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증폭되던 2025년 11월26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가운데)이 군복 차림으로 행진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굳이 우고 차베스까지 들먹일까? 그가 재임했을 때도, 그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정권 교체’를 원한다. 가혹한 제재와 봉쇄가 먹혀들지 않으면 남는 건 하나뿐이다. 카리브해 연안 국가 베네수엘라가 아연 전운에 휩싸인 이유다.
2025년 9월2일(현지시각) 미군 정찰기가 카리브해 트리니다드토바고에 인접한 공해상에서 ‘수상’한 선박을 추적·감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미사일이 발사됐다. 선박은 화염에 휩싸였다. 미국이 공해상에서 마약 운반용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겨냥해 공격을 벌인 첫 사례다. 이후 미국은 카리브해와 동태평양 공해상에서 모두 21차례 비슷한 공격을 벌여 지금까지 83명이 숨졌다.
“마약 테러범 사살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11월28일 소셜미디어 엑스(X)에 이런 글을 올렸다. 같은 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가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마약 운반선) 승선 인원 전원을 사살하라고 명령했다”고 전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신문의 보도를 종합하면, 9월2일 1차 미사일 공격을 받고도 승선 인원 11명 가운데 2명이 생존했다. 이에 헤그세스 장관의 ‘전원 사살’ 명령 이행을 위해 미국 특수전사령부는 2차 타격에 나섰다. 신문은 군법무관 출신으로 대테러 전쟁 당시 7년여 특수전사령부를 자문했던 토드 헌틀리 조지타운대학 교수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마약 운반용으로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선박을 공해상에서 공격하는 건 불법이다. 해당 선박이 미국을 직접 공격한 것도, 공격이 임박한 것도 아니었다. 미국과 교전 중인 것도 아니었다. (그들을 사살한 것은) 살인에 해당한다. 더구나 전쟁 중이라 해도 항전 불능 상태인 적을 (2차 타격으로) 사살하는 건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불법’이란 비판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핵심 표적은 베네수엘라, 특히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다. 사연이 길다. 2020년 3월 미국 뉴욕남부지방검찰청은 마두로 대통령을 마약 테러와 불법 중화기류 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기소 직후 미 국무부는 마두로 대통령의 ‘체포 또는 유죄 확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현상금 1500만달러를 주겠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2025년 1월 현상금을 2500만달러로, 이어 8월엔 5천만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이 마약범죄와 관련해 제시한 사상 최고 현상금이다.

미국 국무부는 마약 테러 등의 혐의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현상금 5천만달러를 내걸었다. 국무부 누리집 갈무리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이 ‘카르텔 데 로스 솔레스’(태양의 카르텔)란 마약 카르텔의 우두머리라고 주장한다. 이 조직을 통해 미국에서 암약하는 베네수엘라 마약 카르텔 ‘트렌 데 아라과’(아라과의 기차)를 배후 조종해 미국으로 마약을 유입시킨다는 얘기다. 미국 재무부는 2025년 7월25일 ‘태양의 카르텔'을 국제테러조직(SDGT)으로, 국무부는 11월16일 외국테러단체(FTO)로 각각 지정했다. 정작 미국 마약단속국(DEA)이 2025년 5월 펴낸 연례 ‘국가 마약위협 평가 보고서’를 보면, ‘아라과의 기차’가 ‘기타 위협’으로 등장하지만, ‘태양의 카르텔’과 마두로 대통령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다. ‘태양의 카르텔’은 차베스 집권 이전 마약 밀매로 뒷돈을 챙기던 부패한 군부의 별칭일 뿐 실체가 없다.
미국이 처음 베네수엘라 제재에 나선 건 2005년이다. 대테러 전쟁과 마약 단속에 비협조적이란 이유로 베네수엘라에 미국산 무기 수출과 이전을 금지했다. 2015년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민주주의 훼손과 인권유린, 부패’ 등을 명분 삼아 베네수엘라 정부 고위인사의 미국 내 자산 동결과 입국 제한 등 추가 제재에 나섰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제재를 대폭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2018년 잇따라 △국영석유회사(PDVSA) 등 베네수엘라 정부 관련 기관의 미국 금융시장 접근 제한 △국영석유회사 미국 자회사 본국 송금 금지 △국영석유회사의 미국 내 자산 동결과 베네수엘라와의 금융거래 제한 등 제재를 부과했다. 2019년엔 제재 대상을 확대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2025년 3월24일 행정명령을 내려 베네수엘라 원유 수입국에 25% 보복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제재는 베네수엘라의 민생 파탄을 불렀다. 2013년 112억달러 규모였던 베네수엘라의 식량 수입액은 2018년 24억6천만달러를 기록하며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는 2019년 4월25일 낸 보고서에서 “미국의 제재로 의약품과 의료장비, 식량을 비롯한 필수품 수입이 극히 제한됐다.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 8만여 명이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지 못했다. 1만6천여 명이 신장투석을 받지 못했고, 암환자 1만6천여 명과 고혈압·당뇨 환자 400만 명에 대한 약품 공급도 끊겼다. 이로 인해 2017~2018년 베네수엘라에서 약 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제재는 민간인을 겨냥한 집단처벌이었다.
경제도 직격타를 맞았다. 2012년 약 3725억달러를 기록하며 정점을 찍은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2020년 428억달러까지 추락했다. 경제난과 생활고는 대규모 난민 사태로 이어졌다. 2017년 이후 베네수엘라 국경을 넘은 난민은 줄잡아 700만~8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약 80만 명이 미국으로 흘러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 최대 과제로 삼은 불법 이민자 문제는 기실 집권 1기 때 스스로 뿌린 씨앗의 열매다.

