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가를 위해 2024년 7월8~11일 미국 하와이와 워싱턴을 방문했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에 3년째 개근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첫 정상회의였던 2022년 6월 스페인 마드리드 회의 때부터 나토 쪽이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를 ‘아시아·태평양 파트너 국가’로 초청하고 있어서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기간에 12개국 정상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까지 모두 13차례 양자회담을 했다. 이 가운데 7월10일 워싱턴컨벤션센터(WCC)에서 열린 한-독 정상회담에 눈길을 줄 만하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만난 윤 대통령은 “독일의 유엔군사령부(UNC·유엔사) 가입 신청을 환영한다. 앞으로 관련 절차가 조속히 마무리되는 대로 독일이 유엔사 회원국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귀국 뒤 처음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7월16일)에서도 “독일의 유엔사 가입은 유엔사의 대북 억제력에 한층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사의 대북 억제력’이란 건 대체 무슨 말일까?
유엔사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84호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당시 결의는 △미국 주도 연합군사령부 구성에 회원국 협력 △미국이 연합군사령관 지명 △북한군에 맞선 작전 수행 때 참전국 국기와 함께 유엔 깃발 사용 허용 △미국이 연합군사령부 활동 안보리에 보고 등이 뼈대였다. 이에 따라 같은 해 7월24일 더글러스 맥아더를 사령관으로 하는 유엔사가 일본에서 공식 출범했다. 하지만 안보리는 이듬해인 1951년 1월31일 결의 제90호를 채택하고, 한국전쟁과 관련해 더는 논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거부권을 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중국 대신 대만이 차지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 회의를 ‘보이콧’하던 소련이 회의장으로 복귀한 탓이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로 전쟁은 멈췄다. 정전협정 제20항은 “군사정전위원회는 10명의 고급 장교로 구성하되 그중의 5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이를 임명하며, 그중의 5명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이 공동으로 이를 임명한다”고 규정했다. 유엔사 존속의 유일한 법적 근거다. 당시 유엔사의 병력 규모는 한국군(약 59만 명)과 미군(약 30만 명)을 비롯한 17개국 약 93만 명까지 불어나 있었다. 1953년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은 한반도에 남았다. 나머지 15개 참전국은 1956년 말까지 병력을 철수시켰다. 1957년엔 일본 도쿄에 있던 유엔사 본부가 한국으로 옮겨왔다. 일본엔 유사시 지원 기능을 맡는 후방기지만 남았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독일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다. 분단국이던 독일은 1973년 9월18일에야 동서독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한국전쟁 당시 서독 정부가 유엔 본부를 통해 한국에 야전병원을 개설하고, 참전 유엔군 병사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시점은 1953년 5월이다. 하지만 두 달여 뒤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서독의 의료지원단 파견은 무산됐다. 서독 쪽은 야전병원 대신 적십자사를 내세워 1954년 부산에 250병상급 병원을 개설하고 1959년까지 5년간 한국인을 대상으로 의료지원 활동을 했다. 독일의 유엔사 가입 신청이 기이해 보이는 이유다.
유엔사는 유엔 산하기구일까?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전 유엔 사무총장은 제1차 북핵위기가 한창이던 1994년 6월24일 김영남 당시 북한 외무상에게 보낸 서한에서 “안보리 결의 제84호는 ‘연합군사령부’를 안보리가 통제하는 산하 조직으로 구성하도록 결정한 게 아니다. 단지 사령부를 구성하고, 이를 주도하는 역할을 미국이 맡도록 ‘추천’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군사령관과 함께 유엔군사령관까지 동시에 맡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의 제84호에 따라 ‘유엔 깃발’ 사용이 허용됐을 뿐, 유엔사는 유엔과 무관한 조직이다.
정전협정 이행 감시 기능에 머물렀던 유엔사의 기능을 ‘재활성화’하겠다고 나선 것도 미국이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0년대 초반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이 주도한 ‘국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럼즈펠드 장관은 “냉전이 끝나고 위협이 사라진 곳에 오랫동안 너무 많은 군대를 배치해왔다. 이들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을 ‘붙박이식 국방 개념’에서 더 신속하고 보다 유능하면서도 21세기 상황에 맞는 조직으로 바꿀 때가 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주한미군이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을 갖출 수 있도록, 유엔사의 역할을 확대·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당시 미국의 계산이었다.
유엔사는 한반도에서 정전협정을 근거로 ‘이중 억지’ 기능을 수행한다. 순기능은 남북한 간 군사적 충돌 등 정전협정 위반 행위를 가로막는 것이다. 2024년 들어 남과 북이 대북전단과 오물풍선을 주고받으면서 긴장이 고조되자 유엔사가 북한군의 군사분계선 침범과 한국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등에 대한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발표(6월13일)한 게 대표적 사례다. 역기능은 정전체제 유지를 이유로 남북한 간 화해·협력 조처를 가로막는 것이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벌어지는 모든 활동은 유엔사 소관”임을 내세워 2018년 8월 말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현지조사를 가로막은 게 대표적 사례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유엔사의 대북 억제력’은 실체가 없다. 전직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유엔사 재활성화를 통해 미국이 얻는 이익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비용과 위험의 분담이다. 기존 병력 파견국과 지원국 외에 독일 같은 강대국이 유엔사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명운이 걸린 정전과 평화체제 문제를 다자화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섣부른 유엔사 확대·강화는 주권을 흔드는 국기문란 행위가 될 수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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