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왼쪽)가 2025년 10월10일 오후 일본 도쿄 국회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와 회담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일본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자민당 총재=총리’란 오랜 등식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어서다. 총리 선출을 둘러싼 이합집산 속에 정계 개편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자민당 총재는 일본 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될 수 있을까?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는 2025년 10월10일 오후 도쿄 국회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사이토 대표는 자민당과 더는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오부치 게이조 총리 시절인 1999년 이후 26년간 유지돼온 자민-공명 연대에 종지부를 찍은 게다. 직접적 원인은 비자금 등 정치자금 규제에 충분한 개혁안을 내놓으란 공명당의 요구에 자민당이 적절히 화답하지 않은 탓이다. 사이토 대표는 다카이치 총재와 만난 뒤 “정치자금 문제 대응은 공명당의 제1정책”이라며 “자-공 연립정권은 백지가 됐다”고 말했다.
자민-공명 결별은 극우 성향을 거침없이 과시해온 다카이치가 자민당 총재로 당선된 10월4일 이후 예정된 수순이었을 수 있다. ‘평화의 정당’을 자임하는 공명당은 다카이치 총재의 극우적 행태에 우려를 표해왔다. 다카이치 총재의 섣부른 행보도 문제를 키웠다. 그는 당선 직후 파벌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당직 정지 1년 처분을 받았던 하기우다 고이치 전 정책조사회장을 간사장 대행으로 임명해 공명당의 화를 불렀다. 이어 10월5일엔 공명당 쪽과 정책 협의도 하기 전에 원내 제4당(28석)이자 보수 성향인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부터 만났다. 연정 파트너에 대한 무례였다. 사이토 대표는 10월7일 다카이치 총재와 만나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과거사 인식의 문제점을 지목하고, 자민당 파벌 비자금 개혁을 위한 기업·단체 정치자금 규제 등을 요구했다. 사실상 최후통첩이었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일본에선 국회의원 투표로 총리를 선출한다. 중·참의원 양원 본회의에서 총투표의 과반을 얻은 의원이 총리로 선출되는데,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위와 2위 득표자가 결선투표를 벌여 다수표를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 특히 중의원과 참의원 투표 결과가 일치하지 않으면 중의원 투표 결과에 따르게 된다. 총리 선출 권한은 사실상 중의원에 있다는 뜻이다. 중의원 전체 의석(465석) 가운데 자민당의 의석수는 과반에 못 미치는 196석이다. 이어 입헌민주당(148석), 일본유신회(35석), 국민민주당(27석), 공명당(24석) 등 순이다. 야당 간 합종연횡이 성사되면 ‘정권 교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다.
9월7일 사임 뜻을 밝힌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후임자를 뽑는 국회 총리 투표는 이르면 10월21일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총리가 임시국회 소집을 통보한 날이다. 특히 총리를 공석으로 두기엔 예정된 외교 일정이 워낙 빡빡하다. 신임 총리의 첫 다자외교 무대는 10월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 정상회의 참석이다. 아세안은 일본이 지역 전략 차원에서 사활을 건 외교무대다. 이어 10월27~29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다. 관세 협상 타결 이후 첫 미-일 정상회담이어서 안보·경제 관련 산적한 현안을 논의해야 하는 자리다. 10월31일~11월1일 한국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신임 총리가 관계가 서먹해진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가 될 게다.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2025년 10월1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경제 전문매체 닛케이아시아는 10월12일 유력한 시나리오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자민당 독자적으로 다카이치 총재를 총리로 당선시키는 경우다. 중의원 절반을 넘으려면 233석이 필요하다. 자민당의 의석보다 37석이 더 필요하다. 공명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했을 때도 두 당의 총의석수는 220석에 그쳤다. 반면 입헌민주·유신회·국민민주 등 3대 야당의 의석 총합은 210석이다. 이들이 연대해도 자-공 연립을 이길 수 없었다는 뜻이다. 공명당의 연정 탈퇴는 이 세 정당이 연합하면 자민당을 이길 수 있는 상황이 됐음을 뜻한다. 반면 세 정당 중 한 정당만 거부해도 결선투표까지 간다면 자민당이 ‘수성’에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째, 일부 야당의 지원 속에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로 선출되는 경우다. 야권이 총리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는 게 전제다. 다카이치 총재는 당선 직후부터 연립정부 강화를 위해 국민민주당 영입에 공을 들였다. 국민민주당 쪽도 물밑 협상에 적극성을 보였다. 하지만 공명당의 연립정부 탈퇴 이후 태도가 바뀌었다. 소수파 정권에 가담하느니 아예 정권을 차지하겠다는 포부다. 실제 다마키 국민민주당 대표는 차기 총리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역시 보수 성향인 제3당 일본유신회 쪽은 애초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자민당 총재로 선출될 것을 기대했다. 더구나 다카이치 총재가 국민민주당에 공들인 탓에 일본유신회 쪽은 자민당과 연계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셋째, 야권 연대로 다마키 국민민주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경우다. ‘다카이치 총리’에 반대하는 야권이 다마키 대표를 ‘단일 후보'로 밀면 된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대표이자 제95대 총리(2011년 9월~2012년 12월)를 지낸 노다 요시히코는 요미우리신문 등과 한 인터뷰에서 “각 당 대표에게 동일한 기회가 있다. (연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애초 사이토 대표를 총리 후보로 독자 출마시킬 것으로 알려졌던 공명당 쪽도 ‘야권 연대’ 쪽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사이토 대표는 10월14일 아사히신문 등에 “최종적으론 당에서 논의해 결정할 문제”라며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도) 가능성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막판 변수는 넘쳐난다. 입헌민주당 의원 중 줄잡아 40~50명이 개혁·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보수파인 다마키 대표와 핵발전소, 국가안보, 헌법 개정 문제 등에서 현격한 인식 차이를 보인다. 이들이 반기를 든다면 총리 선출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재가 어부지리를 얻을 수도 있다. 다카이치 총재는 10월14일 한 강연회에서 “자민당 총재가 됐지만, 총리는 못할 수 있는 여자라는 소리를 듣는 불쌍한 다카이치입니다”란 발언을 내놨다. ‘위기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민당은 10월16일 일본유신회와 전격적인 연정 협상에 나섰다. 극우 성향인 유신회는 ‘비자민-비호헌’(평화헌법 개정)을 기치로 내세워 세를 키웠다. ‘자-유 연대’로 다카이치 총리가 탄생하면, 일본 사회의 극우화에 가속이 붙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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