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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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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마차도에게 간 노벨평화상, 무덤 속 노벨은 뭐라 할까

노벨재단 고발한 어산지 “‘전쟁범죄 조장’ 금지 위반”… 마두로 정권 향한 ‘선전포고’는 트럼프의 ‘사심’?
등록 2026-01-02 12:59 수정 2026-01-05 15:02
2025년 12월30일 코모로스 선적의 대형 유조선 에바나호가 베네수엘라 북부 푸에르토카베요 부근 해상을 지나는 사이 인근 지역 주민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5년 12월30일 코모로스 선적의 대형 유조선 에바나호가 베네수엘라 북부 푸에르토카베요 부근 해상을 지나는 사이 인근 지역 주민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해상을 사실상 봉쇄했다. 봉쇄의 목적은 분명하다. 베네수엘라 경제를 지탱하는 중추인 원유산업을 마비시키는 게다. 전형적인 포함외교다. ‘민주주의 복원’을 내세웠으되 셈법은 따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도 세계 1위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 원유자원을 탐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2025년 12월18일치)와 뉴욕타임스(12월27일치)의 보도를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취임 직후부터 앞선 임기 때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미국에 베네수엘라 침공 요청한 마차도

미군이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범죄 기록을 입수·공개한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는 12월17일 스웨덴 노벨재단을 형사 고발했다. 베네수엘라 극우 정치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에게 2025년도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것을 문제삼았다. 어산지는 고발장에서 “마차도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평화상을 ‘평화의 도구’로 삼고자 했던 알프레드 노벨의 뜻에 반하는 결정으로 횡령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해 미국에 침공을 요청한 마차도에게 평화상을 준 것은 ‘전쟁범죄 조장’을 금지한 스웨덴 국내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어산지는 노벨재단이 마차도에게 상금으로 수여할 1100만크로나(약 119만달러)를 동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부유한 철강기업 경영자 집안에서 태어난 마차도는 우고 차베스 정권 시절부터 반정부 투쟁을 주도한 베네수엘라 야권의 대표 주자다. 친미·극우·반공 성향을 여과 없이 드러낸 그는 이른바 ‘이베로스피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권) 국가의 극우 정치인이 공동으로 참여한 ‘마드리드 헌장’ 서명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칠레 대통령 당선자 등도 헌장 서명자다. 마차도는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집단살해도 적극 옹호해왔다. 노벨재단은 마차도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이유로 “베네수엘라에서 민주적 권리를 신장하고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평화적 이행을 위해 싸웠다”는 점을 들었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025년 12월28일 북부 도시 라과이라에서 열린 군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025년 12월28일 북부 도시 라과이라에서 열린 군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11년 노르웨이 의회를 시작으로 어산지는 그간 여러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바 있다. “서구의 전쟁범죄를 고발한 공로”를 인정받아서다. 마차도가 수상자로 결정된 직후부터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포함한 각국 인권단체도 강력히 반발했다. 그럼에도 스웨덴 경찰당국은 고발장 접수 이틀 뒤인 12월19일 “범죄 혐의가 없다”며 노벨재단에 대한 수사에 나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탄압당하는 민주주의자’는 베네수엘라에서 ‘정권교체’를 밀어붙일 수 있는 최고의 명분이다. 군병력과 전용기까지 동원해 마차도를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열린 노르웨이 오슬로까지 모셨던 트럼프 행정부에는 더욱 그럴 터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병력 동원해 마차도를 모신 트럼프 정부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쿠바계 이민자 집안 출신으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겸하고 있다. 그는 상원의원 시절부터 베네수엘라와 그 동맹국인 쿠바에서 정권교체를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겸 국토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설계한 장본인이다. 그는 오랜 기간 불법이민자 대규모 추방과 중남미 일대에서 마약 카르텔 등 범죄단체 소탕을 모색해왔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직후부터 루비오 장관과 밀러 보좌관의 정책이 하나로 모아지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마두로 정권에 대한 군사적 대응의 씨앗은 2월에 뿌려졌다. 루비오 장관은 비밀리에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부켈레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내세워 성인 인구의 2%를 잡아 가둔 거로 유명한 극우파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미국이 베네수엘라 불법이민자 약 300명을 추방하면 엘살바도르 중부 테콜루카에 자리한 테러범수용시설(CECOT)에 수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미국은 그 비용으로 5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회담 직후 루비오 장관은 베네수엘라의 마약 카르텔 ‘트렌 데 아라과’(아라과의 기차)를 필두로 한 중남미 범죄단체 8개를 ‘외국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2025년 12월31일 카리브해의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 자리한 미 해군기지 활주로에 미군 5세대 스텔스 전투기가 집중 배치돼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5년 12월31일 카리브해의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 자리한 미 해군기지 활주로에 미군 5세대 스텔스 전투기가 집중 배치돼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이 무렵 밀러 보좌관도 적법절차를 우회해 대규모 불법이민자 추방을 밀어붙일 방안을 찾아냈다. 미국을 침공하거나 미국과 전쟁 중인 국가의 시민을 즉각 구금·추방할 수 있도록 1798년 제정한 ‘적성국 국민법’이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3월16일 베네수엘라 이주민 약 250명을 범죄단체 조직원으로 규정해 엘살바도르로 추방했다. 당시 미국 법원은 “불법이민자 문제가 전시 적성국민 추방을 정당화하는 침략 행위의 일종으로 보기 어렵다”며 제동을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은 마두로 정권과 미국이 모종의 전쟁을 시작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고 풀었다.

