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월30일 그린란드 현지 주민들이 “그린란드는 팔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지나가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꺼내든 그린란드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선다. 그는 그린란드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가져야 한다”고 했는데, 이 논리는 19세기 제국주의의 문법에 다름 아니다. 안보를 이유로 영토 소유를 정당화하는 발상은 주권과 동맹, 규범을 기초로 한 전후 국제질서의 전제를 부정하고, 그만큼 대서양 동맹의 신뢰 기반도 흔들고 있다. 그린란드는 미국이 영토 확장의 국제정치를 복원하려는 사고방식의 상징이 됐다.
이 발언이 특히 유럽을 긴장시키는 이유는 그것이 덴마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맹국의 영토와 주권조차 미국의 전략적 필요 앞에서는 탈취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비록 수위가 낮아졌지만 그린란드 진출을 확대하려는 그의 태도는 결국 관철된 셈이고, 향후 미국은 더 다양한 방식으로 그린란드에 대해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다.
미국의 영토 확장은 역사적으로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단숨에 영토를 두 배로 넓혔고, 플로리다 편입과 텍사스 합병, 1867년 알래스카 매입, 1898년 하와이 병합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스스로를 확장하는 나라로 인식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의 권리나 기존 국제질서, 타국의 주권은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났다. 미국 정치사에서 영토 확장은 예외가 아니라 관성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이 집착을 21세기적 전략 논리로 세분해 설명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본질을 흐릴 수 있다. 광물 자원, 북극항로, 배타적 경제수역 확대, 미사일 방어와 우주전 대비,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북극권 세력 재편 등 그린란드를 차지해야 할 이유는 많다. 뭐가 핵심 이유인지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제국은 언제나 필요해서 영토를 넓혔다. 소유하려는 충동, 즉 공간을 점유함으로써 힘을 행사하려는 본능이 항상 앞섰다. 트럼프의 그린란드 발언도 영토 확장을 통해 세력권을 넓혀온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이 다시 표면화된 사례다. 그린란드는 특정 자원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다시금 소유의 정치를 통해 힘을 행사하려는 상징적 공간이다. 유럽이 이 문제를 단순한 외교적 해프닝으로 넘기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번의 발언이 아니라 미국이 앞으로 동맹과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대할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그렇다면 이에 대항하는 유럽의 카드가 있는가. 흔히 유럽은 적절한 대응 수단이 없다고 한다. 군사·안보 차원에서는 상당 부분 사실이다. 지난 80년 동안 지역 안보를 미국에 맡겨온 유럽, 냉전 종식 이후 군사력을 구조적으로 축소해온 유럽은 홀로 설 수 없다. 우주전이나 정보전 관련한 디지털 주권도 모두 미국에 있고, 고작 1500억유로(260조원 상당) 규모로 유럽연합(EU) 안보정책의 독립성을 상징하는 유럽안보계획(SAFE)도 최소 10년 시한으로 이제 막 시작했다. 그렇다면 다른 영역, 즉 경제와 통상 분야에서는 어떤 선택지를 갖고 있는가.
유럽연합이 2023년 도입한 강압대응조치(ACI·Anti-Coercion Instrument)는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등장했다. ACI는 나토(NATO) 헌장 제5조(회원국 가운데 한 나라가 공격받으면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해 개별 회원국들이 집단으로 대응한다)의 경제·통상 버전이라 해석할 수 있다. 외부 국가가 관세, 수입 제한, 투자 압박 등으로 유럽연합 회원국의 정책 선택을 강제하려 할 경우, 이를 유럽연합 전체에 대한 강압으로 인식하고 유럽연합 차원에서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다. 관세 인상, 공공 조달 배제, 서비스 시장 접근 제한, 투자 규제 등 다양한 수단이 패키지로 묶여 있다. 그래서 ACI를 무역의 강력한 무기라는 뜻에서 ‘무역 바주카’(The Trade Bazooka)라고 부른다.
유럽이 처음으로 경제적 강압에 대해 제도화된 자위권을 갖췄다는 데 이 제도의 의의가 있다. 또한 한 국가에 대한 경제적 위협을 회원국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해 보복하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경제·통상 분야 수단을 포함한다는 특징도 있다. 과거처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수년을 기다리는 방식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따라 신속히 대응하고 대상 국가를 특정하지 않는다. 처음 시작은 중국 때문이었지만 미국도 배제하지 않는다.
