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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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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는 비명 소리 전세계는 ‘악’ 소리

에너지·식량 대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전세계 물가 폭등미·EU는 경제 타격 감수하며 대러 제재 강화 주도
등록 2022-05-09 00:53 수정 2022-05-09 11:47
2022년 5월4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자메이카 시장에서 상인들이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22년 5월4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자메이카 시장에서 상인들이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벌어진 전쟁으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린다. 물가가 가파르게 치솟고 경기가 침체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온다. 물가 급등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참여국들이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광물 등의 수입을 급격히 줄이거나 중단한 데서 비롯한다. 유럽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가 전쟁터로 바뀌면서 곡물 생산이 줄고 러시아의 해상 봉쇄로 수출길까지 막히자 세계 식량 공급도 차질을 빚고 있다.

OECD 물가상승률 34년 만에 최고

5월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다음달인) 3월 기준 38개 회원국의 평균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8.8% 올랐다”고 밝혔다. 1988년 10월 이후 34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세다. 한국은 4.1% 올라 낮은 편이었지만, 두 자릿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나라도 7곳이나 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공급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와 식량의 가격 폭등이 가장 큰 요인이다. 2020년 기준 러시아는 천연가스 수출 세계 1위, 원유 수출 세계 2위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러시아는 밀 수출도 세계 1위다(2020년). 우크라이나 역시 옥수수 수출 세계 4위, 밀 수출 세계 5위의 농업대국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원유와 가스의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터키(120.9%)와 네덜란드(99.7%)에 가장 큰 타격을 안겼다. 스페인(60.9%), 벨기에(57.2%), 이탈리아(50.9%) 등 유럽 대다수 나라에서도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고유가 행진의 체감도는 경제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에서 더 크다. 4월 말 시중 휘발유 가격이 아프리카 수단에선 63%나 올랐고 시에라리온과 가나에서도 각각 50%, 42% 올랐는데, 이는 영국의 9% 상승보다 훨씬 큰 폭이다.

식량 가격도 심상치 않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1990년부터 매월 발표하는 세계 식량가격지수(FPI)가 2022년 3월에 159.3으로 두 달 연속 사상 최고를 경신했다. 4월 지수도 초유의 고공행진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식량가격지수는 곡물·육류·식물성유지(식용유)·유제품·설탕 5개 품목군의 국제 가격 동향을 보여주는 수치로, 2014~2016년 평균치인 100이 기준이다. 3월 지수는 5개 품목군 중 설탕을 뺀 4개 품목군이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특히 식물성유지 가격지수는 248.6이나 됐다. 2020년 기준, 우크라이나는 유채씨 수출 세계 2위(10.2%), 러시아는 해바라기씨 수출 세계 2위(11.9%)다. 해바라기유의 수출은 우크라이나(46%)와 러시아(23%)가 세계시장의 70%를 차지한다.

두 나라의 전쟁으로 식물성유지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유럽 주요 수입국들에선 식용유뿐 아니라 식용유를 사용하는 음식의 값도 덩달아 오름폭이 커졌다. 세계 최대 유채씨 수출국인 캐나다에서 2021년 여름 폭염으로 수확량이 급감하고, 전세계 대두(콩) 공급의 절반을 차지하는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에서 심각한 가뭄으로 콩기름값이 급등한 것도 식용유 대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영국·스페인·그리스·벨기에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선 식용유 구매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4월26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일부 소비자의 식용유 사재기가 판매 통계로 감지되면서, 테스코·모리슨 등 대형 슈퍼마켓 체인들이 1인당 식용유 구매량을 2~3병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전했다. 평소 영국의 소매점에서 팔리는 식용유의 44%는 해바라기유인데, 대부분 우크라이나산 수입품이다.

농업대국 우크라이나도 식량 부족

먹거리 수급 불균형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러시아산 곡물은 금수 조처로, 우크라이나산 곡물은 흑해 연안 항구들이 전쟁으로 제구실을 못하거나 선박 입출항이 불가능해 수출길이 막혔다. 우크라이나는 곡물값이 상대적으로 싼 편이어서, 세계 식량 공급뿐 아니라 빈곤국에 대한 국제기구와 인도주의 단체들의 무상 식량 원조의 핵심 공급원 구실을 해왔다.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과 중동의 여러 나라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밀과 곡물 비중이 전체 수입의 80~90%를 차지한다.

그런데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도 식량 부족을 겪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5월1일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의 독일 담당 마르틴 프리크 국장은 <데페아>(dpa) 통신에 “거의 450만t의 곡물이 우크라이나 항구와 선박에 적재된 채 전혀 소비되지 않고 묶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약 250만 명의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식량을 지원했다”며 “굶주림이 무기로 쓰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5월2일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의 흑해 항구 봉쇄로 수천만t의 곡물이 손실될 수 있으며, 이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식량 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4월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영국 방송 인터뷰에서 “영양 섭취가 저하되는 건 인간적 재앙이며, 현 사태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각국 정부들에도 정치적 도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키우면서 세계경제 성장에도 제동이 걸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4월19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2022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6%로 내다봤다. 앞서 1월의 수정 전망치보다 0.8%포인트 낮춘 수치다. 우크라이나 전쟁 악화에 따른 공급망 훼손과 물가 상승, 러시아의 채무 불이행 등으로 경제 위축 위험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그래도 러시아 제재 끝까지 간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 고삐를 더 바짝 죄고 있다. 5월4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 원유와 석유제품 수입의 전면 중단을 뼈대로 한 6차 제재안을 회원국에 제안했다. 그는 “6개월 안에 러시아산 원유 공급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정유제품 공급은 2022년 말까지 점차 중단할 것”이라며 “이는 모든 러시아 석유에 대한 완전한 수입 금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로 전쟁범죄 의혹을 받는 러시아군 지휘관들에 대한 제재도 포함됐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연합의 매우 특별한 책임감”을 강조하며 “우크라이나가 전쟁 후유증을 딛고 성공할 조건을 조성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전후 우크라이나의 경제 회복과 부패 퇴치를 위한 재건 프로그램이 마련될 거라고 덧붙였다.

주요국들은 인플레이션 억제에 비상이 걸렸다. 5월4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다고 발표했다. 2000년 5월 이후 22년 만에 최대 인상 폭이다. 이에 따라 기존 0.25~0.5%던 금리가 0.75~1.0% 수준으로 올랐다. 연준은 이후 정례회의에서도 지속적인 금리 인상을 적극 검토할 것임을 내비쳤다. 시중의 유동성을 회수하는 ‘양적 긴축’으로 물가에 고삐를 채우겠다는 강력한 신호다. 기축통화의 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한국 등 다른 나라들도 잇따라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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