마두로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만 있다면

5월 들어 베네수엘라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루비오 장관은 마두로 대통령을 ‘마약 카르텔 두목’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미국 뉴욕남부지방검찰청은 2020년 3월 마두로 대통령을 마약 테러와 불법 중화기류 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밀러 보좌관은 미국이 베네수엘라와 실제 전쟁을 벌이면 적성국 국민법을 재발동할 수 있으리라고 강조했다. 마약 카르텔을 겨냥한 군사적 공격과 마두로 정권 흔들기, 막대한 베네수엘라 원유자원에 대한 미국 정유업체의 접근권 확보 등 세 가지 정책 목표가 하나로 통합됐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베네수엘라 정책의 큰 틀이 마련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25일 국방부에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 마약 밀매 조직을 겨냥한 군사작전을 비밀리에 지시했다. 마약 운반이 의심되는 선박도 공격 대상에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밀명령을 하달한 날, 미국 재무부는 ‘카르텔 데 로스 솔레스’(태양의 카르텔) 제재를 발표했다. ‘태양의 카르텔’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 집권 이전에 마약 밀매로 뒷돈을 챙기던 부패한 군부를 일컫는 말일 뿐이다. 그럼에도 재무부 쪽은 이를 “마두로 대통령을 수장으로 한 마약 테러조직”이라고 규정한 게다. 일주일 뒤엔 루비오 장관이 팸 본디 법무장관과 함께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현상금을 5천만달러로 두 배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8월 들어선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관련 ‘작전명령'을 하달했다. 과거 행정부에선 국방부 소속 군법무관과 특수전 전문가들이 작전 실행과 관련된 논의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런 절차는 철저히 무시됐다. 카리브해 연안에서 벌어지는 해상작전의 지휘부인 남부사령부도 논의에서 배제됐다. 앨빈 홀시 남부사령관이 조기 사임을 전격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9월2일 미군은 11명이 승선한 쾌속정을 포착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해당 선박이 단 한 차례 공습으로 파괴되는 편집된 영상을 공유했다. 하지만 전체 영상을 보면 1차 공습 이후 승선 인원 가운데 2명이 살아남아 물 위로 떠올라 선박 잔해를 부여잡고 구조신호를 보냈다. 프랭크 브래들리 합동특수전사령부 사령관은 추가 타격을 명했다. 결국 생존자 2명도 사망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후 4개월 동안 마약 운반 의심 선박에 대한 공격은 모두 29차례 벌어졌고, 적어도 105명이 목숨을 잃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공격당한 선박이 마약 밀매와 관련됐다는 정보를 확보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2025년 12월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5년 12월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마침내 베네수엘라 영토 직접 공격

마약 운반 의심 선박에 대한 공격을 두고 ‘살인 행위’란 비판이 쏟아졌다. ‘전쟁범죄’란 지적도 이어졌다. 10월16일 카리브해에서 미국이 다시 의심 선박을 공격했다. 역시 생존자 2명이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번엔 대응이 달랐다. 헬리콥터를 동원해 생존자를 구조하고 인근 해상에 배치된 미군 강습상륙함 이오지마호로 데려왔다. 미국 쪽은 곧바로 이들을 모국인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로 돌려보냈다. 당시 국무부와 국방부 내부에선 생존자 2명을 엘살바도르의 교도소에 수감하는 방안과 제3국으로 보내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선 1차 공격 뒤 생존자 ‘확인사살’이 잘못된 결정이었음을 방증한다.

11월 들어 베네수엘라 주변에서 위기감이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18일 중앙정보국(CIA) 쪽에 베네수엘라 내부에서 비밀작전을 수행하도록 명했다. 미 해군이 보유한 최신예이자 최대 규모 핵추진 항공모함인 제럴드포드호를 필두로 한 해군력과 공군력이 카리브해 연안에 집중됐다. 12월에는 아예 베네수엘라에서 출발한 유조선을 두 차례나 공해상에서 나포하기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월17일 베네수엘라 정부가 원유산업 국유화(1976년)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훔쳐간’ 원유와 기타 자산을 배상하기 전까지 해상봉쇄를 풀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12월29일엔 “마약 운반선이 정박한 베네수엘라 부두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공격의 배후가 중앙정보국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베네수엘라 영토에서 미국이 처음으로 직접 공격을 벌였다는 점은 실토한 셈이다. 대체 어디까지 나아갈 텐가? 새해 벽두부터 전운이 짙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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