문제는 효과가 아니라 비용이다. ACI가 실제로 발동되는 순간, 이는 대서양 양안 간 ‘관리된 갈등’이 아니라 사실상의 경제전쟁이 시작됨을 뜻한다. 유럽 자신도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이 안보·에너지·재정 측면에서 이미 극도의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점에서, ACI는 최후의 카드에 가깝다. 바로 이 때문에 ACI의 진짜 효과는 사용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라고 말해왔다. 강압 국가들이 유럽에 대한 행동을 신중히 하도록 하는 억지력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이 2026년 1월22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 본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위협에 대한 유럽이사회 긴급회의 뒤 폐회 기자회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유럽이 보유한 또 하나의 카드는 금융 영역에 있다. 유럽 각국 정부와 금융기관이 보유한 미국 국채와 주식 규모는 10조달러에 달한다. 특히 미국 국채 매각은 유럽이 상대적으로 덜 다치면서도 미국에 가장 직접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수단이다. 미국 국채 매각이나 신규 매입 중단은 미국 금융시장과 금리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 전량 매각은 유럽으로서도 자해 행위이지만, 부분적·점진적·공개적인 매각은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표 중 하나는 장기 금리다.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 이미 38조달러를 넘어선 미국 정부의 재정 부담은 급격히 악화한다. 유럽이 예컨대 “이번에 5%, 다음에 또 5%”라는 식으로 매각 의사를 밝히며 움직일 경우, 이는 관세 보복보다 훨씬 강력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덴마크 연기금이 국채 매각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비록 상징적이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덴마크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연합 전체의 문제로 만들 수 있다는 신호였다.
이 카드가 진정으로 위협적인 이유는 실제 매각 여부보다 미국 금융시장의 기대와 심리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이 카드를 아직 사용하지 않고 있다. 실제 실행 여부보다 존재 자체가 상대의 계산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군사력이 아닌 금융과 시장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해온 유럽의 방식이다.
또 하나의 현실적 수단은 미-유럽연합 통상합의의 비준 문제다. 2025년 7월 스코틀랜드에서 미국과 유럽연합은 통상 및 투자에 관해 큰 틀에서는 합의했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은 세부 내역이 남아 있고 무엇보다 법적으로 아직 발효되지 않았다. 유럽의회의 비준이 남아 있다. 양국 간 통상합의는 유럽 기업의 대미 투자뿐만 아니라 다수 미국 제품의 대유럽 무관세 시장 접근을 보장하고 있다. 유럽의 대미 수출이 6천억유로가 넘는 현실에서 15%와 0%라는 상호 간 불균형적인 관세 구조는 아직 현실화하지 않았다.
그린란드처럼 주권과 영토가 거래 대상이 되는 순간, 통상합의의 정치적 정당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유럽은 합의를 공식적으로 파기하지 않더라도, 비준을 지연하거나 보류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메시지를 낼 수 있다. 이는 관세 보복보다 훨씬 정제된 방식이지만, 미국에는 실질적인 압박과 비용이 된다. 신뢰가 무너지면 통상합의는 멈출 수 있다는 신호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한국 국회의 비준 지연 문제를 놓고 관세율을 다시 10%포인트 올리겠다고 한 것은 유럽연합,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거둔 성과가 조속히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한 조급함의 발로로 해석해야 한다. 어쨌든 불확실한 대법원 판단에 앞서서 잠금효과를 거두기 위함이다.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조급함을 알고 있다.
이렇듯 유럽이 미국에 맞설 카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카드들은 모두 양날의 검이다. 사용하면 미국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유럽도 큰 상처를 입는다. 현재 유럽은 실제로 전쟁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연합과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재정·인도적 지원은 이미 1500억유로를 넘어섰다. 에너지 가격 충격, 재정 부담, 산업 경쟁력 약화까지 겹치면서 유럽의 정책 여력은 최악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의 경제전쟁은 부담스러운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카드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못하는 순간 유럽은 더 이상 협상 상대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된다.
유럽이 끝내 이 카드를 사용할 수 있을까. 유럽의 안보 의존성과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가능성을 낮춘다. 하지만 경제·통상 카드의 속성상 점진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유럽이 미국의 압박에 본격적으로 대응한다면 미국의 보복 대응과 함께 세계 경제성장률이 약 0.4%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 있다. 엄청난 충격이다. 이 충격은 미국과 유럽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나눠 떠안게 된다. 그래서 그린란드 문제를 포함한 대서양 양안 간 갈등과 대치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김흥종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선임연구위원·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20세기 질서가 무너진 격변의 시대. 복잡한 세계 경제 현안을 깊은 시각으로 해설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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