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1월3일 치른 중간선거에서 ‘사상 첫 무슬림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압둘 엘사예드 민주당 후보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임기 중간선거는 2018년 11월6일 치러졌다. 당시 민주당은 연방 하원에서 의석을 40석 늘리며 235석을 차지해 하원을 장악했다. 상원에선 공화당이 2석을 늘리며 53석으로 다수당 지위를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크게 진 선거가 아닌 셈이다. 2026년 11월3일 치른 그의 집권 2기 중간선거 결과는 이와는 판이했다.
2018년 중간선거에선 이른바 ‘진보 열풍’이 거셌다.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킨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주)을 지지했던 정치 신예들이 2년 임기의 연방 하원에 대거 입성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뉴욕)·러시다 털리브(미시간)·일한 오마(미네소타)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이 3명은 민주당 진보파를 이끌며 내리 4선에 성공했다. 3명 모두 2026년 11월3일 중간선거에서 5선 도전에 나섰다. 중량급 정치인으로 발돋움할지가 판가름 날 터였다.
푸에르토리코계인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될 정도로 성장했다. 팔레스타인계 이민자 집안 출신인 털리브 의원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침공을 앞장서 비판하며 전국적 지명도를 얻었다. 이번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는 소말리아계 이민자인 오마 의원을 겨냥해 압수수색 등 대대적인 ‘이민 사기’ 수사를 벌였다.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란 비판이 나왔다. 결과는 어땠을까?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78.22%, 털리브 의원은 75.98%, 오마 의원은 76.48%를 각각 득표하며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과 털리브 의원은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DSA)의 일원이다. 오마 의원은 DSA에 가입하진 않았지만, 이 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번 중간선거에선 클레어 밸디즈(뉴욕) 등 DSA 소속 정치 신예 6명이 새롭게 연방 하원에 입성했다. 미국 정치권의 ‘색깔’이 조금 더 달라졌다.

2026년 11월3일 치른 미국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제임스 탤러리코 민주당 후보가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마이크, 은퇴생활 즐기세요. 플로리다에 집도 있고, 요트도 두 척이나 있는 거 압니다. 당신은 증오를 선택했지만, 미시간은 희망을 선택했습니다.” 압둘 엘사예드 민주당 상원의원 당선자는 11월3일 밤 승리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이크 로저스 공화당 후보를 겨냥한 말이다. 엘사예드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큰 관심을 부른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특히 그의 당내 경선 후보이자 민주당 내 대표적 친이스라엘 인사인 헤일리 스티븐스 하원의원이 선거 막판에 돌연 로저스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파란을 부른 바 있다.
압둘라흐만 무함마드 엘사예드는 1984년 10월 미국에서, 당시 박사과정을 밟던 이집트 출신 유학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성장한 그는 미국 최고 권위의 로즈장학생 출신으로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공중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은 의사 출신이다.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일원은 아니지만, 샌더스 상원의원과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이 그의 선거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미시간주 흑인 유권자의 표심을 끌어내기 위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선거운동 막판 그의 지지유세에 동참했다. ‘지하디스트’ ‘테러범’ ‘사이코패스’ 등 무슬림인 그를 겨냥한 온갖 비방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무슬림 최초 연방 상원의원’으로 무난히 당선됐다. 그가 승리연설에서 선거운동 기간 내내 자신을 비방한 제이디 밴스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뼈 있는 농담을 이어간 이유다.
“제이디, 내 ‘하비비’(아랍어로 ‘친구’라는 뜻). 그야말로 멋진 아이러니네요. 헌법에 따라 당신이 내년 1월 제 상원의원 선서식을 집행해야 합니다. (웃음) 도널드, 제 이름 발음하는 거 어려워하시는 거 압니다. 제이디가 선서식을 집행한 뒤엔, 저를 그냥 ‘상원의원님’으로 부르시면 됩니다.”
텍사스주에선 무려 38년 만에 민주당 후보가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됐다. 주 하원의원 출신 제임스 탤러리코 당선자다. 중등교사 출신인 그는 주 하원의원 재직 시절 신학교를 다녀 개신교 목사 자격까지 갖춘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의 선거운동 으뜸 구호는 ‘ 네 이웃을 사랑하라 ’ 는 성서의 경구였다. 탤러리코 후보가 말하는 ‘ 이웃 사랑 ’ 은 인종 · 종교 · 학벌 · 직업 · 성별 · 성적지향 등을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다. 그는 11월4일 승리연설에서 성서의 ‘ 다윗과 골리앗 ’ 을 언급하며 “ 증오의 정치는 사랑의 정치를 이길 수 없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우린 부패한 정치권이란 골리앗을 이겨냈다 ” 고 강조했다.

2026년 11월3일 치른 미국 중간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존 오소프 상원의원이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REUTERS
미국 언론이 무슬림인 엘사예드 당선자, 개신교도인 탤러리코 당선자와 함께 ‘삼총사’로 묶는 정치인이 있다. 조지아주에서 재선에 성공한 존 오소프 상원의원이다. 미국 조지타운대학과 영국 런던정경대학을 거친 그는 20대에 일찌감치 의회 보좌진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2020년 선거에서 33살의 나이로 최연소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집안 출신이다. 각기 다른 배경의 엘사예드·탤러리코 당선자와 오소프 의원을 하나로 묶는 건 ‘정치적 지향’이다. 3명 모두 보수적 상원에서 민주당 진보파의 목소리에 힘을 실으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오소프 의원은 재선에 성공하면서 2028년 대선 민주당 후보로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상원에서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
민주당이 의회권력을 탈환했다. 무능하고 무모한 대통령 덕이다. 하지만 선거 압승 이후에도 민주당 지도부에선 별다른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지 않는다. 차기 의회에서 사상 첫 아프리카계 하원의장으로 선출될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는 온통 ‘트럼프 행정부 견제’만 강조한다. 평범한 미국인의 삶을 어떻게 바꿔낼 것인지에 대한 구상을 내놓지 않는 건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다. 슈머 대표는 중간선거를 앞둔 당내 경선에서 진보 성향 후보가 승리할 때마다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실제 그는 미시간주 상원의원 후보 당내 경선 때 엘사예드 당선자 대신 스티븐스 의원을 공개 지지한 바 있다.
민주당의 선거 압승으로 정치 지형이 달라졌다. 차기 의회에선 진보적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기존 지도부는 이를 받아안을 수 있을까? 중간선거 직후부터 민주당 안팎에서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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