2025년 11월18일 베네수엘라 인근 카리브해에 배치된 미국 해병대 소속 병사들이 군함에서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베네수엘라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창립(1960년 9월) 회원국이다. 이 단체가 7월2일 내놓은 ‘2025년 연례 통계보고서’를 보면, 2024년 기준 베네수엘라의 확인된 원유 매장량은 3032억 배럴로 세계 1위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2672억 배럴로 2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매장량은 450억 배럴에 그친다. 하지만 미국 에너지부에 딸린 에너지정보국(EIA)의 최신 자료를 보면, 베네수엘라의 2023년 원유 수출 총액은 40억5천만달러에 그쳤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810억달러, 미국은 1250억달러를 기록했다. 베네수엘라는 2012년 하루 평균 280만4천 배럴의 원유를 생산했지만, 2020년엔 단 56만9천 배럴을 생산하는 데 그쳤다. 제재의 나비효과다.
베네수엘라는 1976년 1월 국영석유회사를 창설해 석유산업을 국유화했다. 하지만 1990년대 외자 유치를 명분으로 석유시장을 개방했고, 다국적 석유기업에 채굴권을 내줬다. 1998년 12월 대선에서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베네수엘라는 미국 에너지기업의 ‘노다지’였다. 차베스 정권은 집권 직후부터 국영석유회사 통제를 강화했다. 수익금 전액을 중앙은행에 예치하도록 해 빈곤 퇴치와 사회복지 확대 자금원으로 삼았다. 1999년 110억달러에 그쳤던 베네수엘라 정부 예산은 2013년 2천억달러까지 수직 상승했다.
2013년 3월5일 암투병 중이던 차베스가 끝내 숨졌다. 같은 해 4월14일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차베스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가 단 1.83%포인트(27만3천여 표) 차이로 당선됐다. 야권은 어김없이 ‘부정선거’를 주장했다. 베네수엘라는 일찌감치 전자투표 제도를 도입했다. 터치패드로 투표하고 영수증처럼 출력된 기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다. 개표는 컴퓨터로, 재검표는 기표용지로 한다. 두 차례 재검표에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은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마두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1962년 11월 수도 카라카스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마두로 대통령은 20대 초반 버스 기사로 일하며 일찌감치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차베스가 1980년대 창설한 볼리바르혁명운동(MBR-200)에 적극 가담했고, 1997년 신생 좌파정당 제5공화국 운동 창당을 주도하며 ‘차베스 대통령’ 탄생에 앞장섰다. 1998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2005~2006년 국회의장을 지냈다. 2006년엔 외교장관에 임명됐고, 2012년 부통령에 오르며 명실상부 ‘차베스의 후계자’가 됐다. 하지만 그는 차베스가 아니었고, 차베스 사후 압박 수위를 높인 야권과 미국을 상대로 버거운 싸움을 이어왔다.

2025년 10월30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반미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모습과 함께 ‘미국은 물러가라’고 적힌 붉은 셔츠를 입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15년 총선에서 전제 167석(선주민 배당 의석 3석 포함) 가운데 야권연합이 109석, 집권 연합사회당이 55석을 얻었다. 야권은 ‘부정선거’를 말하는 대신 대통령 소환 투표 절차에 들어갔다. 마두로 대통령은 2017년 7월 개헌을 위한 제헌의회 선거를 제안했다. 야권 보이콧 속에 개헌안은 통과됐고, 2018년 5월 치른 조기 대선에서 마두로 대통령은 67.8%의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이듬해 1월 취임 직후부터 사달이 났다. 야당 소속 국회의장인 후안 과이도가 ‘과도 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섰고, 미국과 유럽연합 등이 ‘과이도 정부’를 승인했다. 길고 지루한 협상이 이어졌지만, 혼란은 지속됐다. 야권은 2022년 12월에야 과이도 과도정부 해산에 합의했다. 2024년 7월 대선에서 마두로 대통령은 51.9%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부정선거’ 주장이 다시 한번 들불처럼 번졌다.
2025년 11월 들어 ‘전운’이 짙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18일 베네수엘라 내부에서 비밀작전을 수행하도록 중앙정보국(CIA)에 명했다. 11월23일 미국 해군이 보유한 최신예이자 최대 규모 핵추진 항공모함인 제럴드포드호가 카리브해에 도착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최신 자료를 종합하면, 미국은 카리브해 연안에 강습상륙함·구축함·순양함 등 해군력과 전략폭격기·스텔스전투기·수직이착륙수송기 등 공군력을 집중시킨 상태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매체는 “카리브해 연안에 배치된 미군 병력은 1만5천여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빌드업’은 끝났다. 다음은 전쟁인가? 베네수엘라가 다시 휘청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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