이 되었고, 인디아는 미국과 ‘전략적 동업자’라는 자격 획득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어진 미군의 이라크 침공을 이 남아시아의 두 경쟁자는 거세게 성토하면서도, 한편으로 카슈미르 사안을 놓고는 전에 없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바로 이 비굴감을 돌려보면 카슈미르 문제 해결에 새로운 가능성이 엿보인다. 두 나라 시민사회와 국제사회가 어떻게 양쪽 정부를 압박하느냐에 따라 카슈미르 사안은 획기적 전기를 맞을 수 있다.
외부 개입 불러 ‘비굴한 후퇴’를 할 것인가
게다가 두 나라 사이의 분위기도 상당히 고무적인 상태다. 라호르∼델리간 버스가 다시 달리고, 두 나라 의원들이 친선방문을 한 뒤부터 양쪽 시민의 만남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두 나라를 잇는 항공노선 재개도 청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지금은 인디아와 파키스탄 정치가들에게 기회의 시간이자 시련의 시간이 될 수도 있는 절묘한 시점이다. 내부와 외부를 통틀어 대화를 통해 카슈미르 사안을 풀 수 있는 최적의 조건들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만약 이 기회를 통해 대화로 카슈미르 사안을 풀어간다면, 카슈미르와 인디아 그리고 파키스탄 시민이 모두 승리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면서 인디아와 파키스탄 정치가들은 영생의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친다면, 결국 어떤 형태로든 카슈미르 사안은 외부 개입을 불러 인디아와 파키스탄 두 나라 모두 진짜 ‘비굴한’ 후퇴를 할 수밖에 없고, 반외세 정서가 넘치는 두 사회의 기질을 놓고 본다면 결국 카슈미르 사안의 외부 개입은 두 나라 정치가 모두에게 비참한 말로를 안겨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두 나라 정치가들이 이 기회의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선택의 시간만 점점 가까이 다가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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