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가 치러진 2025년 12월14일 수도 산티아고에서 극우파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후보의 지지자가 군사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사진을 들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살바도르 아옌데의 나라에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망령이 부활할 조짐이다. 불평등한 세상을 갈아엎자고 온 나라가 나섰던 게 6년여 전의 일이다. 불과 4년 전엔 30대 좌파 대통령까지 뽑았던 터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2025년 12월14일 칠레에서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가 치러졌다. 극우 성향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9) 공화당 후보와 히아네트 하라(51) 공산당 후보가 맞붙었다. 11월16일 실시된 1차 투표에선 하라 후보가 26.9%를 득표해 23.9% 득표에 그친 카스트 후보를 눌렀다. 하지만 결선투표를 앞둔 여론조사에서 카스트 후보는 하라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꾸준히 앞서갔다. 이유는 명확하다. 1차 투표에서 집권당을 포함한 범좌파 진영은 하라 후보를 단일 후보로 지원했다. 반면 극우·보수 진영은 후보가 난립했다. 카스트 후보를 포함한 보수 야권 후보 4명의 1차 투표 득표율을 합하면 70%에 달했다. 이변은 없었다. 결선투표 결과 58.2%를 득표한 카스트 후보가 41.8%를 득표한 하라 후보를 꺾고 칠레 제3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대선 도전 3수 만에 이룬 승리였다.
카스트 당선자는 1966년 1월 독일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0년 칠레로 이주한 부친 미하엘 카스트는 18살 때인 1942년 9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나치당)에 입당한 뒤 장교로 복무했다. 이런 사실은 2021년 대선 당시 독일 연방문서보관소에 보관 중이던 그의 당원증이 공개되면서 확인됐다. 당시 카스트 당선자는 “부친은 전시 강제징집 피해자”라고 주장했지만, ‘부역자’ 논란을 잠재우진 못했다. 입대는 강제였지만, 입당은 개인의 선택인 탓이다.
1973년 쿠데타로 ‘선거로 집권한 최초의 사회주의자’인 아옌데 대통령 정부를 무너뜨린 피노체트는 1988년 거센 민주화 요구에 직면했다. 결국 그는 집권 8년 연장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당시 법학도이던 카스트 당선자는 피노체트 정권 연장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2001년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그는 내리 4선에 성공하며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2017년 무소속으로 첫 대선에 출마했을 때, 그는 “피노체트 장군께서 살아 계셨다면 내게 투표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학자 출신인 그의 친형 미겔 카스트는 피노체트 정권에서 노동부 장관과 중앙은행장 등을 지냈다.
2019년 10월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지하철 요금 기습 인상을 계기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보수파인 세바스티안 피녜라 정권은 탄압으로 맞섰다. 저항의 불길은 전국으로 번졌다. 독재자 피노체트가 1980년 개헌으로 만들어놓은 칠레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 체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요구가 비등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한 2020년 2월까지 시위대 36명이 숨지고, 1만1500여 명이 다쳤다. 불법시위 등의 혐의로 구금된 시위대는 2만8천여 명에 달했다. 2020년 10월 개헌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유권자 78%가 압도적으로 찬성표를 던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2021년 5월 실시된 제헌의회(정원 155명) 선거에서 피녜라 정권은 단 37석을 얻는 데 그쳤다. 무소속과 중도-좌파 연대, 소수 종족 대표단이 제헌의회를 압도했다. 대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2025년 12월14일 치른 칠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 개표 결과 당선이 확정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공화당 후보가 수도 산티아고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짓하며 웃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5년 12월14일 칠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패배한 히아네트 하라 공산당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21년 11월21일 대선 1차 투표가 치러졌다. 학생운동가 출신 재선 하원의원인 가브리엘 보리치가 범좌파 단일 후보로 나섰다. 2019년 자신이 창당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카스트 당선자는 27.9%를 득표하며, 25.8% 득표에 그친 보리치 후보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1차 투표 직후 여론이 급격히 바뀌었다. 당시 보리치 후보는 사회정의와 주거복지, 대중교통 무상화와 소수자 인권 강화 등을 으뜸 공약으로 내세웠다. 카스트 당선자는 작은 정부와 세금 인하, 낙태 금지, 불법이민 단속을 앞세웠다. ‘파시즘 대 민주주의'란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해 12월19일 치른 결선투표에서 보리치 후보는 55.8%를 득표하며, 44.1% 득표에 그친 카스트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그의 나이 35살 때다.
보리치 정권 출범 이후 개헌안 마련에 탄력이 붙었다. 제헌의회는 △선주민 자결권 확대 △정부와 공기업 내 성평등 △자발적 임신중단권 보장 △노동조합 권리 강화 △성정체성 선택 보장 △동물권 보장 △교육·주거권 강화 등을 헌법 개정안에 담았다. “사상 가장 진보적인 헌법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2022년 9월 실시된 개헌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은 반대 61.8% 대 찬성 38.1%로 부결됐다. 치안과 경제 불안, 불법이민 급증에 따른 신종 범죄 창궐에 대한 우려가 커지던 때다. 사회적 가치의 급진적 변화에 대한 우려가 컸음에도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2025년 12월16일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칠레 대통령 당선자(오른쪽)가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을 만나, 밀레이 정부의 ‘긴축재정’을 상징하는 전기톱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AFP 연합뉴스
보리치 대통령은 개헌을 다시 추진했다. 2022년 12월 보수파가 장악한 의회는 제헌의회 대신 국민투표를 통해 제헌위원회(총원 51명)를 구성하기로 했다. 2023년 5월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공화당은 23명을 당선시켰다. 좌파연합은 16명, 중도우파가 11명, 선주민 대표는 단 1명 선출됐다. 개헌안은 극도로 보수적인 쪽으로 바뀌었다. ‘태아의 생명권 보장’이 명문화된 게 대표적이다. 2023년 12월 실시된 제2차 개헌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은 반대 55.7% 대 찬성 44.2%로 부결됐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두 차례 부결 이후 보리치 대통령은 임기 내 개헌을 포기했다. 대신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주 45시간에서 40시간) △빈민 무상의료 등에 공들였다. 하라 후보는 보리치 정부의 노동부 장관으로서 이들 정책의 집행을 주도했다. 그럼에도 보리치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선에 갇혔다. ‘정권 심판론’이 비등했고, 카스트 당선자는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는 불법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치안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이른바 ‘에스쿠도 프론테리소’(국경 방패) 건설을 으뜸 공약으로 내걸었다. 북부 페루·볼리비아 국경지대에 참호를 파고, 장애물과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주장이다.
‘혁명의 열기’가 덧없다. 독재자가 만든 세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카스트 당선자는 선거 이틀 뒤인 12월16일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남미의 트럼프’를 자처하는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선거운동 기간에 그는 ‘범죄와의 전쟁’을 내세워 성인 인구의 2%를 잡아 가둔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을 ‘롤모델’로 내세웠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극우 바람이 거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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