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30일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에서 한 승려가 강진으로 무너진 불교 사원 앞을 지나고 있다. AP 연합뉴스
강력한 지진이 미얀마 중부 일대를 휩쓸었다. 자연이 불러온 재앙은 사람이 키운다. 대지진이 할퀴고 간 자리, 구조와 구호에 집중해야 할 때 폭탄이 날아들었다. 고립된 진앙 일대는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차단된 채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지조차 정확히 알 길이 없다. 4년째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 미얀마가 1948년 1월 독립 이후 최악의 지진으로 몸서리치고 있다.
2025년 3월27일 미얀마 행정수도 네피도에선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미얀마군 창군 80주년 기념행사다. 2021년 2월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민 아웅 흘라잉 국가행정위원회(SAC) 위원장 겸 대통령 권한대행 겸 총리 겸 군 최고사령관은 낯익은 군복 차림에 목에 주렁주렁 메달을 걸고 행사를 지켜봤다. 이튿날인 3월28일 낮 12시50분께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경계 지점에 있는 사가잉 단층이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규모 7.7의 강진은 진앙에서 1천㎞가량 떨어진 타이 방콕에서 공사 중이던 33층 건물이 무너질 정도의 파괴력을 보였다. 강력한 여진이 이어졌다. 4월1일까지 닷새 동안 규모 4 이상의 여진이 20차례 미얀마 땅을 흔들었다.
대지진 이전에도 미얀마는 충분히 힘겨웠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쿠데타 4주년을 맞은 2025년 2월 펴낸 보고서에서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약 350만 명이 국내에서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약 1500만 명은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재난이 닥쳐오기 전에도 미얀마 인구(5400만 명) 3명 가운데 1명꼴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였단 뜻이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3월31일 낸 보고서에서 미얀마 강진으로 인한 인명피해 규모를 △1만 명 이상 사망 가능성 35% △10만 명 이상 사망 가능성 33%로 추정했다. 4월2일 현재 군부가 집계해 발표한 사망자는 2800여 명 규모다. 경제적 손실도 막대해 △100억~1천억달러 이상일 가능성 35% △1천억달러 이상일 가능성이 31%로 각각 추정했다. 2024년 기준 미얀마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667억달러에 그친다. 미얀마가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얘기다.
쿠데타 이후 4년여 내부 상황 숨기기에 급급했던 군부는 이례적으로 나라 밖에 도움을 요청했다. 중국·러시아 등 군부를 사실상 지원해온 국가는 물론 세계 각국과 국제기구가 호응하고 나섰다. 쿠데타 이후 군부에 맞서기 위해 꾸려진 임시정부 격인 국민통합정부(NUG) 쪽은 3월29일 오전 지진 피해자 구조와 구호활동을 위한 부분 휴전을 선언했다. 국민통합정부에 딸린 인민방위군(PDF) 쪽은 “지진 피해 지역에서 향후 2주간 방어 목적을 제외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수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군부의 태도는 달랐다. 지진 피해가 집중된 지역에서도 군부는 공습을 멈추지 않았다. 피해 지역으로 향하는 길목도 차단했다.
이유가 있다.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이 집계한 최신 자료를 보면, 2024년 12월 현재 미얀마 전국 15개 주 가운데 10개 주 57개 지역에 계엄령이 내려진 상태다. 인민방위군을 포함한 반군부 진영이 장악했거나, 정부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지역이다. 이번 지진으로 피해가 집중된 6개 지역 가운데 양곤에 이은 제2대 도시인 만달레이와 수도 네피도를 제외한 4개 주에도 계엄령이 내려진 상태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진앙에 가까운 사가잉주 14개 타운십(구 또는 군에 해당)과 동북부 샨주(10개 타운십)를 비롯해 마궤와 바고 주에서도 각각 5개와 4개 타운십이 계엄 상태다. 미얀마 군부가 지진 피해 지역으로 구호요원과 구호물품 진입을 조직적으로 차단·방해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달레이 시내 12층짜리 스카이빌라 아파트가 지진으로 6층 높이로 주저앉았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 갇힌 35살 임신 여성 구조작업이 장시간 이어졌다. 15시간 사투 끝에 다리를 절단한 뒤 구조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건물 더미 밖으로 구조된 여성은 끝내 숨졌다. 과다출혈 탓이다.”(3월30일 AFP 통신)
“사가잉에 거주하는 코 테인(15)의 어머니는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중상을 입었다. 군인들이 가로막고 있어 치료를 위해 만달레이로 갈 수도 없다. 어서 어머니 주검을 건물 더미에서 꺼내 수습하는 게 그의 유일한 바람이다.”(4월1일 오스트레일리아 공영방송 ABC)

2025년 4월2일 무너진 교량이 바라다보이는 미얀마 중부 사가잉의 이라와디 강가에서 지진으로 닷새째 전기와 수도가 끊긴 주민들이 몸을 씻고 있다. AFP 연합뉴스
끔찍한 소식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군부가 장악한 사가잉주 일부 지역에선 군인들이 화장장을 폐쇄해 장례조차 가로막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미얀마 인권단체 ‘프로그레시브 보이스’의 킨 오마르 의장은 ABC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군부는 헬리콥터와 트럭 등 필요한 장비를 모두 갖고 있다. 하지만 지진 발생 뒤 지난 사흘간 사가잉 같은 피해 지역 주민을 지원하지 않았다. 대신 민간인을 겨냥한 폭격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군부는 ‘물류 지원의 어려움’을 핑계로 반군부 진영 우세 지역에 대한 구호품 반입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 인도적 구호품조차 ‘무기화’한 셈이다.
언론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조 민 툰 군부정권 대변인은 3월31일 쏟아져 들어오는 취재 요청에 대해 “외국 기자들이 와서 머물고 쉴 곳이 없다. 이동도 쉽지 않을 게다. (…) 상당수 호텔이 무너졌고, 여전히 전기가 끊긴 곳도 많다. 피해 지역 공무원들이 구호활동에 집중하고 있어 외국 기자를 응대할 여유가 없다. 이해 바란다”고 말했다.
2008년 5월2일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미얀마 남부를 말 그대로 초토화했다. 13만8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탄 슈웨 국가평화발전평의회(SPDC) 의장을 필두로 한 군부정권은 식량·의약품·현금 등만 수용하고, 외국 구호요원과 취재진 입국은 철저히 차단했다. 2년여 뒤인 2010년 11월 20년 만에 실시된 총선에서 군부가 창당한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압승을 거뒀다.
4월2일에도 재난지역을 겨냥한 공습이 이어졌다. 그날 저녁 군부는 돌연 “구호작업을 위해 4월22일까지 3주간 휴전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민 아웅 흘라잉 SAC 위원장은 인도·스리랑카 등 7개국 연합체인 ‘벵골만기술경제협력체’(BIMSTEC) 정상회의(4월2~4일) 참석을 위해 4월3일 방콕으로 출국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주도 휴전안을 저버려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이 금지된 그가 재난을 명분 삼아 다자외교 무대로 복귀하는 모양새다. 군부는 4년여 미뤄온 총선을 오는 12월 치르겠다고 밝힌 상태다. 사이클론 나르기스란 참사에도 2010년 총선에서 승리한 군부는 아웅산 수치가 이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2020년 총선에서 승리할 때까지 철권을 휘둘렀다. 예고한 선거를 8개월 남짓 앞둔 시점에 찾아온 대지진은 2021년 쿠데타 세력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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